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공부를 하느라 밤늦게 자리에 앉은 딸아이와 마주 앉았습니다.
내일이 시험이라 멘탈이 털렸다며 하소연을 하는데요.
점수야 어찌됐든 해보려는 아이가 대견하고 안쓰럽습니다.
"이번 시험은 결과가 어찌됐든 엄마가 아무 말도 안할게. 점수로 상처주지 않을께."
얼마전 아이가 얘기하다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이가 내가 점수얘기로 팩트폭행을 해서 상처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저번 시험에서 c를 맞아왔습니다.
60점 대의 점수를 보고 지난번보다 나아졌으니 괜찮지 않느냐 하는데 화가났습니다.
나는 한번도 받아본적 없는 점수니까요. 어쩌면 그런 점수를 맞고도 태연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됐습니다.
"뭐가 괜찮아. 학원도 안다니다 학원에 다녔으면 점수가 나아지는게 당연한거 나야. 그리고 열심히 했는데도 60점대점수가 나왔다는게 말이 되니.중학교에서 올 90점대를 맞아도 고등학교 가서 1.2등급 맞을까 말까인데 그래놓고 괜찮다고 하는네가 나는 너무나도 이해가 안되는데. "
그동안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시험기간에 책 읽거나 핸드폰 했던 것들까지 싸잡아서 화를 냈습니다. 아직 중학교 2학년 어리니까 그렇겠지 하다가도 화가 나는 걸 참기는 어려웠습니다. 아이가 공부동기도 없고 의욕도 없다는 학원 선생님의 말이 겹쳐 더 화가났지요. 그 말을 다 내뱉었는데도 화는 좀체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어떻게 그렇게 직접적으로 나에게 말할수 있어. 나 상처받았어."
아이는 울면서 하소연했습니다.
"엄마니까 팩트를 말해주는거야. 나 아니면 누가 너에게 진실을 말해주겠어. 학원선생님들은 다음달에도 등록해야 하니까 잘한다고만 하지. 학교 샘들은 뭐학생도 많은데 관심이나 있니? 내가 다 너를 위해서 말해주는 거야. 아파도 듣고 잘 새겨."
아이가 울던 말던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렸습니다. 그래야 자극을 받아서 좀 더 공부할 의욕이 생길까 싶어서였지요.
그때 얘기를 하는 겁니다. 두고두고 그 이야기를 시시때때로 꺼냅니다. 그 당시 나는 그렇게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열심히 안했으니 들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해서 한건데요. 아이는 상처가되었다네요.
얼마전 본 다큐멘터리가 생각났습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찍어서 부모에게 보여주는 내용이었는데요. 당연히 사랑하고 당신은 좋은 부모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초등 저학년때까지만해도 그랬지만 아이가 성장하고 학습이 중요해질수록 아이마음에는 상처만 가득했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만나서 하는 말이 공부하라는 잔소리 뿐이었으니까요. 그럴수밖에 없었겠지요. 그 다큐멘터리 속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 딸아이도 저렇게 나때문에 상처를 받았겠구나 싶었지요.
"그래. 미안해. 그리고 앞으로 엄마가 그렇게 말할때는 상처받는다고 말해. 그럼 멈출테니까."
우는 아이를 보며 다시 한번 내 마음의 다짐을 새겼습니다.
"이번 시험부터는 절대 점수로 열폭하지 않을께. 너도 나름 열심히 공부하는데 엄마가 그러면 안되지."
아이는 그말을 믿어도 되나 싶었을 겁니다. 반성하고도 점수만 말하면 고생했다는 말대신 한숨을 짓고 막막을 퍼부었으니까요.
"이번엔 진짜야. 너 상처받지 않도록 할게. 앞으로는 어떻게 이야기해주면 좋겠어?"
"내가 너를 믿었는데 실망스럽다고 말해. 그게 훨씬 나에게 하고 싶은 의욕을 만들어주니까."
아이는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알았다는 나의 다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이는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노력한 만큼 잘할 수 있을거야."
오늘만큼은 부드럽고 다정한 엄마가 되어야지 싶었습니다. 시험전날이니까요.
시험끝나고 나서도 평정심을 유지할수 있기를 부디 간절히 바라면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지요.
한겨울의 아스파라거스가 새잎을 냈습니다. 여리여리 한것이 겨우내 죽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는데요. 따스한 식물등을 받더니 왠걸요. 연두빛 여린 새잎을 내주었습니다. 그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따뜻하게 보듬어주니까 되는구나. 여리지만 자라는 구나.'
아이를 키우는것도 마찬가지겠지요. 윽박지르고 상처를 준다고 해서 아이가 변하는게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자라게 하는것은 찬 바람과 건조한 공기가 아니라 적당한 햇빛과 돌봄이었습니다. 아이에게 충격을 주어 독하게 만들려던 나의 계획또한 잘못이었네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를 키우는 건 따스한 온기와 배려라는 것을 식물에게서 다시 배웁니다.
"그래 애썼다. 우리딸 사랑해. "
따뜻하게 한마디 건네봅니다. 이 마음이 어떤 점수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래오래 변치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