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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Nov 01. 2023

당신은 정상인가요?

매년 나오는 새해 트랜드를 보니 앞으로는 물건을 구매할때 채널마다 가격과 조건이 달라진데요. 그렇게 다양한 조건중에서도 내가 팔로워하고 나와 취향이 통하는 사람이 추천해주는 물건을 살거라는데요. sns를 하다보면 내 마음에 드는 인플루언서가 있습니다. 취향도 생각도 비슷하지요. 처음엔 매력에 끌려서 줄기차게 보는데 어느 순간 질려서 팔로우를 끊기도 하지요. 팔로우를 끊고 나서는 한참 후에 생각나서 찾아보기도합니다. 마치 소식이 끊긴 옛친구처럼요. sns에도 시절인연이 있나봅니다. 그래서 시절에 맞게 찾아보는 사람이 달라지지요. 오랫만에 예전에 팔로우하던 인플루언서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갔습니다. 대뜸 질문이 씌여있는 피드가 눈에 보입니다. 


"매일 가방 정리안하는 사람이 있다고?"


내용은 즉슨 이랬습니다. 자신이 친한 언니가 있는데 성격이 무척 깔끔하답니다. 정리 정돈을 잘하는데요. 가방 정리는 유독 안합답니다. 가방을 들고 나갔다가 그대로 두고 한번도 가방을 바꾸질 않는답니다. 그렇게 많은 가방이 있지만 옷에 따라 가방을 바꿔들줄 모른대요. 정말 이해가 안된데요. 자신은 집에 들어가면 가방을 열어서 모든 물건을 꺼내둔답니다. 그리고 다시 나갈때 그 물건을 스타일에 맞는 가방에 담아간대요. 물건을 꺼낸 가방은 더스트백에 넣어서 진열장에 넣는대요. 그래야 스타일에 맞는 가방을 들수 있고 관리도 잘된다구요. 이렇게 두사람의 다른 스타일을 비교하며 댓글놀이를 시작했습니다. 가방 정리 안하는 언니 이해가 안된다며 팔로워들의 의견을 물었는데요. 사람 생김새마다 댓글의 의견도 천차만별이었지요. 당연히 가방을 바꿔 나간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절대 가방안의 물건을 꺼내지 않고 정리도 안한대요. 가방속 물건을 그대로 두었다가 옷 스타일에 안 맞으면 나가기전에 물건을 옮기는 나같은 사람도 있었지요. 다양한 사람들의 댓글을 보며 인플루언서는 놀람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맙소사. 내가 정말 정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라고요? 가방 정리 안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고요?"


당연히 자신의 편에 선 사람이 많을 거라 생각한 인플루언서는 진심으로 놀랜듯 보였습니다. 


알로카시아는 상당이 매력적입니다. 길쭉하게 뽑아내는 잎모양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그렇게 벌레가 많이 생긴다고 해서 처음엔 절대 저걸 들이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는데요. 


화원에 갈때마다 어쩔 수없이 눈길을 잡으니 모르는 척 구입하고 말았지요. 


그러다가 벌레가 생겨 몇 잎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잎을 잘라내고 벌레를 물로 씼어낸 후 


약을 뿌렸습니다. 다른 식물들과 분리해서 몇일 관리하자 벌레는 잡혔습니다. 그런데 찬바람이 부니 잎이 병든것처럼 쪼그라들었습니다. 그야말로 멀쩡하고 예쁜 잎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병에 추위에 약한 알로카시아는 수난시대를 겪었지요.몇번이나 보기 싫어 쓰레기통으로 쳐박아 버릴까 고민하다가 겨우 멀쩡하고 예쁜 잎을 하나 내어주더군요. 새로 나온 깨끗한 잎사귀는 다시금 알로카시아의 매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누렇게 타들고 병든 잎들 사이에서 독야청청 건강함을 뽐내고 있는데요. 뿌리가 상했을지도 모르는데 정말 건강한게 맞을까요. 그야말로 알수가 없습니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두라 했습니다. 사람은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죠. 나쁜 사람이 옆에 있으면 욕하면서도 금세 그 사람의 행동을 따라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주변에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을 두고 배우라는 뜻일 텐데요. 과연 내 주위에는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 있나 생각해봅니다. 더불어 나는 그들에게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나 돌아보게 되요. 


쇼펜하우어는 인간관계가 위해하다고 했습니다. 혼자서 자신에게만 의존하며 자신이 되는 사람이 가장 잘사는 거라는대요. 그래요. 나쁜 사람의 영향을 받아 나 역시 물들어가는것보다는 건강한 거리를 두고 적당히 혼자가 되는게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극한으로 인간관계를 줄인다고 해도 혼자 살수 없습니다. 조금씩은 사람과 영향을 주고 받을 텐데요. 주변에 좋은 사람을두기 전에 나는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돌아보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혼자 설수 있고 건강할때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테니까요. 


흔히 나는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던 것, 하던 대로가 정상이고 나는 바르게 살고 있다고 믿는데요. 이게 얼마나 큰 착각인지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방 정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정상이지만 정리를 안한채 사는 사람말도 들어봐야하니까요. 세상엔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수많은 정상의 범주가 존재하는데 내가 가진 것만 정상으로 여기지는 않았나 싶습니다. 


건강한 알로카시아가 독야청청 나는 아름답고 바르다고, 다른 잎들과는 다르다고 주장해보지만 같은 뿌리잖아요. 그 썩어가는 잎들과 같은 뿌리, 같은 환경에서 자신만 홀로 얼마나 건강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나 또한 '정상. 바르다'는 나만의 작은 틀에 갇혀 얼마나 많은 상황과 사람을 판단하고 저울질 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신할 수 없습니다. 결코 내 바운더리가 넓었고 충분히 수용적인 사람이었다고 장담할 수 없어요. 생각해보면 부족한거 투성이고 고집에, 아집이 대단하지요.


그런 내 모습을 알아채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때 조금더 건강한 나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의로움을 견디면서 내가 바라봐야할 것은 타인의 잘못이 아니었네요. 나를 외롭게 놔둔 그들의 기준이 아니라 내 홀로 내세웠던 나의 뻣뻣한 기준이 아니었는지. 건강한 알로카시아 새잎을 보며 생각합니다. 저잎마저 병들지 않게 내 뿌리와 주변을 잘 살펴야겠다구요. 


누구도 모든 것이 정상일수는 없습니다. 정상의 기준과 범위를 차차 늘려가는 것. 나이들면서 가져야할 이해심이 그게 아닐까 조용히 생각해 보게 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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