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Nov 02. 2023

왜 하필 그걸 닮아.

깨자마자 대문을 열었습니다. 어제 주문한 새벽배송 물건을 챙겨 들여와야하거든요.

아이가 아파서 오늘 학교에 못갑니다. 아픈 아이를 남겨두고 출근을 해야하니까요.

아이가 먹고 싶다는 것을 이것저것 주문했지요. 

아침에 출근 준비하기 빠듯하게 일어나놓고 그것까지 하려니 시간이 촉박합니다.

아이가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담은게 많기도 하네요.

배송바구니에서 꺼내서 정리해 냉장고에 넣어야합니다. 

한손으로 이를 닦으면서 분주하게 포장을 푸르고 있었는데요.

이상하네요. 분명히 샌드위치를 만들 치즈를 넣었는데요. 보이지 않습니다. 

새벽배송이 아니었나 휴대폰 어플을 확인해보았습니다. 분명 배송완료라고 씌어있는데요.

없습니다. 시간은 가는데 치즈는 없고 이리갔다 저리갔다 치즈 찾느라 바쁩니다. 

부산한 소리가 아이가 일어났습니다. 

"배송 왔어. 대문 열리는 소리에 누가 왔나 해서 깼네.

무서운 꿈을 꿔가지고."

아이가 하품을 하며 말했습니다.

"무슨 꿈인데?"

"이가 빠지는 꿈."

깜짝 놀랐습니다. 가뜩이나 치즈가 없어 정신 사나운데 이빠지는 꿈이라니요.

"이가 어떻게 빠졌어? 아랫니 윗니 어디가 빠졌는데?"

"위아래 모두 우수수 빠졌어.너무 무서웠어."

이를 어쩐다 싶었지요. 

스물아홉의 마지막을 나는 인도에서 보내고 싶었습니다. 갠지스강의 떠다니는 시체를 보며 인생이란 무엇일까 고민하고 답을 찾고 싶었지요. 여행 예약을 다하고 방학 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12월 초. 행복하게 여행을 기다리던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윗니가 우수수 빠지는 꿈이었습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인터넷이 활발한 때도 아니었어요.주변 사람에게 해몽을 물었지요.

"윗니가 빠지는 꿈은 너보다 나이 많은 분이 돌아가시는 꿈이야."

해몽을 들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내가 잘못되는 것도 아니었구요. 사실 꿈을 믿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몇주가 흘러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꿈이 희안하게 맞더라구요. 엄마를 잃은 슬픔과 두려움에 엄마는 나의 인도행을 극구 말렸습니다. 나의 마지막 스무살의 아름다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지요. 그때 처음으로 꿈이 맞을수도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 깊이 이빠지는 꿈을 싫어하게 되었지요. 

그 이후로도 몇번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윗니 빠지는 꿈을 꾸자 이모가 돌아가셨습니다. 또 한번은 형부가 다치는 일도 있었지요. 이제 나에게 이빠지는 꿈은 공포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그 꿈을 꾸었다네요. 그것도 이가 우수수 다 빠져버리는 꿈이라니요. 

'닮아도 하필 왜 그런걸 닮아. 이빠지는 꿈 꾸는 걸 닮을 일이냐고.'

남편이 내 사정을 듣고 배송상자를 뒤져 치즈를 찾아냈지만 내 기분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또 옷에 묻히고 먹었어? 으이고 못말려."

딸 아이는 나를 닮아 음식을 그렇게 잘 흘립니다. 새 옷만 입으면 옷에 김치 국물같은 걸 묻혀옵니다. 내가 묻히는것도 곤란한데요. 아이까지 그러니 죽을 맛입니다. 

"엄마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있었어?"

아들이 묻습니다.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원래 표정이 밝은 편이 아닐 뿐인데요. 아들은 유독 내 얼굴 표정을 많이 살핍니다. 그리곤 내 기분이 안 좋을 거라 짐작하지요.

"아니 기분 안 나쁜데."

"엄마 표정이 안좋아 보여. 안 좋은 일 있었지?"

아들은 자신의 판단을 믿고 계속 묻습니다. 

"아들 엄마 안좋은일 없대. 너 지레짐작으로 판단하지마. 너네는 본인이 아니라는데도 

자기생각대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더라. 엄마도 그러던데 똑 닮았어. "

남편이 궁시렁거립니다. 아이가 나를 닮아서 안 좋다는 얘기를 시작하면 나도 할말은 많습니다.  남편을 닮아 아이들이 안 좋은 점을 나열하자면 몇날몇일을 얘기해도 부족할 정도니까요. 

"하고 많은 것 중에 왜 하필 그걸 닮았을까."

결국 나오는건 이말과 짙은 한숨 뿐입니다. 


 히메 몬스테라가 새 잎을 냅니다. 식물들을 켜주었더니 가을인데도 새 잎을 자주 내줍니다. 아주 예쁘고 사랑스러운데요. 이상하게 새로 나온 잎이 삐죽빼죽하게 돌아갑니다.반듯하게 자라서 아래로 쭉 늘어트리면 보기 좋을 텐데요. 제 마음대로 방향을 트니 모양이 뒤죽박죽이지요. 하지만 내 마음대로 키울수는 없습니다.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자라니까요. 왜 그렇게 자랐느냐고 그 모양이냐고 불평을 가져봤자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이도 그렇겠지요. 좋은 점만 닮고 싶었을 거에요. 안좋은 점때문에 불편할 텐데요. 그것도 제 의지는 아니지요. 아이도 나도 원하지 않는 일이었는데요. 마치 아이가 잘못한 것처럼 투덜거리니 어이없었을 겁니다. 

출근 길에 꿈해몽을 찾아보았습니다. 

"이가 우수수 빠지는 꿈은 그동안 고민했던 일들이 해결되는 꿈입니다."

휴~정말 다행이네요. 아이가 나와 비슷한 꿈을 꾸어서 걱정했는데요.

아이의 꿈은 오히려 길몽이었습니다. 

아이는 나와 닮았습니다. 나의 안 좋은 점을 많이 닮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나와 닮은 점을 나와 다르게 풀어나갈 것입니다. 

나보다 훨씬 근사한 아이니까요. 

출근 길 룰루랄라 휘파람이 절로 나옵니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은 정상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