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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Apr 21. 2022

사춘기 내아이만 힘든 까닭

엄친아라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유행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엄친아가 부정적으로 쓰일 때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엄마 친구 아들은 늘 공부도 잘하고 똑똑하고 모범적이다.
내 집에 있는 내 아들과는 내 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왜. 도대체 옆집에는 있는 모범생이 우리집에는 없는 걸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아이도 엄친아보다 나쁠 것도 없다.
나름 개성도 있고 의리도 있고 성격도 저 정도면 나쁘지 않다.
한가지 부족한 게 있다면 뛰어난 능력? 높은 점수? 완벽한 끈기?
욕심인거 안다. 모두다 가진다는 것이.
욕심 부릴 생각도 없었는데 자꾸 내 아이에게 욕심부리는 말.
엄친아가 문제인거다.

엄친아들은 어떻게 그렇게 모든걸 잘할까?
늘 예의바르고 그렇게 모범적일까?
그게 과연 가능은 한걸까?
가만히 생각하다가 문득 깨닫는다.
어쩌면 엄친아는 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건 아닐까?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옆 집 엄마가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하는 엄친아가 실제로 존재 하는지
생각해봐야하는 이유는 옆집에서도 분명히 트러블이 있을거니까.
문제 없는 집은 없으니까. 갈등을 통해 아이들은 성장하는 것이니까 하는 소리다.
엄친아네 집에도 분명히 문제는 있다.
아이가 완벽할리 없다.
옆집엄마 또한 그렇게 교양있고 아이를 사랑으로만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다.
나랑 똑같은 인간이다.
다만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하는 건 아닌지는 생각해봐야한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늘 행복해보이고 완벽해보이는
sns의 허상처럼

물 밑에서 실컷 발을 구르고 있는 우아한 백조처럼
엄친아에게 숨겨진 더 큰 어려움이 존재할 지 누가 알까?

사춘기 우리 아이만 왜 힘든걸까?라는 의문이 찾아올때
잊지말자.
엄친아라는 것은 보여지는 일부의 모습 잘 포장된 일부일 뿐이라는 걸.

부딪히고 깨지고 까지고 부족해도
엄친아보다 내 새끼가 몇배나 더 실상 인간적이고 실존한다!!!!
엄친아는 허상이고 내 아이는 현존한다.

곁에 있는 것에 눈을 돌리자.

허상을 좇다가 내 아이 맴찢하는 일
부디 없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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