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이다. 요이 땅 준비하고 있다가 정시가 되면 잰 걸음으로 지하철을 향해 간다. 지하철 한 대를 놓치면 10여분을 기다려야 한다. 조금이라도 지체 했다간 오후 일정에 차질이 생기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는다. 지하철에서는 서서 운동을 한다. 앉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그나마 널널한 노약자석 앞에 자리를 잡는다. 나이가 들수록 근력이 중요하단다. 허벅지 힘으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노년기 행복의 관건이라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서울대 의사 선생님이 권해준 뒷받 들었다 놨다 운동을 하며 간다. 온다리가 뻐근할 정도로 해야 한다는데 그 정도 강도는 안 나온다. 나도 힘든 건 아는 사람이니까. 트레이너 선생님이 지켜보지도 않는데 스스로 힘들 정도로 운동을 할 수는 없다. 서있으면서 제대로 운동은 안했지만 그래도 앉는 것 보다야 낫겠지 싶은 마음으로 발을 몇 번 들었다 놨다 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벌써 내릴 차례다. 지하철을 타는 35분이 어떻게 보면 긴대 어찌보면 딱 적당하다. 직장에선 보지 못했던 가십거리를 서치하기 딱 적당한 시간이다. 내게 주어진 짧은 자유시간에 감사하며 지하철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퇴근 시간이 지났으므로 시끄럽게 울리던 카톡은 조용하다.가족방이 있지만 특별하게 울리지 않는다.
하차하는 지하철 역사 안에 나의 참새방앗간이 있다. 기빙플러스라는 상점이다. 기업의 기부를 받아 장애인을 돕는 상점인데 저렴한 메이커 들을 판다. 언제나 쇼핑욕을 마음껏 풀지 못하는 나같은 워킹맘에게는 꿀같은 시간이다. 1000원,2000원 대 물건도 많다. 매번 물건이 새로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매일 들러 물건을 스캔한다. 어제 혹시나 놓친 물건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이들에게 필요한게 있을까 살펴보지만 이내 포기한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과 개성이 있다. 내가 예쁘다고 골라다줘본들 쓰지 않고 버려지는 일이 많으니 그도 의미없다. 그렇게 한 두가지를 사서 반찬 가게로 간다. 언젠가부터 반찬 가게에 들리는게 습관이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안먹는 반찬이 많아 한두가지라도 아이 입맛에 맞게 반찬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들도 이제는 안다. 엄마 반찬 보다는 반찬가게가, 사는 반찬보다는 배달음식이 더 자신의 입맛을 돋군다는 것을 말이다. 끝끝내 내가 만든 것을 고집하다가 죄다 버리고 말았던 입짧은 아이들의 이유식과 똑같다. 그럼에도 매번 배달을 시켜먹긴 어려우니 반찬을 산다. 그래야 아이가 적당히 젓가락이 닿을 반찬이 있을 것이다. 한손에 반찬을 들고 다른 한쪽엔 간식거리를 챙겨 마을 버스에 오른다. 덜컹덜컹 마을버스는 천천히 골목을 휘돌아 나를 아파트 단지에 내려준다.
아차차! 아이가 사다놓으란게 있는 걸 깜빡했다. 하지만 오늘은 안되겠다. 그나마 빠듯한 시간을 쇼핑으로 다 써버렸다. 그제야 급한 마음이 생긴 나는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들어선다. 식탁위에는 아이가 아침인지 오후 학원 등원전인지 먹다 말았을 음식들 잔해가 쌓여있다. 이걸 누구보고 치우라고 그러는건지 싶어 욱하다가 쓰레기통으로 얼른다 밀어넣어버린다. 잔소리 한다고 쉽게 달라지는 아이들이 아니다. 나 역시 간단히 요기라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빠르게 운동복으로 환복하고 시계를 본다. 지금 출발해도 시간이 빠듯하다. 그러기에 오늘 같은 날은 기빙 플러스를 스킵했어야 했는데. 견물생심이다.
뛰다시피 센터로 간다. 오늘은 요가 수업이 있는 날이다. 요가 수업을 하기 전 숨을 한번 깊이 고른다. 뻣뻣해진 내 몸은 요가로 매일 당겨주어도 다시 제자리 걸음이다. 선생님 말마따나 진짜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매일 운동하는 것이 나의 노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짧아질 대로 짧아져버린 햄스트링은 오늘도 내 다리르 반듯이 펴지 못하게 한다. 구부러진 채로 조금이라도 더 늘려보겠다고 노력은 해 보는데 끝내 구부러진 허리는 펴지 못한채 수업을 마쳤다. 온 몸에 땀이 흥건하다.
여전히 집안은 고요하다. 사온 반찬 중에서 마음에 드는 반찬을 하나 꺼내 식탁에 앉는다. 급하게 우걱 우걱 밥알과 반찬을 씹어 삼킨다. 힘들게 운동을 하고 나면 식욕이 싹 사라졌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된다. 내가 운동한만큼 비워진 열량을 채워주리란 열망이 다시 나의 숟가락을 들어올린다. 근무도 했겠다, 운동도 했겠다. 밥도 먹었으니 이제 하품이 줄줄 나온다. 이대로 누우면 잘게 뻔하다. 그럴수는 없으니 바로 욕조로 첨벙 들어간다. 내가 먹은 것들이 부디 내 살이 아니라 이 뜨신 물들 속으로 다 빠져버렸으면 하는 바램때문일까. 욕조의 물이 너무 뜨거워 몸을 들이밀었다 꺼냈다 혼자 야단이다. 욕조에 앉아 가족톡방에 메시지를 보내본다.
“다들 언제와?”
메시지를 읽지도 않는다. 한때 아이들 톡으로 활기가 넘치던 가족 톡방을 보다보니 금새 20분이 지난다.팔까지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이대로 조금만 더 버티다가는 어지러워 쓰러질 것 같을 때쯤 욕조에서 빠져 나온다. 반식욕 후에 절대 찬물을 먹지 말라는데 그럴수는 없다. 지금 찬물을 안먹으면 속에서 불이 튀어나올 것만 같이 덥다. 찬물을 벌컥 벌컥 마시고 난 후 선풍기를 켜고 나의 식물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하루 동안 주인없이 방치되었던 식물들을 하나씩 스캔한다. 나를 기다려주고 내 손길을 바라는 어린 존재들이 있어 조용한 가족단톡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오늘은 작게 말려있던 몬스테라 새잎이 또르르 말려있었는데 조금 펴졌다. 이 때 그대로 두면 건조해서 상처입은 잎이 될지도 모른다. 얼른 분무기에 물을 가득 담아 수분을 넣어준다. 서른 개도 넘는 화분을 하나 둘 살피고 나서 화분대 앞에 벌러덩 눕는다. 작은 베란다 공간에 정글처럼 만들고 싶어 빽빽하게 화분을 들였다. 식물들이 주는 녹색의 청량함과 산소에 빠져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편안하게 누워 지하철에서 하다만 핸드폰질을 다시 시작한다. 뉴스도 봤다가 당근도 들어가고 인스타랑 유튜브에 올라온 글도 검색해야 한다. 누가 시키는 건 아니지만 나 혼자 열심히다. 그러다가 문득 하품 한번. 잠깐만 눈 좀 붙여야겠다고 생각한다.
“삐삐삐삐삐”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설핏 든 잠에서 깼다. 딸아이다. 딸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열한시반이 넘었다. 아이는 하교했다가 집에 잠시들러 간단히 요기하고 학원에 다녀왔다. 부랴 부랴 일어나서 아이를 맞아야 하지만 몸이 무겁다.
“왔어? 그 냉장고에 새로 산 닭가슴살 있지. 그거 데펴서 저녁 먹어.”
자다깨서 정신히 하나도 없다. 저녁을 차려 줄 힘도 체력도 모두 바닥이다. 이대로 누가 나를 공주처럼 안아서 침대에 대려다 줬으면 좋겠지만 그럴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아이가 먹을 음식을 새로 산 반찬들과 함께 꺼내놓고 아이를 부른다. 아이는 뭘하는지 대답이 없다. 학원에 다녀왔으니 제 할 일을 끝냈다는 심보다. 피곤하니 그냥 자기를 놔두란다. 밥을 빨리 먹여 재우고 싶은데 그것조차 내마음대로 안될 모양이다.
‘에이 나도 모르겠다.’
꼼짝도 안하는 아이를 움직이는 방법은 없으므로 오늘도 포기다. 아침 일찍 출근하느라 아이 얼굴도 못 봤다. 저녁엔 자기도 그로기 상태라 건드리면 무슨 날카로운 말이 나올지 모르니 한발 물러서야한다. 덩그라니 빈 주인없는 밥상을 바라보며 나 또한 내 자리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해드폰으로 꽉 막힌 아이의 입은 열릴 줄을 모른다.
새벽녘 불빛이 환하다. 주섬 주섬 뒤져 시계를 보니 열두시 반이다. 부엌의 불빛을 따라 가보니 아이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너 지금 뭐하니? 이 시간에 아직도 밥을 먹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안자?”
아이는 열두시나 돼서야 밥을 먹기 시작했단다. 내 잔소리를 이겨낼 힘도 없는 아이는 묵묵부답으로 밥만 곱씹고 있다.
“나도 바쁘다고. 쉴시간도 없이 할 일이 많아. 누군 지금 밥 먹고 싶어서 먹는 줄 알아. 나도 피곤해.”
다 그만두고라고 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모두들 달리니까. 모두 저렇게 하는데 내 아이만 멈춰서면 안될 거 같다. 본인도 알기에 힘들어도 버티고 있을게다.한번 더 내 성질에 못이겨 버럭 화를 내다가 부디 제발 일찍 자라는 한마디만 남기도 돌아누워 잠을 청했다. 아이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마디도 나누지 못한 채다.
아침. 알람에 겨우 눈을 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는 밤새 미지근한 선풍기 바람을 쐬며 깊이 잠들어 있었다. 선풍기를 꺼주고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한웅큼 아이 머리카락을 간질였다. 아이 잠든 모습을 한번 살펴보고 부리나케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다시 퇴근 시간이다. 나는 어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저녁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안에는 나 혼자 뿐이다. 아무리 운동으 열심히 해봐도, 목욕물이 뜨겁다고 악 소리를 내봐도, 식물 자란 것 좀 보라고 눈치를 줘도 다가와 꺄르륵 웃으며 나를 반길 아이는 없다. 내가 저녁 시간을 아무리 즐기고 누려도 아이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을 거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다시는 나와 닿을 수 없는 아이의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무지 더디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