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가족 카톡방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엄마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인데요. 무릎위에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이 한가득
올려져있습니다. 과일, 떡과 김밥입니다. 엄마의 미소가 행복해보입니다.
다음으로는 동영상이 올라왔어요. 엄마가 김밥을 입안가득 넣으며 맛있게 드시네요.
아빠는 한쪽에서 초밥을 또 맛있게 드십니다. 부모님 모두 행복한 주말을 맞이하는 모습인데요.
넷째언니가 오랫만에 다니러 간 모양입니다. 언니는 갈때마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사갑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드시는 모습을 찍어서 올립니다. 나는 그 모습 아래 댓글을 달았습니다.
"넷째 딸이 다녀와서 참 좋다. "
그 아래로 다른 언니들도 댓글을 다네요.
"행복한 주말이었군요. ㅎㅎ"
"많이도 사갔네. 고마워. 동생."
훈훈한 댓글 내용을 보며 나는 얼른 댓글창을 닫아버렸습니다. 꼴보기가 싫었으니까요.
넷째언니는 매번 저런식입니다. 엄마 몸에 좋지도 않은 것만 골라서 사갑니다.
엄마는 당뇨입니다. 떡이나 김밥, 과일 어느것 하나 몸에 좋은게 없습니다.
당장 엄마가 행복할 수는 있겠지만 엄마 몸에는 독이나 마찬가지인 음식입니다.
가끔 친정에 음식을 배달시킬 때 엄마가 좋아하지만 몸에는 나쁘지 않은 고기나 단백질류의 음식을 선별해서 고심하는 나와는 전혀 다르지요. 칭찬받고 싶어서 영상과 사진을 올렸는데 원망을 할수 없어서 댓글을 남기긴 했는데요. 오래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몇일전에도 내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형부가 소를 키우는데 요즘 소에게 전염병이 도는 모양입니다. 소키우는 사람에게 전염병은 정말 무시무시한 공포지요. 형부도 무지 긴장을 했을 텐데요. 아직은 무사하다며 부디 전염병을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아빠가 댓글을 남겼습니다. 물론 자매들의 응원메시지가 댓글로 이어졌지요. 그랬더니 넷째언니가 냉큼 이럽니다.
"사위가 많이 힘드니 응원 해주세요."라구요.
이 댓글을 보는데 또 속이 뒤틀립니다. 다들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그 무게가 차이는 있겠지만 각자에게는 꽤나 무게가 있지요. 남의 무게를 짐작하며 내 무게의 짐을 가벼이 여기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무턱대고 자기 남편 화이팅을 해주라니 얄밉습니다. 나도 말을 안해서 그렇지 힘들거든요. 그럼에도 아빠가 말씀하시니 화이팅을 해주었잖아요. 얼마나 더 화이팅을 해주라는 건가 싶어집니다. 물론 형부가 힘든 것도 이해하고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네만 힘든 것처럼 심하게 내색을 하니 순간 얄미워지는 거죠. 나같으면 응원해줘서 고맙다고 짧게 답했을 테니까요.
내 마음에 왜 언니가 그렇게 얄미울까 가만히 생각해 봤습니다. 어릴 때 언니와 나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언니는 늘 엄마에게 특별대우를 받았습니다. 순하고 착하고 알아서 분위기 살피는 셋째 언니와 나랑은 달랐지요. 제 멋대로 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순한 엄마는 그런 언니가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큰소리 나지 않게 하려고 어려서부터 비위를 맞췄지요. 학교 다녀와서 친구들얘기만 넷째 언니만 독차지 했습니다. 엄마귀를 독차지하고 우리에겐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지요. 긴머리도 언니만 했습니다. 셋째언니와 나는 늘 커트를 하고 관리도 해주지 않았어요. 피아노도 넷째언니만 배웠습니다. 그렇게 졸랐지만 나의 몫은 아니었지요. 그렇게 어렵게 배운 피아노도 얼마 안가 그만두더군요. 나같으면 끝까지 해내서 아마 피아니스트가 되었지도 몰랐을 텐데요. 그런 기억 하나하나가 떠오르면서 순간 마음에서 울컥 솟아오르는 한단어가 있었습니다.
'질투하고 있구나. 내가 언니를.'
그랬습니다. 어려서부터 쌓여있던 감정이 해소되지 못한채 불쑥 튀어나온 겁니다. 조용히 엄마아빠에게 건강식을 고심해서 사가는 나는 받지 못하는 칭찬을 몸에 안좋은 음식으로 언니는 받았습니다. 한발 한발 힘들게 내딛고 있는 걸음을 표현조차 하지 못하는 나인데요. 언니는 당당히 응원해달라고 말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당당히 해내는 언니가 부러웠던 겁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바보같이 참고 있는것을 다하는 언니가 미웠던 게지요.
'그랬구나. 내 마음이 속상했었구나.'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마음이 옹졸해지고 내것만 챙기는 것에서 아주 조금 확장되는 한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자라지 못하고 부족한 나지만 내 그런 마음을 내가 알아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내가 토닥여줄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네요. 누가 손내밀지 않아도 상처받고 아픈 내 마음을 내가 보듬어 주는 것. 그것이 하루 하루 나이들면서 내가 얻게 된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스무살로 돌아가면 어떻게 살고 싶어?"
딸아이가 묻습니다. 한참을 생각해봐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나 스무살로 돌아가기 싫어. 늙고 힘없고 아프고 주름지긴 했지만 지금의 내가 좋아. 안돌아가고 이대로 살래."
나의 대답에 아이는 눈이 동그래집니다
내 현재의 삶에 100% 만족해서가 아닙니다. 가끔은 내가 몇년만 젊었으면 저 정도 문제는 금방 해결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요. 그럼에도 지금의 내가 나쁘지 않은 이유. 내가 나를 안아주고 호~해줄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