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호치민 교사살이 3

유초중고 학생들이 약 2000명, 교직원 200명이 넘는 거대한 교육공동체에서 초중등 합쳐봐야 14명인 특수학급은 확실히 비주류이다. 수많은 군중 틈에서 까치발 하고 무대를 보려는 난쟁이처럼, 아이들은 막막히 또래를 동경한다. 무대를 볼 수 없다면 다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새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



우리 학교에는 교직원들이 학교에 제안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는데, 교내 구성원이 자유롭게 팀을 구성해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메신저로 날아 온 안내사항에 따라, ‘모두를 위한 카페’를 콘셉트로 공감대를 형성한 초ㆍ중등 선생님들과 원어민 교직원 연합 팀을 구성해 제안서를 제출했다. 교장선생님은 아이디어가 좋다며 필요한 게 있는지 물으셨다. 커피 머신과 몇몇 기자재가 필요해 예산을 찾는 중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그 자리에서 이사회에 전화를 하셨다. 특수학급 직업교육을 위한 카페를 만들려 하는데 지원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난쟁이가 살포시 던진 공에 4번 타자가 배트를 휘둘렀다. 제대로 맞은 공은 일사천리 쭉쭉 뻗어나갔다. 이사회에서 커피머신과 그라인더, 테이블 냉장고를 기증했고, 행정실은 방학 중 상하수도와 기자재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공사를 검토해 보니 우리 교실은 상하수도를 설치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 옆 교실에 원어민 교사 라운지가 있었는데, 원어민 선생님들이 공용 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협조해 주어 그곳을 카페 공간으로 꾸미기로 했다.


더없이 순조로웠으나 막상 스케일이 커지자 자책이 들기도 했다.

아이고! 베트남까지 와서 가만히 있을 것이지 기어코 저질렀구나!

이미 판이 벌어져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매번 이런 식이다. 저질러놓고 수습하는...


와중에 통합교육활동도 미리 준비해야 했다. 학교의 모든 교육활동의 주역은 학생이기 때문에 학생이 많이 참여할수록 좋았다. 8~1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굿프렌즈 모집 공고를 냈다. 굿프렌즈는 한국에서도 많이 시행하는 봉사단으로, 장애가 있는 친구들을 여러 방면에서 서포트해 주는 또래 도우미다. 봉사 시간을 내걸었지만 많이 지원하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 공고 당일 지원자가 20명이 넘었고, 마감일까지 무려 100명의 학생들이 지원했다.


지원서로 50명을 추려 3인 1조 집단 면접으로 24명을 뽑았다. 면접만 꼬박 4일이 걸렸다. 그즈음 학생들이 참가하는 학생자치 교내 정책 공모전이 있었는데, 학생 3명이 내게 찾아왔다. 특수학급 학생들에 대한 인식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한 뒤 결과물을 들고서 함께 일해보고 싶다고 찾아온 것이다. 이 기특하고 훌륭한 친구들도 굿프렌즈에 합류했다. 이들이 추진한 교내 카페 통합교육활동 기획은 이후 정책공모 우수작으로 선정되어 교육활동에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사회, 행정실에 이어 학생들까지 유입되면서 점점 판이 커지고 있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24명의 최정예 굿프렌즈 제군들에게 장애 이해 교육을 진행한 후 우리 반 학생들과 서로 짝을 지어주고 매일 식당에서 같이 식사하기로 했다. 런치토크라고 명명한 이 활동으로 굿프렌즈를 개시한 이유가 있다. 자주 식사하는 만큼 가까워질 터였다. (우리는 안부를 물을 때도 ‘밥은 먹었냐’고 묻는 한국인이니까!) 우리 반 학생들은 이제 더 이상 따로 밥 먹지 않아도 되었고,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한탄하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점심마다 교실로 찾아오는 친구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 경쾌한 발걸음이란! 우리 모두가 살면서 언젠가 느껴보았듯이 누군가에게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어떤 이에게는 특별한 법이다. 이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면 갑작스레 마주쳐 새삼 깨닫게 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손을 잡고 신나게 총총 뛰는 이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도 그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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