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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Nov 02. 2023

천사를 보셨나요

2학기 정기고사날입니다. 

2학년과 3학년이 시험을 치르는데요. 컨닝을 방지하기 위해서 2,3학년을 섞어서 

한 교실에서 시험을 봅니다. 학년이 섞이는 만큼 선생님들도 초 긴장입니다. 

한 학년만 교실에서 시험볼때마다 시험지도 두배니까요. 혹여나 실수가 생길까봐 신경이 날카로워지지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중학교 성적이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데요. 어린 것들이 저렇게나 짐이 무거울까 싶을만큼 표정이 진지하고 심각합니다.

우리 반에서도 2학년과 3학년이 함께 시험을 봅니다. 

이번에만 그런것은 아닙니다. 늘그래왔다는 점이 다른 반과 조금다르지요. 

교실에서 시험을 치르면 좋겠지만 아이들이 답답해합니다. 

45분간 매번 긴장하고 조그마한 소리도 낼 수 없으니까요. 

점수가 그다지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도 아닌데요. 아이들을 교실에 묶어놓자니 

안쓰럽습니다. 게다가 조그만 소리라도 냈다가 반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었다고 

민원이 들어오면 안되니까요.

우리반 네명의 친구중에 세명이 우리 교실에서 시험을 치릅니다. 

책상을 세줄로 맞춰놓고 한줄에 한명씩 앉아 시험을 보지요. 

나름 시험이라 초반에는 조용합니다. 무척 진지한데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미소짓게 됩니다.

아이들은 매직 아이처럼 문제를 보자마자 답이 보이나봐요.

시험지를 나눠주자마자 문제도 읽지 않고 답에 동그라미를 칩니다. 

알수 있는게 있을지도 모르니 찬찬히 줄을 쳐가며 문제를 읽으라 하지만요.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한 가지 번호로 답을 쭉 찍기도 하구요. 1.2.3.4.5를 왔다갔다 하며 답을 쓰기도해요. 

답지를 읽지도 않고 마음에 드는 번호에 동그라미를 합니다. 

그러니 시간이 오래 걸릴리가 없지요. 15분이면 충분합니다. 나머지 30분은 그저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그모습을 여러해 지켜보는 나는 내 학창시절이 떠오릅니다. 한문제라도 더 맞추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읽고 시간을 체크했었는데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한켠 부러운 생각이 듭니다. 

'맞아. 꼭 그렇게 열심히 살 필요는 없었어. 대관절 성적이 뭐라고 그랬을까. 인생을 즐기지 못했어.'

10점을 맞아도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점수를 오픈할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쿨해보였지요. 

오늘도 빨리 시험을 치른 진표와 하진이는 몸이 뒤틀립니다. 

쉬는 시간에 시험 시간표를 살펴보니 아직 두시간이나 남았어요. 시험을 치르고 나서는 한시간동안 봉사시간이 있습니다. 끝나려면 멀었다는 얘기지요. 

"선생님 봉사시간이 뭐에요?"

쉬는 시간에 진표가 물었습니다. 

"청소하는 거야. 교실에 가서 청소해. 여기 청소도 하면 좋구."

대답을 하고 나는 부리나케 교실을 빠져나갑니다.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 답안지를 가져가 원반의 자기 번호에 맞게 꽂아두어야합니다. 

여기서 시험을 보긴 했지만 성적처리를 해야하니까요. 

아이들마다 답지 봉투를 찾아 답지를 끼워넣고 다음 시간 시험지를 갖고 내려옵니다. 

그러면 쉬는 시간 10분이 다 지나갑니다. 그야말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지요. 

40분이 지나자 아이들이 더는 못참겠다는듯 몸을 뒤틀어댑니다. 

15분만에 시험을 끝냈잖아요. 25분을 참고 앉아있었으니 힘들법도 하지요. 

"다 했으면 걷을까?" 

아이들이 좋다고 했습니다. 나는 종이 치자마자 얼른 답지를 걷었습니다. 

화장실이 급했거든요. 쉬는 시간에 할일이 많습니다. 급하게 답지와 여분 문제지를 챙겨 화장실로 뛰어갔지요. 그리고 다시 교무실에 올라가 답지를 넣고 다음시간 시험지를 챙겨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분주합니다. 뭘하나 봤더니 제각각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들고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봉사해야 되요. 봉사시간."

마지막 시간에 봉사시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한 아이들이 교실 바닥을 쓸기 시작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 열심히 바닥을 쓸어냅니다. 

"어떻게 갑자기 봉사시간을 생각해 냈어? 대단한데."

여기 저기를 열심히 쓸고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대견했습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교실청소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너무 예뻤지요. 

내가 칭찬을 하자 아이들은 더 신이 나서 교실 이곳 저곳을 쓸었습니다. 

완벽하지 않고 서툴러서 쓰레받이에 담은 휴지가 다시 바닦으로 떨어졌습니다. 

모아둔 쓰레기들이 이리 날리고 저리 날렸구요. 교실 청소는 많이 안해봐서  모은 쓰레기를 어디에 버릴지 몰라 우산꽂이에 쏟아붇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 얼렁뚱땅 우광쾅쾅 청소 모습이 그리도 예뻐보였습니다. 

시키지 않았는데도 선생님의 말을 기억하고 청소하고자 노력하는 그모습이 정말 

멋졌지요. 

원반에서는 아이들이 시험점수 하나라도 더 맞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할겁니다. 

시험잘보려고 긴장하다가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플테구요. 전 시간에 틀린 것 때문에 

울고 있거나 맨탈이 흔들린 아이들도 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그곳과 상관없이 우리교실에는 평화가 흘렀습니다. 

사랑과 온기가 가득했지요. 

과연 이곳이 천국이구나 싶었습니다. 

아이들은 룰루랄라 청소를 마치고 얼른 청소도구를 청소함에 넣었습니다. 

다음 시간 시험을 준비하는 예비종이 울렸거든요. 

다시 아이들이 자리에 착석하고 시험 준비를 합니다. 

아이들 얼굴에서 긴장하거나 스트레스 받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마지막이다~!! 마지막 시험이야."

시험 마지막이라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몸을 움칫거립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진짜 천국이 여기구나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누군가는 특수학급을 불쌍하다 말합니다. 어렵다고도 하고요. 무섭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어려운 특수학급을 맡은 특수교사를 천사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그래요 나는 천사입니다. 천사맞아요 

내 일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아이들이 불쌍하고 무서워도 아니에요. 

그들은 특수교사인 내가 문제행동이 많고 대화도 안통하는 안쓰런 장애학생들을 돌보니 

천사라 했는지 모르겠지만요. 그래서가 아닙니다. 그런의미의 천사가 아니지요.

나는 다른 의미로 아이들과 천국을 경험했으니 천사 맞잖아요.

조금은 서툴지만 세상에 대해 따뜻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천사들 곁에서 

머물며 충분히 행복하니까요. 이곳이 나에게는 그런 곳이지요. 

아이들에게도 그런 곳이길 바라는 나는 천사 맞습니다. 

"우리 선생님. 감사합니다.

시험이 끝나 너무 즐거운 아이들은 오늘도 큰 소리로 이야기합니다. 

"얘들아. 내가 고마워. 모두들 수고했어.  사랑해!!"

천사들이 모두 돌아간 교실에 따스한 햇빛이 비칩니다.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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