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수학 문제 푸는데 옆에 있어 주면 안 돼?”
“응. 그래. 알았어.”

화장실에서 응가 할 때 조차 기어와 무릎에 앉혀두고 볼 일 봤던 아이입니다. 뭐 그 까짓 수학 문제 푸는 것 쯤. 옆에서 지켜볼 수 있지요.
시작은 ‘정말 대단하다.’는 경이로운 눈으로 아이 문제 푸는 걸 볼 수 있었어요. 아이가 너무 좋아하더라구요. 저도 참 좋았어요. 오랜만에 훌쩍 큰 내 아이 얼굴도 실컷 보고, 대단하다 엄지척도 날려주며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시간이 너~~무 안 가는 거에요. 수학 문제집 한 번 보고 아이 얼굴 한 번 보고 했는데 겨우 10분 밖에 안 지났어요. 허리도 아픈 것 같고 좀이 쑤시기 시작합니다. “잠깐만, 엄마가 간식 좀 가져올게.”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다음날, 다시 시작입니다. 실상 수학 문제집만 쳐다보면 내가 죄다 풀어버리고 싶습니다. 아이가 빨리 숙제를 마쳐야 나도 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이는 하세월이에요. 급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집중 좀 했으면 좋겠는데 부시럭 부시럭 할 일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저를 보고 웃어주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해서 한번은 참습니다. 그런데 점점 마음이 급해집니다. 채점해서 틀린 문제가 있을 때쯤엔 결국 한계에 다다릅니다. 또 다시 지리~하게 문제를 풀어야 된다고 생각하니 울컥하네요. 애 실력이고 뭐고 빨리 풀고 끝냈으면 하는 마음 뿐입니다. 아이가 혼자서 문제를 다시 풀고 생각할 시간 따윈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건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풀면 되겠네. 빨리 빨리 좀 해.” 결국 짜증스런 말투로 마무리를 하고 마네요. 아이 수학 실력이고 뭐고 좀 쉬고 싶습니다. 나도.
또 왔습니다. 수학 문제집 푸는 시간.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 나도 책 하나를 들고 책상에 마주 앉습니다. 아이는 문제집 풀고, 저는 자기 계발서 읽고. ‘엄마도 책 읽고 공부하는 교양있는 여자야.’ 보여주고 싶어 책을 가져오긴 했습니다만. 한 줄 읽고 딴 생각 한줄 읽고 딴 생각. 아이랑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책에서 뭐라뭐라 하긴 하는데 머릿 속에 하나도 남질 않습니다. 결국 아이 몰래 휴대폰을 책 속에 끼워 넣습니다. 유튜브를 켭니다. 묵음으로 봐야 해서 자막 있는 영상으로 신중하게 고릅니다. 아이가 눈치 챌지 모르니 조심조심 행동해야 해요. 들키면 위신이 안 서니까요. 중간 중간 책 넘기는 시늉까지 하며 자알 넘겼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채점의 시간. 아이는 틀린 것도 신기하게 봐주는 엄마이길 바라나봅니다. 연신 싱글벙글이에요. 하지만 단연코 나는 아닙니다. 지루하게 문제를 푸는 둥 마는 둥 하는 아이에게 결국 한마디 하고 말았습니다. “에이그. 이것도 모르니? 답답하다. 진짜.”아이는 눈물이 핑 돕니다. 하지만 나도 많이 참았다구요. 빨리 이 자릴 끝내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어. 이건 이렇게 이렇게 풀면 되겠네. 문제 좀 똑바로 읽어. 자꾸 딴 생각 하니까 그렇지. 집중 좀 해. 집중 좀. ” 책 한줄에 그렇게 집중 못하던 사람답지 않게 아주 당당합니다.

엄마도 쉬고 싶습니다. 엄마도 놀고 싶습니다. 엄마도 힘듭니다. 내 자식 예쁘죠. 내 자식 참 좋아요. 너무 이쁜 아이지만 학원 간다고 잠깐 나갈 때 더 이쁘더라구요. 수학 문제 다 풀고 틀린 거 없어서 봐줄 거 없을 때 더더 이쁘더라구요. ‘엄마 힘드니까 좀 쉬어.’ 하면서 내 방문 닫고 나가줄 땐 세상에서 제일 이쁩니다. 아이들 다 재우고 나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겠다고 겨우 잠을 참아내는 것도 다 그 이유에요.
sns에서 다른 사람들은 애 키우면서도 어쩜 저렇게 잘 꾸미고 다니는 걸까요. 집집마다 보모 한명씩 있는 건가요? 다른 집 애들은 또 그렇게 인성도 좋고 성격도 좋고 공부도 잘해요. 나도 정성 다해 키운다고 키웠는데 이건 뭐야 싶습니다.에잇 남들 사는거 보면 뭐하냐 싶어 유튜브를 켭니다. 패션 영상도 보다가 웃긴 영상도 보다가 드라마도 봅니다. 결국은 아이 공부시키는 법으로 마무리가 되더군요. ‘아이구 공부법 백날 보면 뭐하나 애가 안따라주는데.’ 싶어요. 차라리 내가 지금 공부하면 서울대 갈 수 있을 거 같다는 말 농담 아닙니다. 보고 있으면 잔소리 하게 되고 떨어져 있으면 애틋하니.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완벽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빈틈 투성이에요. 놀고 싶은 것도 많고 때로는 내 멋대로 하고 싶죠. 그런데 아이가 보고 있으니 안된다 싶어 얼마나 나를 억누르는지 몰라요. 아이 생각해서 좋은 음식만 권해보지만 나도 라면 좋아해요. 과자 실컷 먹고 싶다구요. 넋놓고 드라마 볼 줄 압니다. 한때 친구들 사이에서 프로게이머 였다구요. 참고 있다는 거 애쓰고 있다는 거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압니다. 그래서 나를 토닥토닥 해주고 싶어 오늘 밤도 야식으로 라면을 끓입니다. 새벽이 가까워오지만 아직 자고 싶지 않습니다. 눈도 뻑뻑하고 목도 마릅니다. 물을 마시다가 낮에 아이가 주스 한잔 따라준 게 갑자기 생각나네요. 그래도 ‘내 자식이 최고다.’ 하며 휴대폰에 아이 사진 뒤적이다 잠이 드는 게 나에요. 엄마에요.

저는 오늘도 아이 수학 문제집 푸는데 마주 앉았습니다. 오늘은 또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나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봅니다. 아이 혼자서 풀었으면 정말 좋겠는데 그 말이 안 나옵니다. 아이 앞에서 단단하고 바른 엄마이고자 내 마음을 숨긴 채 저 또한 책상에 마주 앉습니다. 아이가 저를 보고 웃습니다. 나도 따라 웃습니다. 또 다시 읽히지 않는 책을 얼마나 더 읽어야 하는 걸까요. 하지만 나는 엄마입니다. 내가 이 책상에서 졸다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이 책상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