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라라 라라라라."
기분 좋은 음악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웁니다.
하지만 나는 웃을수가 없습니다. 음악소리가 전혀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 음악이 명곡이라고 해도 지금 나에게 아닙니다.
아침 6시 40분 아침 단잠을 깨우는 알람 소리니까요.
알람을 끄면서 생각합니다.
"어젯밤에 조금만 일찍 잘걸. "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후회일뿐 한번도 그 생각 때문에 일찍 잔적이 없습니다.
잘시간이 되면 밤마다 생각합니다.
"5분만 더 놀다자자. 나 오늘 애썼잖아. 5분 정도는 줘도 되잖아."
그렇게 5분만 5분만 하면 썼던 인심이 야속해지는 순간이 바로 아침 시간입니다.
그때 그 5분만 미루지 않았어도 아침에 일어나는게 덜 힘들었을 텐데 말입니다.
왜 이렇게 정신이 매번 빠져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저녁의 5분과 아침의 5분은 이렇듯 나에게 다른 삶의 무게로 다가옵니다.
이건 비단 나의 시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풍성한 식물을 사오면 두개로 분갈이를 해서 심습니다. 하나의 화분에 들어가기에 너무 꽉찬 뿌리를 나눠 정성스럽게 나눠 심지요. 그리고 같은 햇볕과 동량의 물, 바람을 쐬워줍니다. 식물에게 필요한 삼박자를 다 갖춰주고 정성스럽게 성장을 기다려보는데요. 결과가 늘 같은 것은 아닙니다. 같은 뿌리를 나눴다는게 믿어지지 않을만큼 두개의 화초가 다르게 자랍니다.
나에겐 제브리나가 그랬습니다.
하나의 화분에서 둘로 나눠심었는데요. 하나는 괜찮은데 하나는 자꾸 잎이 또르르 또르르 말렸습니다. 잎이 힘이 하나도 없고 새잎도 내주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찾아보니 습도가 낮으면 잎이 말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잎에 비닐을 씌워주었지요.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잎이 다시 펴졌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잎에 비닐을 씌워둔채 제브리나를 키울 수는 없었습니다. 다시 비닐을 벗기자 잎이 또르르 말리고 아래로 축 늘어지고 말더군요. 다시 화장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물을 뿌리고 욕조에 물을 담아 그 곁에 두었습니다. 잎이 조금 펴지는것 같더군요. 하지만 목욕을 할때마다 제브리나가 발길에 채였습니다. 흙이 욕조에 들어가서 불편하기도 했구요.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둘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베란다 원래 자리 쌍둥이 제브리나 곁에 두었는데요. 이 녀석만 잎이 또르르 말리고 쳐지고 맙니다. 내가 키울 수 있는 환경에서는 이렇게저렇게 해봐도 살릴 도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나는 자꾸 말리는 녀석의 환경을 바꿔주기로 했습니다. 언니 집에 입양을 보냈지요. 언니 집에서 언니도 처음엔 비닐을 씌워서 아이를 달래주었습니다. 습하고 고온을 좋아하는 녀석에게 맞추느라 화장실에도 두고요. 그런데 그러는 사이 아이가 건강해졌나 봅니다. 이제 일상의 환경에서도 제브리나 잎이 말리지 않고 새잎을 내준다는 신기한 소식이 들려왔지요.
아이를 키우면서 자주 느끼는 생각들입니다. 왜 똑같은 환경에서 같은 부모아래 자랐는데도 아이둘이 저렇게 다른지 모르겠을 때가 참 많거든요. 특별히 편애를 한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왜 그렇게 다른 방향으로 자라는지 알다가고 모르겠습니다. 제발 성향을 비슷하게 맞춰주었으면 싶을 때가 참 많지요. 아이마다 다른방식의 대처법을 가져야 하기에 어려울때가 한두번이 아니니까요. 오늘도 우리 집에는 그런 이유로 남매싸움이 한창입니다.
"누나는 엄마 오니까 말도 잘하네. 나랑 둘이 있을때 내가 말시키면 무시하면서 대답도 안하더니. "
동생이 먼저 투덜거렸습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 학교 다녀오면 혼자서 쉬고 싶어. 그런데 자꾸 네가 말을 시키니까 저리 가라고 하긴 그래서 가만히 있는거 뿐이야."
누나도 할말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 나도 지금 숙제해야해서 누나가 엄마한테 이야기하는 소리 듣고 싶지 않거든. 공부에 방해 돼. 그러니까 이제 말 그만하고 이 방에서 나가줄래?"
동생의 막강 공격이 이뤄집니다. 마음 상한 동생의 이야기에 누나는 대꾸하고 싶어하지 않으며 방에서 나갑니다. 오랫만에 엄마와 얘기하고 싶었던 누나를 이야기하지 못하게 막는 동생이 서운하지만 그 마음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참 조용하고 혼자있는걸 좋아하는 누나와 사람을 좋아하고 대화나누는 걸 즐기는 동생 사이에서 나는 도대체 누구에게 맞춰줘야할지 너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편애를 안한다고는 하지만 누군가에는 조금 더 편리한 방법으로 결론을 내리고 행동하겠지요. 그럼 다른 편의 아이는 그것이 못내 불편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불편함을 이기기 위해 다른 환경을 향해 떠날지도 모르겠네요. 마치 내가 멀고먼 서울로 직장을 찾아 온 것처럼요.
자식과 부모 사이에도 케미라는게 존재할 겁니다. 내가 이유없이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불편한 행동일 수 있겠지요. 그래서 자식 키우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