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쉬는 시간이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유독 졸려 멍하니 앉아있는데 우리 교실에 누군가 들어왔다.
누군가 싶어 가만히 쳐다보는데 갑자기 교실을 두리번 거린다.
"이 교실 수업 없죠? 혹시 여기 전화 쓸 수 있나요?"
자세히 보니 교사 식당에서 한두번 정도 앞자리에서 밥을 먹은 기억이 난다.
올해 새로운 선생님인 모양인데 급한 용무가 있나보다. 특별실인 우리 교실에 찾아온걸 보니.
(참고로 나는 특수교사라서 일반 아이들도, 교사들도 우리 교실에 발길이 뜸한 편이다.)
"네. 여기 제 자리에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두리번 거리더니 내 앞자리 빈자리 위의 전화기를 찾는다.
"이것도 연결할 수 있지 않아요? 전원만 꽂으면 되던데."
자연스럽게 빈 자리에 자신의 물건을 두더니 전원버튼을 연결하려는 모양이다.
그 모양새가 너무나 자연스러워 깜짝 놀랬다.
우리 교실에 분명 처음 와본 사람일 텐데 나 보다도 더 능숙해 보인다.
"아. 여기요. 이렇게 전기 연결하면 됩니다."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는 선생님이지만 같은 학교 교사니까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내가 지금 스포츠 시간인데 전화를 쓰려구요. 내가 가끔 여기 와서 전화를 써도 될까요?"
나는 '가끔'이라는 말에 포인트가 꽂혔다.
"네? 가끔요? 학부모 상담 전화이신가요?"
"아니. 개인적인 전화에요."
오늘 스포츠 수업 시간에 갑자기 학부모와 상담할 일이 생겨 우리 교실로 찾아 온 거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아닌 모양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어떻게 판단을 해야 하나 망설였다.
'저 교사는 지금 수업 시간 중이다.
이곳은 교실이다. 개인적인 공간이 아니다.
저 사람은 공적인 공간인 교실에서 개인적인 통화를 하려고 한다.
나는 저 사람과 전혀 친분이 없다.'
평소의 나 같으면 그러라고 했을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라고 생각했을 거다.
아니 무엇보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을 테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기엔 어제 퇴근길에 내가 읽은 책 한 구절이 내 뇌리를 때렸다.
"이상한 사람들은 처음에 간을 본다. 이 사람이 만만한지 아닌지를 실험하는 거다.
그때 만만하게 보이면 그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 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친절할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의 인성이 검증 된 다음에 마음을 열어도 된다.
당신의 만만함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단호하게 노라고 말하라."
그랬다. 내가 지금 이 사람의 시험대에 오른 것이구나 싶었다.
"개인적인 전화요? 글쎄요. 그건. 좀."
나는 말끝을 흐리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 선생님은 전화를 거는지 마는지 수화기를 드는 소리를 내더니 내려놓고 금새 자리를 정리했다. 어떤 개인적인 통화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감사합니다."
전화통화를 하지도 않았는데 감사하다고 할 이유가 없었다.
"다 쓰셨어요?"
"네."
황급히 자리를 정리하고 휑하니 교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사람은 빠져나갔지만 기운은 남아있음일까. 나는 당황스럽고 황당한 기분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 사람 이름을 먼저 알아야지 싶었다. 나는 교사명부에서 한사람 한사람 이름을 쳐다보았다. 이 학교에서 4년차 근무하고 있기에 왠만한 사람은 얼굴과 이름이 매치 되었다.
'이 사람이다.'
이름을 알아낸 나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실무사 샘에게 톡을 보냈다.
"샘 혹시. 이 선생님 잘 알아요?
갑자기 우리 교실에 와서 지금 자신이 스포츠 수업 시간인데 우리 교실에서 개인적인 전화를 쓰겠다는 거에요. 나 그 선생님 거의 처음 보는데. 너무 당황스럽네요."
실무사 선생님은 잘은 모르지만 자신도 그 사람에게 당한 적이 있단다.
" 저한테 우리 실 물건을 빌려달라고 하더라구요. 학교 옮기자마자. 일면식도 없는데. 그래서 그러시라고 했더니 저보고 가져다 달라는 거에요. 저 그때 엄청 기분 나빴어요. 제가 자기 과목 실무사도 아닌데 왜 저를 시켜려 드냐구요. 빌리는 주제에"
빌리는 주제에 서서 받겠다는 심사인 거였다.
"근데 그 선생님이 왜 그랬는지 알거 같아요. 전에 그 선생님이 함께 있던 학교 특수교사 샘은 정말 친절했거든요. 그 학교도 지금 우리 학교 처럼 실무사 선생님 빈자리와 전화가 있었어요. 내가 보지 못했지만 아마 그 교실에서 전화를 썼을 거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그때 그 어리고 착한 선생님이 그러시라고 했을 테구요. 그 선생님 성향으로 봐선 개인적인 통화할때 자리도 비켜 줬을 거에요. 그러니 우리 학교 와서도 봤겠죠. 실무사 자리가 비어 있다는 걸. 그래서 찾아왔을 거 같은데요."
어제 책을 안 읽었으면 어쩔 뻔 했나 싶었다. 사람 좋은 척 하다가 거절을 못했을 거다. 그리고 두고 두고 나를 만만하게 대한 그 사람 때문에 불편했겠지.
하얀색 삼나무 알비노 레즈우드는 엽록소가 없다. 그래서 스스로 광합성을 하지 못한다.
그럼 이 아이는 어떻게 살아갈까. 옆에 있는 초록이들의 뿌리와 스스로 연결한다.
옆 나무가 죽기살기로 해낸 광합성의 영양분을 뺏어 성장한다.
남이 열심히 일 한 결과물을 소리 소문없이 얌체처럼 빼먹고 제 자리를 키워내는 거다.
염치 없이 제자리도 아닌 곳에 불쑥 들어와서 마치 제 것인양 뻔뻔하게 자리를 잡으려는 모습이 식물이지만 얄밉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레즈우드는 부끄러움을 알아서일까. 사람들의 눈에 잘 안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에서만 서식한다. 자기도 양심이라는게 있는 모양이다. 대 놓고 도둑질을 하는 뽐새를 들키지 않고 싶은지도 모른다.
식물도 사람도 부끄러움을 알았으면 한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인양 취할 때의 그 수치스러움으로 한발 더 나아가고자 할때 멈출 수 있어야겠지.
오늘 나는 내 것이 아닌 어떤 것에 손을 내밀었는지. 그 손길이 부끄럽진 않았는지 되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