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뭐해?"
불꺼진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나를 보더니 남편이 다가와 묻습니다.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할때는 곧잘 회사 이야기며 수다를 즐기는 우리지만
집에 오면 각자의 공간으로 조용히 흩어집니다.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우리는 좋아합니다.
남편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유튜브를 보거나 영화를 봅니다.
나는 베란다 한쪽에 마련해 둔 식물진열공간에서 혼자 유튜브를 봅니다.
스트레칭도 하고 마사지도 하고 책도 읽고 전화 통화도 합니다.
작지만 내 공간입니다. 아무도 침범하지 않는 내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
참 좋습니다. 무드등만 켜고 누워서 조금씩 자라는 식물들을 바라보며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혼자있지만 평화로운 시간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 공간에 불쑥 남편이 찾아들었습니다.
갑자기 훅 들어온 남편의 방문에 당황한 나는 반대쪽으로 돌아눕습니다.
"뭐하는데?"
"왜 뭐 필요한거 있어?"
돌아눕는 내 목소리가 가라앉아있습니다.
"울었어? 당신 목소리가 운 소리인데?"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구 손사래를 칠수록 남편은 더 궁금한 모양입니다.
"왜 무슨일있어?"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일도 없어."
"그런데 왜 우냐고."
안되겠습니다. 남편이 하나에 꽂힌 이상 끝까지 물어볼 것이 뻔합니다.
이 정도 되면 내가 먼저 부는 수밖에 없습니다.
"책 읽었는데 욱해서 그랬어. 신영복 교수님 돌아가시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부분인데.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우니까 교수님이 울지말아요. 울지말아요. 다음에 다시 만나면 되지 왜 울어요.라고 하는 부분 읽으니까 울컥해서 그래."
남편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봅니다.
"당신 왜 그래. "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기 그지 없는 사람입니다. 남편이 고민이 있어 나에게 말할라치면 감정적 공감은 커녕 대책을 하나,둘,셋으로 나눠 내놓기 바쁘지요. 자신은 그저 제 마음을 알아달라고 말하는 건데요. 그 마음을 알아주기는 커녕 늘 대안을 내놓아서 가슴을 더 답답하게 했던 아내입니다. 그런 제가 그 한마디의 감성에 눈물을 쏟고 있다는게 믿어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요즘에 이상하게 욱하는 순간이 많아져. 눈물이 그렇게 나. 지하철에서도 책 읽다가 한문장에 꽂혀서 혼자 울고 있기도 해. 댓글 하나가 가슴을 후벼파서 눈물이 줄줄 흐르기도 한다니까.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창피해 정말."
남편을 보고 하소연을 시작합니다.
정말입니다. 요즘 내 마음이 그렇습니다. 전에는 그냥 지나치던 사소한 일에 울컥하는 감정이 생깁니다.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기도 하지요. 도대체 내 마음에 무슨 한이 그렇게 서려있었길래 그러나 나도 가끔 놀랍니다. 남들 보기에 사연있는 여자같아 창피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감정을 누르려 해도 잘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오늘은 남편이 이야기를 꺼낸 김에 나도 그 해답을 꼭 찾고 싶어졌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참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잖아. 감정적으로 휘둘리고 흔들리는걸 힘들어 하지. 누군가 울면서 나에게 감정적 하소연을 할때 가장 곤란하거든. 그냥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끝내고 싶을 때가 정말 많아. 나에게 왜 이런 하소연을 하는지. 왜 감정적으로 저렇게 격분을 하는지 전혀 이해가 안된다니까. 그런데 요즘은 짧은 영상을 보다가, 지나가다 잠깐 보는 장면에도 그렇게도 눈물이 난다. 이런 내 자신이 너무 당황스러워. 나도."
남편은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습니다.
"당신 늙는거 아냐?"
순간 뒤통수를 한대 후려맞은 기분입니다.
예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그다지 감정이 격해지는 상황도 아닌데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이야기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아빠도 전과 다르게 무슨 이야기만 하면 눈물이 그렁그렁 눈가에 맺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스쳤지요.나이들면 이유없이 눈물이 많아진다고 듣긴했지만 너무 어이가 없었어요. 울 타이밍이 아니고 그만큼 감정적인 상황도 아니었으니까요.
'그. 그런가?'
"장모님이랑 장인어른 봐봐. 옛날에 당신 어릴때 얘기만 하시면 우시잖아. 별로 감동적인 이야기도 아닌데도 그러시지. 아마 저 나이가 되면 지나온 자신의 세월이 모두 다 짠하고 아쉽고 안타까운가 보다 싶었는데 당신도 그런거 아냐? 나도 가끔 그래. 아무것도 아닌 걸 보고 눈가에 눈물이 맺힐 때가 있더라고. 계절타나보다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다. 당신이나 나나 늙나봐."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랬나 싶으면서도 인정하기는 싫었습니다. 아직은 앞으로 나아가고 할일이 많은 나이인데요. 벌써 과거나 돌아보며 애잔한 마음으로 뒷방 노인처럼 앉아있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글쎄. 당신이라면 모를까. 난 아직 쌩쌩해. 마흔이면 지금 한창 일하고 발전할 나인데. 늙었다니. 말조심 하쇼."
쌩한 나의 말투에 남편이 돌아섭니다. 아니면 말며 라며 돌아서는 남편의 기운을 느끼며 왠지 약간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요.
"우리 동기 차홍이 있잖아. 개가 감정 변화가 너무 심해서 병원에 갔댄다. 안그러던 애가 그러니 이상해서 말야. 그랬더니 병원에서 갱년기라고 했대. 우리가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다잉."
몇일 전 친구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아닐 줄 알았는데, 아니었으면 했는데 어쩌면 선뜻 내게도 다가온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중년이라는 나이가. 그리고 갱년기라는 변화가 말입니다.
조금만 울다 지나갔으면 좋겠는데요. 나의 작은 울음으로 시작된 갱년기는 얼마나 많은 것을 변확시키고 갈련지. 나 조차도 궁금해집니다.
지금의 내 나이가 어색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한핸한해 나이를 먹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하지요. 갑자기 이 나이가 되지 않았기에 불어난 내 나이를 인정하게 되는지도 모른다잖아요. 그렇게 나도 나의 갱년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직은 울고만 있기엔 너무 젊다고 느껴지는 나의 갱년기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