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봐줘.

"나는 딸이 다섯이 있는데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딸이 다섯이나 있는데 어디사는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너는 딸인데 왜 안오는 거야?"

엄마가 갑자기 전화해서 묻습니다. 안그래도 운동하느라 진이 빠진 나에게 그 소리는 달갑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주중 내내 바쁜 일들이 잔뜩 쌓여있습니다. 거기다 주말에 친정까지 내려가야해서 쉬는 날이 없어 불만인데요. 내일 모레면 내려갈텐데 왜 안오냐는 소리가 달갑게 들리지 않습니다.

"평일인데 일하는데 어떻게 내려가. 그리고 그게 너무 괴로우면 차라리 딸이 다섯이라는 걸 잊어버려. 그러면 아온다고 고민할 일도 없겠네."

독설아닌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치매 초기라 정신이 깜빡깜빡하는 엄마는 그래도 딸의 다정한 목소리와 대답을 듣고 싶었을 줄 압니다. 하지만 나도 먹고 살기 바쁘니까요. 엄마라고 해서 언제까지 다정하게 대할 수있는 에너지가 넘치는 것은 아니지요. 한편으로는 어릴 적에 다정하게 대하지도 않았으면서 어린 아이처럼 내놓으라고만 하는 엄마가 야속하기도 합니다. 받았어야 줄수 있을 텐데요. 나도 받지 못한 다정함이 답장으로 나갈리 없었지요.

"나 어제 병원 갈일이 있어서 서울 갔었어. 너는 근무하니까 오빠랑 큰언니한테 전화했었지. 기차 시간 많이 남아서 얼굴이나 볼까 하고. 큰언니는 산에 갔다고 하고 오빠는 멀리있더라. 그런데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워하는 것 같지 않았어. 그래서 기차 시간 변경해서 그냥 내려왔지."

그 다섯중에 넷째 딸인 언니가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평소에 샘도 많고 욕심도 많은 언니입니다. 내 바로 위 언니인지라 싸우기도 많이 했지요. 아니 싸웠다기보다 순하고 성실했던 내가 많이 당했다는게 맞겠네요. 똑똑하고 일잘해서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나를 무던히도 미워했었지요. 내가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나를 때리면서 죽어버리라고 할때는 정말 의아했습니다. 도대체 왜 나보고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하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요. 그런 언니가 서울에 와서 오빠에게까지 전화를 했다니 놀라웠습니다. 오빠랑 평소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도 아니었지요. 둘이 만나면 어색할 거 같은 사이인데도 용기내서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는데 왜 그랬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몇일 전 둘째 언니가 오랫만에 서울에 다니러 왔었거든요. 기왕 서울에 왔으니 자매끼리 만나서 놀자 하여 모여서 쇼핑도 하고 우리 집에서 자면서 긴긴 수다도 떨었습니다. 그걸 단톡방에 공유했더니 부러웠던 모양이지요. 생전 하지도 않는 전화를 한거 보니 말입니다. 짠한 마음이 들어 언니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오랫만에 서울와서 연락했을 텐데 다들 못만나서 서운했겠다. 다음번에는 오기 전에 미리 연락해. 만나서 좋은 시간 보내자. 자매가 많으니 얼마나 좋아. 엄마가 키울 땐 어려웠겠지만 우리한텐 제일 좋은 선물을 주셨어. 자매들이 있으니 너무 든든하잖아."

언니는 서운하지 않았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언니 마음 속에 조금이라도 서운했던 감정이 녹아내렸으면 싶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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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합니다. 관심받고 싶어해요. 마음 속에 관종의 끼가 조금씩 스며들어 있지요. 마치 사랑초 처럼요. 사랑초는 예쁘게 꽃을 피우다가 식집사가 물을 주지 않으면 아주 죽는 시늉을 합니다. 잎을 땅끝까지 내려트리고 기운 쳐져 해요. 식집사가 돌아보고 안되겠다 싶어서 물을 주도록 말이에요. 한눈에도 티가 나게 확실히 표현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물을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삐쭉 하늘로 솟아오르지요. 나 좀 봐달라고 나 좀 사랑해 달라고 온몸으로 말을 하는것 같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식물도 저럴진대 사람은 오죽할까요.

자매라는 선물을 마련해준 딸이 다섯이나 있는 엄마가 전화를 또 하십니다. 전화를 눌러놓고도 누른지도 몰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긴 하지만요. 오늘은 마음을 내어 엄마의 투정을 받아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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