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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Oct 13. 2023

선생님의 일

수진이는 오늘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교실로 들어섭니다. 

잘 웃고 흥이 많은 수진이는 언제나 즐겁습니다. 

너무 텐션이 높아 교실에서 친구들에게도 온갖 간섭을 다합니다. 

발표할 사람 하면 손을 번쩍 듭니다. 너무 크게 소리를 내기 때문에 안 시킬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정작 발표를 시키면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춥니다. 음악과 춤을 참 좋아합니다. 음악 시간에는 신이라는 것이 폭발을 합니다. 어느 날은 음악 시간에 수진이가 너무 크게 노래를 불러 화음을 다 망쳐버렸답니다. 참다 못한 음악 선생님이 음을 맞춰 합창을 해야겠기에 

"수진아 이번엔 노래 부르지말고 한번 쉬어."

했답니다. 그래서 겨우 그만 합창을 이중창으로 맞춰 부를 수 있었다네요. 물론 그 다음번에는 수진이의 노래가 허락되었고 수진이는 음도 맞지 않는 노래를 엉덩이를 들썩 거리며 불렀습니다. 어느 음악 시간에는 수진이 목소리가 너무 커서 선생님이 한번 화를 내셨대요. 

"수진아. 너무 목소리가 크다. 소리 좀 줄여."

그랬더니 아이가 엎드리더랍니다. 한참을 엎드려 있기에 미안한 생각이 드셨대요. 점심시간에 혹시 수진이 상처 받은 거 아니냐며 저를 보고 걱정을 하시더군요. 교실에 돌아와 수진이에게 물었습니다. 

"음악 선생님이 너 오늘 너무 떠든다고 조용히 하라고 하셨어? 그래서 너 엎드렸다며. 왜 엎드려 있었던 거야?"

"졸려서요."

아니나다를까 수진이는 마음의 상처를 전혀 받지 않은 듯 해맑았습니다.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고 하자 약간 민망했겠지요. 그래서 엎드렸는데 그만 잠이 들어버린 겁니다. 

특수학급에 있을때는 밝은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는 수진이가 나와 정말 잘 맞습니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함께 웃습니다. 인간 비타민 같은 존재인데요. 혹시나 원반에 돌아가서도 너무 존재감을 드러낼까봐 그부분이 가장 염려됩니다. 너무 앞서서 하려는 마음때문에 친구들이 불편해하면 곤란하니까요. 발표가 많고 선생님 말을 끊는 일이 많고 마음에 안들면 시원하게 욕을 하는 수진이 덕에 담임 선생님이 힘드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하루에 딱 세번만 수진이에게 발표할 기회를 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마지노선을 정해두지 않으면 수진이가 질문 폭주, 수업 맥 끊는 일을 얼마나 할지 모르니까요. 그렇게 정해두면 수진이가 눈치껏 질문을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신경쓰임을 생각은 하는건지 마는건지 수진이는 그저 즐겁기만 합니다. 

수진이와 오늘은 검색하기 수업을 했습니다. 실생활에서 필요한 것들을 직접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정보검색인데요. 수진이가 참 좋아하는 수업입니다.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자신의 몸매나 퍼스널컬러를 알고 패션코디를 해보는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번주에는 체형에 따른 코디를 다음주에는 퍼스널 컬러 찾기를 검색하기로 했습니다. 그후에 옷매장에 가서 서로에게 맞는 옷을 골라보는 수업으로 연결하려구요. 아이들에게 체형에 따른 옷입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영상을 보여주고 검색하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각자 학습지에 검색한 내용을 적어보고 발표를 한 다음 내용을 정리할 건데요. 수진이는 열심히 뭔가를 학습지에 쓰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체형의 종류에 아무말이나 적어두고 체형에 따른 옷에도 예쁘다. 멋지다.같은 말만 잔뜩 썼습니다. 학습지만 채우면 어떻게든 끝난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내용을 검색해서 적은 것이 아니라 잣니이 생각한 내용을 지어서 쓴 거지요. 이렇게 쓰면 빨리 끝납니다. 그러면 다했다고 생각하고 슬며시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려는 심산이었겠지요. 검색시간에 그런 수진이의 경향을 알고 있는 내가 그걸 허락할 수는 없었습니다.오늘은 이 버릇을 고쳐야겠다 싶었지요. 다른 아이들에게는 대략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수진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이렇게 지어서 빈칸만 채우면 안되지. 이거 다 지우고 다시 해보자."

수진이는 내가 바짝 붙어 앉는 거부터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선생님이 옆자리를 꿰차고 앉으니 이거 만만치 않구나 싶었나 봅니다. 혼자서 몇마디 불만의 말을 중얼거리더군요.

"이렇게 하면 컴퓨터 자동으로 꺼져. 수진이는 검색 못하는데 괜찮겠어?"

수진이는 검색도 못하고 그후에 자신이 즐길 시간도 사라진다 생각하니 위기감이 몰려왔나봅니다. 학습지에 지어쓴 글자들을 모두 지웠습니다. 

"아무렇게나 답을 쓰면 안되요. 정확하게 검색한 내용을 써야지. 빨리 답만 쓰고 유튜브 영상 보는건 안되는데."

수진이는 오늘 딱 걸렸나 싶었나봅니다. 안되겠다 싶었는지 내가 하라는대로 검색창을 열고 내용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잠깐 다른 아이의 호출이 있어 자리를 비우니 엉뚱한 화면을 켜려고도 했는데요. 내가 자리에 오자마자 원천봉쇄 시켰지요. 그러면 너의 컴퓨터만 꺼진다는 약간의 협박을 더해서요. 

수진이는 그렇게 하나하나 꼼꼼히 검색하고 학습지에 쓰고를 반복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무슨 말을 골라써야할지 어려워했습니다. 많고 많은 검색 내용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 내용을 어떻게 요약해야 하는지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수진이도 나도 한참동안 진땀을 빼며 검색을 마쳤습니다. 수진이의 학습지에는 짧지만 알찬 내용이 담겼지요. 

"자 모두 검색 끝났으면 칠판으로 나와서 자신이 검색한 내용을 정리해서 적어보세요. 체형의 종류를 여기에 적고 그에 따른 옷차림을 정리해 봅시다."

수진이는 나와 함께 검색해서 적은 것들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칠판에 옮겨 썼습니다. 그리고 나서 각자 검색한 내용을 발표한 후에 수업이 끝났지요.

"수진아 앞으로도 검색할때 지어쓰기 없기다.진짜 검색해서 써야지. 그렇게 열심히 해야 선생님이 유튜브에서 음악 한곡이라도 들을 수 있는 서비스 시간을 줄거야. 열심히 할때만. 알겠지?"

수진이는 만만치 않구나 싶었는지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다음주 퍼스널 컬러 검색하기 시간에 수진이는 어떤 모습으로 컴퓨터 화면 앞에 앉을까요.

아마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원래대로 하려고 할때 다시 수진이 옆으로 가서 한마디 보태야겠지요. 

"수진아. 검색해서 써. 지어서 아무말이나 쓰기 없기."

그럼에도 슬쩍 슬쩍 내 눈치를 보며 지어쓰거나 중간중간 유튜브 화면을 검색할수도 있겠지요. 습관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구요. 편하고 좋은 일을 하고 싶은건 누구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러면 나는 다시 수진이 옆에 의자를 가지고 앉을 것입니다. 수진이가 제대로 검색해서 한단어라도 쓸때까지 나 또한 그 노력을 계속할거에요. 나는 수진이 선생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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