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 Jan 18. 2024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앗, 뜨거!” 

 큰 맘 먹고 오징어를 볶았다. 불 조절에 실패해서인지 커다란 기름이 손가락에 튀었다. 주걱을 쥐고 있던 왼손 엄지 손가락이었다. 순간 너무 따가웠지만 흐르는 물에 살짝 씻은 후, 다시 오징어 볶음 앞에 섰다. 일하고 와서 피곤할 남편, 한창 배고플 아이를 위한 음식이라고 생각하며 아픔을 불사하고 요리를 하는 내 모습이 사뭇 비장하다고 느꼈다. 마치 진정한 주부가 된 것 같고, 어른이 된 기분마저 든다. 어쩌면 이미 오래 전부터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여전히 나는 어린 것 같고, 어린 시절 엄마가 하던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볼 때면 자꾸만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착각을 하고 만다. 나도 엄마가 된 지 벌써 8년이나 지났는데. 이제는 오징어 볶음도 할 줄 아는데(비록 손가락은 다쳤지만).     


 다음 날. 기름이 튄 엄지손가락에 거무틱틱한 반점이 제법 커다랗게 생겼다. 잘 보일 사람 하나 없는데도 깨끗했던 손에 검은 점이 생긴 것 같아 내심 속상하다. 가뜩이나 내 몸에 없던 것들이 새롭게 발견될 때마다 마음이 뜨끔뜨끔한데, 좀 잘해볼걸, 이제와서 후회해도 늦었다. 먼 세상 이야기로만 여겼던, 기미 주근깨 주름살 새치 검은 반점 같은 것들이 더 이상 남의 것만이 아니다. ‘이거 어떻게 대해야 하나’ 주춤거리는 사이에 새로운 무언가가 고개를 쑤욱 내민다. 이제 진짜 어른인데도 '어른 된 것 같다는 착각'같은 건 이제 그만하라는 경고 같다.            





“앗, 따가워!”

 그날 저녁, 세수를 하는데 오른쪽 눈 아래가 살짝 따갑다. 거울에 비춰보니 눈 밑에 붉게 솟아오른 것이 다래끼가 난듯 하다. 하루 이틀 지나고보니 그 부분이 단단하게 부어올라 참지 못할 만큼 따끔거렸다. 왜 하필 손가락을 다친 이 시점에 다래끼까지 난 걸까. 왠지 모르게 더 서글프다.            


 손가락의 검은 반점, 눈 밑의 붉은 다래끼. 문득 어린 시절의 몇몇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지금의 내 모습은 마치 오래 전부터 보아오던 엄마의 모습이지 않던가. 수십 년간 주방을 벗어나지 못했던, 그래서 크고 작은 상처들에 단련이 된 나의 엄마. 엄마는 새벽부터 집을 나서는 가족들을 위해서 밥상을 차렸다. 매일 새로운 밥을 지었고, 국을 끓였다. 하루를 마치고 차례대로 집에 돌아오는 식구들을 위해 또 밥상을 차렸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말이나 연휴에도 쉬지 못한 채, 방학이나 연차라는 제도도 없는 곳에서 말 그대로 매일 매일을 그렇게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냈을 것이다. 아무리 집안 살림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가끔씩은 기름이 튀어 살결에 닿았고, 칼질을 하다가 크게 손을 베였다.      


“조심 좀 하지 그랬어.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피가 뚝뚝 떨어지는 엄마의 손을 볼 때마다, 말벌에 쏘인 것처럼 퉁퉁부은 엄마의 다래끼 난 눈을 볼 때마다 정작 엄마보다 더 크게 놀랐던 사람은 나였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병원만 찾는 내게 이만한 일로 병원을 가는 사람이 어딨냐고 무덤덤하기만 했던 엄마다. 그때는 아파하지 않던 엄마가,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넘어가던 엄마가,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다. 어른이라서, 엄마이기 때문에 그렇게 아파하지 않을 수 있다고 순진한 마음으로 믿었다. 아픔에 단련되고, 괜찮다는 말을 내뱉는 것에 익숙해서 그렇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할 만큼 나는 둔했고, 또 어렸다. 엄마라고 왜 아프지 않았을까. 엄마라고 왜 하루 정도는 푹 쉬고 싶지 않았을까.      



너무 바보같은 말이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야,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불 앞에서 신나게 오징어 볶다가 기름이 튀고 나서야, 붉은 다래끼를 얻고 나서야 엄마도 그 때 이렇게 아팠구나. 엄마라고 속상하지 않은 것이 아닐텐데. 엄마라고 자신의 몸이 하나 둘 망가지고 변형되는 게 아무렇지 않는 것이 아닌데. 꼭 경험을 하고 난 후에야 세상을 깨닫고야마는 내가 왜 이리도 어리석은지 모르겠다. 한 번 더 괜찮냐고 다정하게 물어볼 껄. 내가 도와줄 건 없겠냐고 주방을 어슬렁거려 볼 걸.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이렇게 후회한다.      


 “엄마, 내가 연고 바르고 밴드를 붙여줄게.”

 손가락에 생긴 검은 반점을 보더니 딸아이가 약통을 들고 쪼르르 달려온다. 제법 근사하게 약을 펴 바르고 익숙하게 밴드를 붙여주는 아이 앞에서 도저히 얼굴 찌푸리며 아파할 수가 없다. “와, 덕분에 엄마 다 나았네. 엄마 이제 하나도 안 아파졌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그때 그 시절의 나의 엄마처럼. 서스럼없이 괜찮다고 말하는 나를 본다.      



 미래의 나는, 아마도 나의 엄마가 되어 있겠지. 하나 둘 찾아올 변화가 달갑지 않더라도 묵묵히 받아들이는, 엄살떨지 않는 무덤덤한 어른이 되어가겠지.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목소리를 돌려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