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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Oct 12. 2023

갱년기? 포기못해

성격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혈액형과 체질을 연결해서 사람을 설명하는 책이었는데요. 

오형에 소양인인 나의 체질에 대한 설명이 신선했습니다. 

"외모와 다른 성격,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성격은 남자같습니다.  남자같은 성격에 오형의 털털함이 더해져 그 부분이 더욱더 도도라집니다. 외모의 여성스러움과 성격이 달라 사람들에게 의외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의 내 모습이 이해되었습니다. 

결혼하기 전 수많은 소개팅을 했는데요. 그중에 하나의 피드백이 너무 의외였습니다. 

"결혼해서 살기 좋은 배우자감이다."

내 성격과 취향과 자유로움을 아는 나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남편도 그랬습니다. 처음 나를 만났을때 웃어주고 공감해주는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좋았다구요. 그때만 해도 낯을 심하게 가릴때라 처음 만나면 웃기만 했습니다. 나를 잘 드러내지 않았지요. 대꾸도 없이 웃기만 하니 엄청 순하게 보였답니다. 여성미도 느껴졌구요. 다음번에 나를 만났을때 짧은 뽀글이 파마를 한 모습이나 연락하다 말도없이 일본여행을 훌쩍 떠나는 모습이 첫인상에 비해 무척 의외였다고 했습니다. 아마 소개팅에서 말했던 나의 첫 이미지를 남편도 그렸던 모양입니다. 물론 지금 다시 돌아간다면 그 어떤 사람보다 스팩타클하게 연애할 수 있는 똘끼를 가진 사람이란 걸 소개팅에서도 보여줄 텐데요. (그럼 아마도 더 많은 애프터를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랬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내 외모가 여성스러워 보인다거나 차분해 보인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으니까요. 센언니처럼 내 날것의 모습처럼 보인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늘 사람들이 "너는 입만 열면 깨. 입을 안 열면 이미지 좋은데."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아무리 오형이고 소양인이어서 우리집 아이들에게 내가 아빠고 아빠가 여자라고 선언하고 다닐지라도 나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여성성이 도드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운동할 때입니다. 

어제도 헬스를 하러 갔습니다. 운동을 할때면 더 씩씩하고 더 남자스럽게? 운동을 합니다. 파워가 넘치지요. 어제도 그렇게 운동을 하고 있는데 한 여성회원이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습니다. 센터에 온지 얼마 안된 회원인지 초급 과정을 트레이닝 받더군요. 우리는 일이년차라 저 운동이 이 센터에서 얼마나 가벼운 운동인 줄을 모두 알지요. 그런데 트레이닝을 받는 소리는 몇년차 못지 않았습니다. 어찌나 간드러지는 신음소리를 내는지 센터에 여성의 헉헉거리는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운동을 가르칠때면 강하고 짧은 소리를 내는 코치의 특성상 여성 코치는 단호하고 굵은 소리를 냈는데요. 두소리가 겹쳐서 묘한 소음이 되더군요. 저정도 강도에서 저렇게 신음소리를 낼 정도면 내가 하는 운동은 죽어도 못하지 싶었습니다. 자꾸만 거슬리는 소리를 내길래 한번 슬쩍 봤거든요. 보이는 외모 상으로는 전혀 그런 소리를 내지 않을만큼 덩치가 좋았습니다.눈이 마주치자 한번 내 눈치를 보는 듯 하더니 기어이 신음소리를 끝까지 내질렀습니다. 

"혼자 운동하는 공간 아니잖아요. 우리 모두가 이 공간에 있다는걸 잊은건 아니겠죠. 조용히 좀 합시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분위기가 험악해 질테니까요. 그 소리들을 참아내고 내 운동을 하면서 나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여성성을 드러내는 여자만 보면 열폭을 하는구나.'

지난번에 센터에서 남자 트레이너 앞에서 신음소리를 내던 여성 회원이 꼴보기 싫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그랬습니다. 여성성을 너무나 드러내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던 나였네요. 내가 마음대로 드러내지 못했던 것을 드러내는 여성들이 부러웠던 것입니다. 

"마음껏 엉덩이와 가슴을 흔드세요. 어차피 집에서 혼자는 못하잖아."

내 이런 속내를 알아채기라도 하듯 내 안의 잠재된 여성미를 끌어내 주던 줌바 선생님이 좋았던 이유도 그거였습니다. 혼자는 실컷 끼를 못 내품는데요. 선생님 앞에서는 괜찮다고 해주고 잘한다 해주니 되더라구요. 약간은 코믹함을 덧대여 나타내보는 여성성앞에서 일말의 해방감을 느꼈다랄까요. 

나이가 들면 호르몬의 변화로 내 몸의 여성 호르몬은 더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안그래도 남자같던 사람이 이제 더더더 남자다워질텐데요. 여성 호르몬 주사라도 맞아볼까싶습니다. 잃어버린 아니 감춰져있던. 실컷 내보이고 싶었던 나의 여성 컴플렉스는 이대로 숨기고 살아야 할까요. 줄어드는 나의 여성 호르몬의 끝을 붙잡고 외치고 싶습니다. 

내 안에도 아직 여성으로 살고 싶은 욕구가 남아있다고 말입니다. 

나는 갱년기지만 나의 여성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시기질투하며 내 마지막 남은 여성성을 꼭 붙잡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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