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에서 학교 카페 만들기

호치민 교사살이 5

우리 학교의 강점 중 하나는 행정실에 베트남 직원들로 구성된 시설팀이 있다는 것이다. 수리, 인쇄, 전기, 수도, 설비, 시공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일은 학교 안에서 모두 해결이 가능하다. 아무리 소규모 공사라고 하더라도 수도와 전기, 설비 공사를 하는 데 외부 업체를 동원하지 않고 자체 커버가 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이점이다. 덕분에 여름 방학 중 카페 공간의 상하수도 공사를 마쳤고, 이사회에서 기증한 각종 설비와 기기도 모두 설치했다. 이제 카페를 꾸밀 차례였다.


방학 중이었지만 학생들을 불러 모아야 했다. 개학 얼마 후 학교 이사회 회의에 맞추어 카페 시업식이 예정되어 있었고, 그전에 구색을 갖출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를 조성하는 시작 단계부터 학생들과 함께하기로 했으니 빨리 모일수록 좋았다. 그렇게 방학 중 3일간 굿프렌즈 워크숍을 진행했다. 조만간 카페로 변모할 교실의 대청소를 하고, 카페콘셉트를 정하기 위한 아이디어 스케치, 물품 리스트업, 레시피 수합, 홍보 방안 구상 등 다양한 영역에서 카페 운영 방안을 의논했다. 교사 본연의 임무에 맞게 모든 과정을 학생 중심 교육 활동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학생들을 모아놓고 나는 한 발 뒤에서 지켜보았다. 아이들이 조별 토의와 발표, 온라인 작업을 거쳐 정리한 내용을 토대로 여러 물품을 구매했다.


이후 2주 동안 할 일이 산더미였다. 베트남에서 웬만한 물품은 다 조립식이다. 큰 인조 식물 화분을 여러 개 구매했는데 이파리와 줄기를 모두 조립해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의자와 책상과 선반도 모두 부품이 따로 와 일일이 조립했다. 우리는 택배로 온 물건들을 뜯고, 분류하고, 조립하고, 붙이고, 바르고, 옮기고 깔고, 달고, 꾸미면서 같이 땀 흘리고, 또 웃었다.




2024년 8월 27일 드디어 시업식이 다가왔다. 카페에 필요한 기자재를 후원해 준 학교 이사회와 교장·교감 선생님, 학부모 위원들, 제안제도팀 선생님들과 우리 반 학생 등 관계자들이 모여 카페 시업식을 하게 되었다. 첫 개시로 음료를 주문받고, 커피를 내리고, 우리 반 학생이 음료 서빙을 했다. 많이 와주신 그 자리에서 특수학급 학생들의 직업교육과 우리 학교 특색 통합교육을 위한 카페 운영 계획을 말씀드렸다. 이사님들과 학부모 위원들은 카페의 취지와 비전에 공감해 주시고 좋은 말씀으로 또 방명록으로 응원을 해주셨다. 시업식을 성황리에 마치고 굿프렌즈 친구들과도 함께 따로 시업식 기념사진을 찍고 자축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개설한 카페 소식은 신문기사로 보도되기도 했다. 이제 시작이었다.


제안제도팀 회의를 통해 카페 운영 방침을 정했다. 1주일에 한 번 금요일마다 카페를 오픈하고, 처음에는 교직원을 대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교직원만 200명이 넘고 학생들은 2,000명에 달하기 때문에 모두를 대상으로 운영하기에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학생 대상으로는 우선 학년별로 나누어 매월 한두 차례 시범운영을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교직원을 대상으로 점심시간에만 운영했는데도, 첫 주에는 너무 바빠 정신이 없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왔다. 카페에 방문하는 손님이 100명이나 되었다. 동선은 꼬이고 주문은 밀리고 있었다. 시스템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학생들은 아직 충분히 훈련되지 않았고, 선생님들도 처음이라 우왕좌왕하는 시기였다.


몇 주 동안 시범운영 기간에 얻은 피드백을 꾸준히 반영하면서 개선해 나가자 한 달이 될 즈음 시스템이 비로소 자리를 잡았다. 교실 창을 열고 주문받는 카운터로 활용하여 카페 바깥에 메뉴판과 결제 안내를 비치하면서 내부 공간은 안정을 되찾았고, 주문 시스템을 만들고 카운터의 노트북과 카페 작업대의 태블릿에 화면이 공유되도록 했다. 바리스타 역할을 맡은 교사와 학생들의 기술도 점차 숙련되었고, 모두가 저마다 얼음 담당, 아이스티제조, 쿠폰 음료 서빙, 쿠폰 도장 찍기 등의 역할을 맡아 장애로 인해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 있는 교직원과 학생들이 더 많이 참여해 인력풀도 점차 커졌다. 이렇게 교직원과 장애-비장애 학생이 한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10월 10일 교직원 제안제도 발표회가 있었다. 제안제도는 우리 학교만의 정책공모전으로 교사와 직원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다. 학교 모든 교직원이 홀에 모여 준비된 발표와 공연을 보고, 심사단의 심사와 청중단의 실시간 투표로 대상과 최우수, 우수를 선정한 뒤 시상식으로 마무리하는 순서였다. 엄선된 10개 프로젝트팀의 성과를 보면서 우리 학교 교직원들의 열정과 노고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우리 팀은 마지막 순서였다.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그간의 활동을 편집한 4분짜리 영상을 상영했다. 영상을 보면서 적지 않은 선생님들이 웃다가 울기도 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우리 반 학생들을 지도하고 기억하고 계시던 선생님들이 많았다. 베트남과 영미권 원어민 선생님들도 진심 어린 축하와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관심을 가지고 카페에 와주신 분들이다.


어찌 보면 학교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서로의 가슴속에 머물던 바람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만 한 셈이다. 마음을 잇는 일에는 무언가 파장이 있다. 탁월한 성과들 틈에서 대상으로 뽑아주신 이유가 아니었을지 생각해 본다.




대니얼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에서 로빈슨은 무인도라고 생각했던 섬이 실은 무인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금요일, 그는 식인종에게 잡아먹힐 뻔하던 원주민을 구해주고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데, 이후 둘은 항상 함께 다니다가 배를 만나 섬에서 구출된다. 우리 학생들도 이곳이 사실 그리 외딴섬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 프라이데이를 만나 고독으로부터 해방되고 마침내 섬을 벗어났던 로빈슨 크루소처럼, 이제는 금요일마다 학교의 다양한 구성원을 만나며 소통의 즐거움도, 노동의 보람도 느끼게 되었으니까. Thank God, it’s Fr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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