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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Oct 30. 2023

분명 한뿌리인데.

"같이 하면 안돼?"

" 난 혼자가 좋아."

우리집 아들딸의 대화입니다.. 다른 집 남매들은 서로 때리고 욕하며 싸우기도 한다는데요.

고작 한다는게 말싸움 정도입니다. 그것도 목소리를 크게 내지도 않습니다. 서로 불만을 궁시렁 거리는 정도지요. 그런데 문제는 저런 식의 대화가 매번 토씨하나 안바뀌고 반복된다는 것이겠지요. 

"나는 혼자 책 읽는게 좋아. 혼자서 쉬고 싶어. 내가 집에 오면 준이가 꼭 나한테 와서 말을 걸어. 내방에 불쑥 뿔쑥 들어와. 나는 그게 너무 불편해."

딸아이가 외로울까봐 동생을 나아주자 했습니다. 혼자서 얼마나 쓸쓸할까 걱정을 했는데요. 기우였네요. 딸아이는 그 누구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했습니다. 어려서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를 보면서 그 기질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진작에 성향을 알았다면 굳이 동생을 갖지 않았을 텐데요. 외로울까봐 낳아준 동생이 오히려 고독에 방해가 된다는 군요.

그렇게 태어난 둘째는 또 다릅니다. 

"나는 누나랑 함께 하고 싶어. 그런데 누나는 맨날 내 말만 무시해. 나보다 책을 더 좋아해. 같이하면 좋잖아. 왜 누나는 나를 싫어하는 걸까. 그래도 나는 누나가 좋은데."

누나를 질투하기 보다는 참 많이 좋아했습니다. 누나 것을 빼앗기 보다는 누나에게 나눠주는 것을 더 기뻐하는 아이였지요. 그런데 기껏 양보하고 나눠준 보답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필요할땐 받아서 쓰지만 고맙다는 인사도 없습니다. 먼저 나눠주는 법도 모르는 누나가 야속하기만 하지요. 

이런 남매의 싸움은 아주 오래됐습니다. 그리고 고질적입니다. 둘이서 그 누구보다 잘 놀고 재미있게 지내는데요. 한번 싸움이 시작되면 다시 그 걸림돌에 걸리더군요.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서울랜드 초대권이 생겼습니다. 이미 놀이기구에 흥미를 잃은 엄마아빠대신 남매 둘이서 놀이기구를 타러가면 어떻겠느냐 제안을 했지요. 반색하는 아들과 다르게 딸아이가 뾰류뚱합니다. 

"누가 동생이랑 놀이공원에 가. 친구랑 가지."

중2의 대답으로선 이해가 되지요. 하지만 이 한마디가 또다시 동생의 서운함을 불렀습니다. 

"나도 누나랑 가기 싫어. 나랑 가기 싫다고 대놓고 말하는데 얼마나 기분 나쁜지 알아."

"나랑 너랑 가면 매번 나만 시키잖아. 표도 내가 사야하고 먹을 것도 내가 사고. 그거 싫어."

누나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럼 누나가 사야지 동생인 내가 사?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사람 앞에 두고 가기 싫다는 말을 대놓고 해. 누나는 그런 말 들으면 기분 안나쁘겠어?"

"응. 난 괜찮은데. 싫을수도 있지. 그건 그사람 마음이니까"

mbti 대문자 T와  F의 대화 답습니다. 결국 상처받고 우는 건 동생 몫이지요. 

울먹울먹하는 아들을 토닥여줍니다. 

"엄마가 정말 미안해. 엄마가 감정을 잘 읽어주지 못하고 이성적으로만 대화하는 T잖니. 누나가 그걸 닮았어. 공감해주는 부분이 어려운가봐. 우리 아들이 속상하지. 엄마가 대신 사과할게."

아들은 또 그렇게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아들을 다독이며 우리는 참 어째야 하나 싶었습니다. 

서울랜드 초대권이 오히려 짐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렇다고 어린 아이처럼 자유이용권으로 내가 입장만 해서 아들 타는걸 구경만 할수도 없구요. 난감한 상황입니다. 


 돈나무 한그루를 샀습니다. 워낙 잘 자라더군요. 둘로 나눠 화분에 분갈이 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는데요. 비슷한 화분에서 각자 자란 돈나무는 비슷한 듯 다릅니다. 겉으로 보기엔 비슷하게 자랐는데요. 분갈이를 다시 해주려 꺼내보니 뿌리 양상은 아주 많이 달랐어요. 한 녀석은 뿌리가 화분에 꽉찰 정도로 알차게 자랐습니다. 화분에 남은 흙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분갈이를 안해준게 미안합니다. 좁고 영양도 없는 화분에서 버티고 있었으니까요. 다른 녀석은 또 다릅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는데 뿌리가 많이 상했어요. 화분에서 꺼내는데 뿌리가 여기저기 끊겨 나갑니다. 이미 과습을 겪어 뿌리가 약해진 것이지요. 녀석 또한 분갈이가 꼭 필요했습니다. 새흙을 가득담아주고 영양제도 넣어주었습니다. 부디 상한 뿌리가 제 자리를 잡고 다시 성장하기를 바랬지요. 겉으로 보기엔 같았지만 안에서 성장하는 모습은 이렇게 달랐습니다. 

같은 배에서 비슷한 유전자를 갖고 자란 두 녀석입니다. 하지만 성향은 완전히 다르지요. 한 녀석이 육회를 먹으면 다른 녀석은 그 옆에 곁들인 마늘피클을 좋아합니다. 이렇듯 다른 녀석들을 나는 똑같이 키웁니다. 형평성이라는 이름아래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데요. 어떤 아이에게는 그것이 답답한 울타리가 될수도 있고 다른 아이에게는 편안한 테두리가 되줄수도 있을 겁니다. 그 안에서 자기만의 방식대로 자라나고 있을 건데요. 어느 순간에 어떤 기준으로 어느만큼 열어주고 닫아주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릅니다.그래서 늘 좌충우돌 하지요. 이랬다저랬다 오락가락하지만 중심을 잡으려 애를 씁니다. 내가 같은 기준을 제시하더라도 아이의 성향과 부딪혀 어떤 시너지를 낼지 알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매번 상황과 아이 기질마다 기준을 바꿀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부모가 흔들리면 아이는 더 흔들리고 혼란스러울 테니까요. 

 오늘도 아이들은 자랍니다. 나는 잘 자라라고 물도 주고 햇빛도 바람도 쐬어주는데요. 자라는 것은 아이의 몫입니다. 제 성질대로 자라날 겁니다. 자라나는 아이를 보면서 이리가라 저리가라 해봤자 말을 듣지도 않을 테지요. 그저 제 성향대로 상하지 않으며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아이 둘이 투닥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어느 편에 들지도 못하니 귀를 닫아버립니다. 둘이 부딪혀 가며 중간선을 찾아나가겠지요. 엄마는 귀가 있어도 없으며 생각이 있어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둘이서 어지간히 맞춰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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