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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 Feb 05. 2021

목소리를 돌려주세요

더 이상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큼, 여보세요.”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수화기를 들었다.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을 때면 늘 그랬다. 문이 달린 것도 아니고 선이 그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열 평 남짓한 사무실에 들어서기만 하면 목소리를 가다듬어야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러지 않아야지 아무리 노력해도 수화기를 잡기 전에는 나도 모르게 큼 거렸다. 어쩌면 전화가 울리는 동시에 목을 가다듬은 것 같기도 하다. 혹여나 정말 기관지의 문제일까 싶어 틈만 나면 물을 마시고 주말마다 공기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목 상태에 신경 쓰기도 했다.      


 처음 이 버릇을 인지했을 때는 영원히 큼큼거리며 전화를 받아야하는 건가 사뭇 진지하게 걱정했는데, 사무실을 벗어나기만 하면 “네, 여보세요!” 세상 발랄한 나를 발견하고는 안도했다.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언제부터 이런걸까 그리고 난 왜 이런걸까. 지나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인가 아니면 별거 아닌 문제인가. 회사에서 만난 사람 그 누구도 전화 받을 때마다 큼 목을 가다듬지 않는 걸 보면 나만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단지 큼 한 음절은 큰 문제가 아닌 거 같기도 하다.     


  오랜 고민 끝에 내가 도달한 결론은 이렇다. 사무실만 벗어나면 되는 문제.           

“자리를 비운 직원의 전화벨이 울리면 여직원이 당겨서 받아야 해. 

#버튼 누르면 이 자리에서 받을 수 있어.”     

 이때부터라고 짐작한다. 나는 직원이 아니라 여직원이었기 때문에 자리를 비운 직원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을 의무가 있었다. 그 때문에 사무실에서 수화기를 가장 많이 들고 있는 사람은 나였고, 자연스레 전화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평소에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내 목소리를 다른 직원들이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괜스레 신경이 쓰였다. 말이 꼬여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했고, 갑자기 목소리가 갈라져서 말소리가 나지 않을까 우려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업무 지식이 전혀 없는 전화가 걸려왔을 때이다.      

“혹시, OO PJT 아세요? 지금 좀 급해서요!” 

“아니요, 잘 모르는데요. OO 과장님께 여쭤볼까요?” 

“아, 아니요. 제가 직접 여쭤보겠습니다”

 ‘모른다’는 말을 하루에도 십수 번 내뱉아야 하는 날은 모든 에너지가 소멸되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면 쉽게 주눅 들고,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내가 담당하는 분야가 아니라서 몰라도 되는 부분이지만 지속적으로 모른다는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은 작지만 큰 스트레스였다. 모른다는 말을 내뱉을수록 나는 정말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빠지기도 했다.           


 물론 모든 일을 다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연차가 쌓여가면 아는 것이 늘어나야 정상이었지만, 내가 소속된 회사에서는 그런 기회를 쉽게 잡을 수 없었다. 여직원에게는 출장, 회의 업무가 일절 없었고 입사를 하면 받는 연수의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업무 지식이 확장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수화기에 대고 “잘 모르겠는데요. / 그건 제가 잘 몰라서요. / 다른 분께 여쭤보셔야겠어요. / 전화를 돌려드릴까요?”를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그리곤 큼, 큼, 큼. 큼, 여보세요? 나는 큼큼거리는 직원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나 지금 괜찮지 않거든’ 하는 몸의 신호이지 않았을까.      


 회사를 다녔던 내내, 사무실에 앉아 전화를 받는 그 시간 내내 큼큼거리며 목을 가다 다듬었다. 그럼에도 나는 ‘큼’을 미워하지 않았다. 가끔은 너무 거슬리는 일이기도 했지만, 나의 모자란 단점으로 치부하지 않기로 했다. 큼큼거리는 일은 내가 모르는 게 많으니 조심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지금보다 앞으로 더 잘 살아내고 싶다는 마음에서 우러난 신호였으니까. 살면서 내게 주어진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바꾸거나 다시 채워나가면 될 일이다. 


 그리고 얼마 전. 직원으로 입사했는데 굳이 여직원으로 만들고야 마는 그 회사에서 큼큼거리는 일을 청산했다.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곳,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곳, 닮고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곳, 그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내 삶을 아는 것으로 채워 나가며, 이제 더 이상은 큼큼거리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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