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초등학생은 초등학생대로 중학생은 중학생 나름의 어려움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어려운 이 상황에서도 공감하는 딱 한가지가 있었는데요. ‘내 아이가 그래도 고3은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감정이었을 거에요. 중학교 3학년은 나름 그래도 아직 고등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위안이 존재했던 걸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고등학생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중에서도 학교도 못가고 오도가도 못했던 고3들은 어땠을까를 말입니다.
코로나가 생긴 2020년 저희 조카가 고3이었습니다. 처음엔 모두 너무 화들짝 놀랐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나 빨리 코로나가 퍼질 줄 몰랐으니까요. ‘세계화,’‘글로벌’이 좋은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아이들은 일단 건강이 걱정되니 집에서 머물렀습니다. 학교에서 한창 모의고사를 보며 수능 준비를 해야하는 정말 중요한 시기의 고3에게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짧게 끝날 줄 알았으니까요.1학년보다는 2학년, 2학년보다는 3학년 성적이 좋았던 조카였기에 학교의 기대주였습니다. 그런데 이 기대주가 학교에 가질 못했습니다. 자기 주도 학습을 해오던 아이라 학원 등록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첫아이들의 바른 심성이 더해진 fm스러운 아이였습니다. 국가에서 말리는 사교육 등록을 받아들일리 없었지요. 자기 스스로 알아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언니는 무조건 아이의 말을 믿었지요.이제껏 별 학원 없이 국어,영어 모두 모의고사에서 1등급을 받던 아이였으니까요.

그런데 아이가 점점 핸드폰 게임을 하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고3 스트레스에 코로나로 학교도 못가니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처음엔 가족 모두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금새 학교에 가면 다시 공부만 해야할텐데 숨을 쉴 시간이다 싶어서 그대로 두었던거죠. 어차피 곧 학교에 가게 될 테니까요. 그런데 3월이 지나도 학교가 개학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사상 초유의 4월 개학이 시작되면서 모의고사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하루 이틀 게임 하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자기주도학습 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기주도학습이 갖춰진 시스템 안에서 가능했던 겁니다. 하루종일 주어진 시간을 계획적으로 보내기에 아직 고3은 자기 조절력이 완성되지 않은 청소년일 뿐이니까요. 코로나가 터지면서 학교의 소중함 여럿을 알았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소중함이 바로 ‘이른 아침 일어나 책상에 앉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됐든 책상앞으로 아이를 데려다 두면 아이는 덜 깬 정신으로도 공부를 시작하니까요.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학교는 무너졌습니다. 고3에게 주어진 컨텐츠 방식의 수업이 고3을 책상 앞으로 끌어오진 못했습니다. 아이는 컨텐츠를 틀어놓고 여느 중학생처럼 한손에는 핸드폰을 쥐었습니다.

그 사이 강남권 아이들은 고액 과외를 시작했다는 카더라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돈 있는 집에서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 마구 사교육을 시작했다고요. 학교가서 쓸데없이 버리는 시간을 줄였으니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엄마들이 아이들 스케줄 쨔느라 무지 바빠졌다는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저도 언니에게 전화해서 저희 집 근처 대형 재수학원에라도 아이를 등록시키라고 했습니다. 언제까지 아이를 방치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조카는 완강했습니다. 곧 학교로 돌아갈 거고 그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무리해서 서울까지 올라가 그 틈을 이용해 학원에 다니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입니다. 입시는 옳고 그른게 문제가 아니라 결과가 말을 해준다는 설득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무리하면서 공부하지 않았어도, 정석대로 했어도 국어,영어에서 1등급을 받았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렇다면 과학이라도 반짝 과외를 받아서 up을 시키라고 했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고3정도 되면 엄마가 아무리 옆에서 윽박질러도 아이를 물가에 데려가 억지로 물을 먹일 순 없습니다. 아이는 학교갈 날만은 손꼽아 기다리며 한손에 핸드폰을 쥐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루만 하루만 하다가 수개월이 흘렀습니다. 학교는 여전히 열리지 않았고 그 틈에 사교육을 받은 친구들은 등급이 쑥쑥 향상되었습니다. 누구는 인생역전이 열리는 시간, 누군가는 한없이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수능 날. 우리 조카는 마스크와 칸막이 사이에서 수능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한꺼번에 향상되지도 금새 떨어지지도 않는다는 국어와 영어는 여전히 1등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성적이 급하락 한다는 수학과 반짝 과외마저 거부했던 과학에서 좋지 않은 등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오히려 홀가분 하다 합니다. 그간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공부할 수 없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아이는 편안해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모인 저는 욕심이 많아서인지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더군요.
‘정직하게 살아서는 나라가 시키는 대로, 학교가 시키는 한에서 그 선을 지켜가며 공부를 하다가는 가지고 있던 것 마저 잃는다.’는 예시를 얻은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코로나가 7000명 8000명이 확진이 되어도 아이가 다니는 수학 과외를 포기할 수 없는 명분이 생긴 듯 했습니다.
여전히 코로나는 진행중입니다. 그리고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서 우리 아이들과 엄마들은 달리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고군분투 합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우리 아이만 뒤처지고 말리라는 두려움이 엄마를 달리게 합니다. 아이를 채찍질 하게 합니다. 공정이란 무엇일까요.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요. 저는 제 아이가 고3이었다면 살림을 못하는 지경이 되더라도 아이 고액과외를 붙여 아이 인생을 업그레이드 하지 않았을까 하는 못났지만 현실적인 생각을 해 봅니다. 모두가 힘차게 달리고 있는 이 시간. 내 아이만 멈춰서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코로나로 모든 것이 멈췄지만 입시전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아니 과열되고 있습니다. 이 순간 엄마는 더 눈이 바알개져서 이리기웃 저리기웃 할 수 밖에 없네요. 그나마 1이라도 희망을 걸고 균형을 잡아주던 학교라는 공간이 유명무실 해진 지금.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길을 잃은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