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 마스터와 새우깡

나를 선생님으로 만든 아이들- 여덟 번째 이야기

도대체 이 아이들을 데리고 뭘 해야 하지?


당황스러웠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 업무분장 발표를 할 때였다. 내가 초등에 배치된 것이다. 우리 학교는 유초중고가 모두 한 학교에 있는 사립 특수학교였고, 가끔 학교급간 교차 배치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내가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고등학교 교과 전담을 했다가, 중학교 담임을 했다가, 초등학교 4학년 담임으로 가게 되었다. 특수교사는 학령기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관리자의 철학이었다.


결과적으로 초1부터 고3, 성인 과정인 전공과까지 모든 학년을 다 가르쳐 보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그 당시는 아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반은 중도중복장애 학생들이 모여있는 학급이었다.


나는 주로 대입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 위주로 수업을 했었고 이렇게 오직 중증인 학생들만 모인 반을 맡은 적은 없었다. 아예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초등학교는 담임이 거의 모든 수업을 다 한다. 말로 의사소통이 안 되고 몸도 못 쓰는 아이들과 종일 부대끼는 생활을 몸소 체험하니 적잖게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이 아이들을 데리고 뭘 해야 하나?




그 반에 재호가 있었다. 뇌척수액을 조절하는 션트(Shunt)를 머리에 삽입해 한쪽이 볼록 튀어나왔고, 저시력으로 앞을 잘 보지 못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데 몸무게는 10kg에다 키는 1m가 채 되지 못했다. 빼빼 말랐고 밥도 잘 먹지 않았다. 예민한 아이였다. 자주 울고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그래도 재호가 좋아하는 것은 있었다. 먼저 동요를 너무 좋아했다. 재호를 몇 년간 돌보셨던 활동보조인도 여러 가지 노래를 부르며 놀아주시곤 했다. 노래가 나오면 손바닥으로 책상을 두들기거나, 선생님의 손바닥을 두들겼는데 4비트의 리듬을 쪼개가며 박자 콤비를 기가 막히게 조합했다.


그는 노래를 사랑했다. 내가 노래를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학생이 되었고, 내가 노래를 그쳤을 때 "나에게 노래를 주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는 듯 기염을 토했다.


나는 녀석의 열정을 이기지 못하여 온갖 동요를 불러주었고, 같은 노래가 지겨워지면 새로운 노래를 찾아 익혔다. 그리고 마침내 수십 개의 동요를 섭렵한 동요 마스터가 되었다.


재호는 말에 멜로디가 없으면 수업을 잠자코 듣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일상의 대화와 수업조차도 노랫말처럼 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또 어린이 뮤지컬 가수가 되었다. 또 재호는 리듬을 사랑했기 때문에 나는 비트박서가 되어 노래와 함께 입술로 드럼을 변주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재호는 내 손바닥에 손뼉치며 이보다 행복할 수는 없다는 미소로 천장을 보았다.




재호는 손뼉 치는 것과 물건을 던지는 것 외에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결코 연필을 쥐지 않았고, 숟가락을 잡지 않았으며 억지로 쥐게 하면 거칠게 집어던졌다. 밥을 먹을 때도 입만 벌리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10년 이상 고착된, 오랜 습관이었다.


아, 이렇게 무거운 교과서를 한 손으로 들어 던지는 악력과 팔의 근력, 4비트를 자유로이 쪼개는 순발력과 조절력, 손가락을 돌아가며 빠는 섬세한 소근육 기능! 그것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다니, 너무도 안타까웠다.


재호가 스스로 간식을 먹게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학부모님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재호의 활동보조인 샘도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재호의 손 기능을 재호를 위하여 돌려주고 싶었다. 손은 물건을 던지거나 박수를 치기 위한 용도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숱하게 많은 접시와 음식이 교실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내 얼굴로 손바닥이 날아오기도 했다. 날카롭게 악 쓰는 소리는 흡사 "감히 나 보고 손을 쓰라는 말이더냐!"라고 외치는 교만한 왕족 같았다. 재호는 앞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책상 위에 놓인 것을 잘 보지 못했다. 나는 전략을 바꾸었다. 수라상 내시마냥 상을 차리고 하나씩 입에 넣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흑백 요리사가 나오기 한참 이전에 나는 이미 흑백 요리사를 찍었다. 이븐 하게 간이 되어 있는 새우깡에다, 익힘의 정도가 완벽한 스트링 치즈를 잘게 찢어 곁들인 간식상을 대령했다. 그리고 재호의 입에 한 입 쏙 넣어주었다. 냠냠냠. 쩝쩝쩝. 감고 있던 재호의 눈이 살짝 떠지며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그 미소! 생존이었다!


나는 재호의 손목을 잡고 접시에 손을 올려주었다. 그러자 손가락으로 새우깡을 집어 들었다.




재호에게 먹기 기술을 가르칠 때 사용한 기법은 특수교육의 행동수정에 자주 등장하는 후진형 행동연쇄와 최대-최소 촉진법이다.


후진형 행동연쇄(Backward Chaining)는 특정 기술을 작은 행동으로 쪼개어 뒤에서 역순으로 하나씩 가르치는 행동수정 기법이다. 마지막 단계부터 시작해 점차 앞 단계로 나아가며 학습자가 자연스러운 강화를 빨리 경험하게 하는 것이 특징으로, 일상생활 기술 학습에 효과적이며, 학습자가 직접적인 보상(강화)을 자주 접하게 해 동기 부여에 유리하다.
최대-최소 촉진법(Most-to-Least Prompting)은 학습 초기 단계에서 학습자가 목표 행동을 정확히 수행할 수 있도록 가장 강한 촉구(예: 전신 신체적 촉진)를 먼저 제공하고, 점진적으로 촉구의 강도를 낮추어 결국에는 독립적인 수행을 유도하는 교수 전략이다. 성공 경험을 높여 동기를 부여하고, 과도한 의존성을 줄이며, 발달장애 아동이나 초보 학습자의 기술 습득에 효과적인 방법으로, '도움 감소법'이라고도 한다.


이 과정을 거쳐 재호는 혼자서 간식을 집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님은 내 얘기를 듣고도 믿지 못했다. 그래서 혼자 간식 타임을 즐기고 있는 재호의 동영상을 찍어 보냈고, 집에서 난리가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버님은 턱을 괸 채 아들이 간식을 맛있게 집어먹는 장면을 뿌듯하게 지켜보았다.


제 손으로 과자를 먹는 게 이토록 기뻐할 일이라는 걸, 세상의 많은 초등학생 부모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어린 자녀들이 공부 안 한다고 들들 볶는 부모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 봄직 하다고, 그때도 지금도 생각한다.




한 번은 학교 단체 소풍으로 에버랜드를 갔다. 그런데 우리 반 아이들의 건강 이슈로 재호만 가게 되었다. 우리 반은 나와 특수교육실무사님, 재호와 재호의 활동보조선생님, 이렇게 넷이서 움직였다. 어른 셋에 아이 하나였다. 가족처럼 보였을 것이다.


나는 재호를 휠체어에 태우지 않고, 한 손으로 안아 들고 걸어 다녔다. 그만큼 재호는 가벼웠다. 재호는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대기를 서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재호를 데리고 롤러코스터를 탔다. 생애 처음으로 롤러코스터를 타본 재호는 올라갈 때는 자신에게 닥칠 고난을 모른 채 생글생글 웃다가 곤두박질칠 때는 고개를 숙이고 안전바를 두 손으로 힘주어 잡았다. 다시 평행 구간에 이르자마자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내 얼굴을 마구 때렸다. 아... 너무 재미있었다.


재호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재호를 안고 돌아다니던 와중에 녀석이 내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재호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하고 보드라웠다.


재호는 내 아들보다 먼저 나를 이렇게 부른 아이였다.


"아빠, 아빠."


보고 겪은 일을 썼으나, 인물의 이름과 상황은 일부 각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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