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못하겠어. 가만히 있는데 옆차가 움직이면 어지러워. 터널이라도 들어갔다가는 버티기가 더 힘들지. 내가 운전 20년차인데 어쩜 이래."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던 50대 선생님들의 깊은 한숨 소리가 여기까지 들립니다.
"나도 그래요. 젊을 때는 정말 겁없이 운전하고 그랬지. 다른 차랑 속도경쟁도 하고. 그때 너무 험하게 몰아서 그랬나봐요. 이제 속도 조절 좀 하라고 그러나봐. 당황스럽긴 한데 어떻게 해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래서 나 요즘에 운전 안하고 대중교통 이용하잖아요. 편해. 좋아요."
연배가 비슷한 선생님의 맞장구 소리가 들립니다. 이 소리가 다른 소리보다 조금더 확대되서 들린 이유는 나도 똑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운전면허를 딴지 몇일 안되서 왼팔을 다친 적이 있었는데요. 그런데도 오른 손 한손으로도 운전을 하고 다녔습니다. 시냇길을 다닌게 아니라 88고속도로를 타고 운전을 했지요.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아서 중앙선을 침범해서 반대차선으로 역주행을 하기는 했지만 운전의 스피드 하나는 자신있었지요. 그런 나도 어느 순간부터 가만히 있는데 옆차가 움직이면 어지럽더라구요. 차를 가져가는 것보다 대중교통 이용하는게 더 편하구요. 공감되는 이야기였기에 귀 스피커를 크게 켜고 이야기에 더 집중했었나 봅니다.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이어졌습니다.
"운전만 문제인가. 체력은 또 어쩔건데요. 점심만 먹으면 너무 졸려서 참을수가 없어요. 가끔은 운전하다가 졸음운전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니까요. 그럴때마다 너무 섬뜩해요. "
"맞아요. 체력이 회복이 안되요. 코로나 걸렸을때 깜짝 놀랐어요. 어쩌면 한달동안 힘든거 있죠. 늘 피곤하고요."
저쪽에서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이 갑자기 합류했습니다.
"소화는 또 왜 그렇게 안되는 거에요. 많이 먹지도 않는게 갑자기 배가 볼록 튀어 나와서 정말 당황스러워요."
식당은 너도 나도 갱년기 자신의 몸이야기를 하느라 시끌벅적해 졌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50대 선생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신의 몸의 변화와 갱년기 증상에 대해서 토로했습니다. 그동안 너무나 씩씩하게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었기에 그 분들에게 저런 변화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지요.
"요즘에 김부장님은 그래서 식당에서 식사도 안하시잖아요. 병원갔더니 콜레스테롤 관리하라고 했대요. 도시락으로 야채랑 닭가슴살 싸와서 드신대요. "
"안 선생님은 건강검진하고 병원에 갔더니 이러다 죽을 거냐고 의사가 화를 내더래요. 당뇨 수치가 엄청 높았나봐요. 그때부터 식단하고 걷기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를 넘어서 학교의 다른 선생님들의 카더라 까지 이어졌습니다. 시끌벅적한 선생님들의 수다에 무슨 일인가 교사 식당을 두리번 거리는 아이들도 있었지요. 그안에 앉아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갱년기 초기를 맞이한 나는 갱년기 중반에 이르면 얼마나 많은 다양한 증상이 생길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몇년 있으면 저 모습이 내 모습이겠구나 싶어서 눈을 동그랗게 하고 열심히 들을 수 밖에 없었지요. 두렵기도 했고 이제 시작이려나 싶었던 갱년기가 성큼 발끝까지 앞으로 다가왔다는 생각에 살짝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50대되면 아플 때 된거지. 다들 그렇게 살아요. 다스리면서 사는 수밖에 없지요."
마지막 오 선생님의 말에 선생님들은 무언의 동의를 하며 식당을 우르르 빠져나왔습니다. 5교시 수업이 시작된다는 예비종이 울렸거든요. 선생님들은 언제 그랬냐 싶게 빠르게 교무실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다리 관절이 아파서 걷기 힘들다는 선생님도, 허리 통증을 호소하던 분도. 밥먹고 나서 꼭 걸어야지 안그러면 혈당이 올라 힘들다는 분도 모두 그 안에 있었습니다. 몸은 조금 안 좋지만 제 할일이 있으니 언제까지나 신세한탄만 하고 있을수는 없었겠지요.
선생님들이 아무렇지 않게 보였던 그때의 모습으로 빠르게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속도 조절이 필요해서 쉬엄쉬엄 천천히 가라고 몸이 알려주는 게 갱년기였구나.'
언제나 씩씩하고 수업에도 학생지도에도 열정적이던 선생님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렇게 다들 또 열심히 살아내고 싶구나 싶어서 코끝이 찡해지더군요.
"아파. 아프지만 안할 수는 없잔아. 또 열심히 해보는 거지."
50대에도 존경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일하시던 한 선생님의 멘트가 오래오래 마음에 맴돌았습니다.
나도 얼른 일어나 내 자리를 향해 걸어갑니다.
나 역시 속도조절을 하면서 내 일을 또 열심히 해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