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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Oct 10. 2023

냉탕과 열탕사이 갱년기

얼마전 아시안게임 탁구 시상식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함께 시상식에 올라 반가웠던 남한측 선수들이 북한 선수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같은 단에 올라 사진을 찍었지요. 

남한 선수들은 환하고 해맑게 웃었습니다. 같은 동포라는 사실이 너무 반갑고 신기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북한 선수들은 완전히 얼어붙은 표정이었어요. 남북 관계가 좋지 않았거든요. 북한에서 우리를 괴뢰라고 칭할 정도였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하거나 서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너무 불편했겠지요. 거기에 함께 사진까지 찍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었을텐데요. 북한 선수들의 표정은 그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는 듯 보였습니다. 같은 동포라는 사실이 그들에겐 한없이 불편했던 것이지요. 못마땅하기도 하고 눈치를 보는 듯한 북한 선수들의 표정과 남한선수들의 얼굴은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그 사진 한장을 보며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지금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느껴지는 것 같았지요. 언제나 눈치를 보며 해맑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아이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북한 선수들의 표정이 한동안 마음에 걸렸습니다. 

내 마음안에도 북한과 남한 선수의 모습이 다 들어 있습니다. 마음이 한껏 움츠려 들어서 누군가 다가오는게 부담스럽고 나의 존재를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도 있지만요. 가끔은 한없이 사랑받은 사람인 것 처럼 여유롭고 안정적일때가 있지요. 그야말로 내 마응이 냉탕과 열탕을 오간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남편이 병원에 다녀온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병원에 간 사이 나는 음악도 듣고 집안도 정리하며 놀았습니다. 너무 행복한 시간은 쉬이 흘러가잖아요. 조금 지난 것 같은데 네시간이나 걸린다는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다 되어버린 겁니다. 부리나케 밥을 올리고 반찬을 준비했지요. 가족들이 좋아하는 미역국과 갈치조림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미역국이 제대로 우러나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올 시간이 다 된 거에요.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가스불을 꺼달라고 부탁하고 나왔습니다. 저녁길을 걸으니 발걸음도 가볍고 기분도 좋았습니다. 룰루랄라 가을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남편을 마중 나갔지요. 바람도 시원하고 기분이 너무 상쾌했습니다. 주말이 끝나 이제 내일부터 출근이긴 하지만 이렇게 여유롭게 즐기는 주말이 참 좋았지요. 콧노래를 부르며 한참을 걷다가 갑자기 가스불 생각이 났습니다. 집에서 나온지 15분이상이 지났으니 갈치조림도 미역국도 맛있게 우러났을 것 같았지요. 나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한참동안 통화음이 울렸지만 왠일인지 아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내가 전화를 할 꺼고 그때 가스불을 꺼달라고 부탁을 하고 왔거든요. 늘상 손에서 핸드폰을 잘 내려놓지도 않는 아이는 스무번이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어쩔수 없이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큰딸에게 책임감을 주고 싶었지만 실패했으니까요. 빠릿빠릿한 아들이라면 문제 없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들도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순식간에 나는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저러다 집에 불이라도 나면 어쩌지. '

아이들은 요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요. 아무리 타는 냄새가 나도 주방 쪽을 쳐다보지도 않을게 뻔했습니다. 그렇다면 집에 불이라도 나면 어쩌나 싶은 조바심이 나른 순간 휘감았습니다. 남편 마중이고 뭐고 이럴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가던길을 돌아가야 싶을 만큼 마음이 콩닥거렸습니다. 다시 걸고 또 걸고 또 걸었습니다. 네번쯤 길고 긴 통화음이 울릴 때 아들이 전화를 받더군요. 

"야"\

"응 가스불 끄라고. 알겠어.'

뚜뚜뚜뚜뚜.......

"너는 전화를 왜 안받아. 누나는 뭐하고 있어?"

라고 큰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아들은 이미 전화를 끊은 상태였습니다. 

몸에서 확 불길이 이는 것 같고 온몸이 뜨거웠습니다. 

불과 몇분전만 해도 콧노래를 부르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지요. 

아이들은 벌써 전화를 끊고 가스불을 잠그고 자신의 일에 몰두했을 시간인데요. 

나는 여전히 온몸에 화가 올라온 상태였습니다. 

기다리는 남편은 아직도 오질 않네요. 

"어디야. 왜 아직도 안와."

괜히 퉁명스럽게 화를 남편에게 쏘아 붙입니다. 

"지금 가고 있는데?"

"당신은 매사 이런 식이지. 마중 나오는데 다른 길로 가면 어떻게 해. "

갑자기 남편을 만나 한참을 그에게 쏟아부었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남편은 아마도 이럴거면 마중 안나오는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혼자서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괜히 불똥이 남편에게 튀었지요. 

이상하게 한번 화가 나면 화가 풀릴때까지 한말을 또하고 또하고 또해야 

풀릴까 말까입니다. 

남편도 아이들도 이제 그만 하라고. 다 알아들었다고 몇번이나 말하는데도요. 

내 화를 내가 못 이겨내는 모양이지요. 

괜히 별거 아닌 일에도 짜증 투성이니 누가 곁에 머물까 싶은데요. 

또 멀어지면 다가가서 끝까지 가족들을 괴롭히니 어쩌겠어요. 가족들도 못할일이다 싶습니다. 


오늘도 한바탕 냉탕과 열탕사이를 오갔습니다. 

집에 와서 맛있게 갈치조림과 미역국을 먹으니 한풀 기분이 나아지기는 했는데요. 

혼자서 잔뜩 화를 내고 스트레스를 받아선지 가슴 한가운데가 묵직하니 아프네요. 

앞으로 이런 작은 화를 넘어서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냉탕갔다 열탕 갈일이 얼마나 또 많을까요. 

이눔의 호르몬. 호르몬이 문제입니다. 

마음 같아선 갱년기 호르몬을 잡아다가 혼꾸녕을 내주고 싶은데요. 

잡으러 가다다 내 화에 내가 치여 잡을수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내마음안에  쫄보 눈치꾼 북한 선수와 여유부리는 한국 선수가 함께 공존하니 

한동안은 마음이 시끌벅쩍 할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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