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살림꾼, 남편의 청소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프로 살림꾼

by 김윤

“나 이거 하나만 사줄래?”

인터넷으로 결제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남편은 무언가 사고 싶을 때면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내온다. 유행하는 브랜드의 티셔츠, 나이키 신상 운동화, 연예인이 쓰고 나온 안경테와 같은 아이템일 것이라 상상하신다면 큰 오산이다. 그가 사고 싶어하는 상품군은 주로 주방용품, 청소용품이다. 욕실청소용 전동솔(브러쉬 추가증정!), 주방 씽크대 거름망 + 마개셋트, 매직캔 휴지통, 방수 매트리스 커버 같은 것들. 집안이 깔끔, 청결한 것을 중요시 여기는 남편의 성향이 여실히 드러나는 쇼핑리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그럭저럭 대충 정리만(?) 하고 살면 되는 스타일이고, 그는 청소를 하기 위한 각종 도구가 너무나도 필요한 사람이다.


“설거지 하고 나면 일주일에 한 번은 배수구 열어서 청소해줘.”

“초파리 생길 수 있으니까 과일 먹고 나면 바로바로 음식물 쓰레기에 담아줘.”

“냄새나는 것들은 다 쓰고 버리는 비닐에 넣어서 꽉 묶어서 버려줘.” 등등.


평소에 남편이 하는 잔소리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논리적이며 매우 살림꾼같은 면이 있다. 왠지 존댓말로 대답을 해야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남편은, 청소에 매우 진심이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리는 것만이 집안일의 끝인 나에게 프로살림꾼 남편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무척이나 큰 행운이다. 매번 잔소리를 듣는 일은 달갑지 않지만, 내가 미처 보지 못하는 면을 살피며 꼼꼼히 처리하는 남편이 있으니 잔소리 정도야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 또한 저렴한 청소 용품 정도는 얼씨구나 노래를 부르며 군말없이 결제한다.

결혼 전, 같은 회사 동갑내기 동료의 차를 탄 적이 있다. 새로 산지 몇 개월 채 되지 않았다던 그의 차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심하게 지저분했다. 담배 냄새로 찌든 가죽 시트, 트렁크에 있어야 할 법한 커다란 박스와 온갖 잡다한 쓰레기와 개인물품들이 앞뒤좌석 할 것없이 여기저기서 나뒹굴고 있었다. 차 주인이 정리를 모두 끝낼 때까지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차에 탈 수 있었는데, 냄새 때문에 앞 좌석에 탔던 한 임원분은 조용히 창문을 여셨고, 나는 뒷좌석 시트 안에서 그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오백원짜리를 두 개나 발견했다.


반면에 그 날 저녁에 탔던 남자친구의 차. 부담스럽지 않은 은은한 향기가 나고, 운전자 뒷좌석에 곱게 접어진 무릎담요 하나 말고는 그 어떤 물건 없이 정돈되어 있다. 극과 극의 상반된 차 주인을 만난 그 날, 생애 처음으로 ‘청결’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았던 것 같다. 항상 곱게 접혀 원위치에 놓여져 있는 무릎담요를 보며 그와 함께 하는 생활도 이처럼 단정할 것 같았다. 적어도 집 안을 온갖 쓰레기로 뒤덮어놓거나 담배 같은 건 피우지 않을 성향임은 확실했다.


그의 깔끔한 성향 덕분에 전통적으로 부엌일, 살림살이들을 주로 여성의 일로 여겨져왔던 것과 달리 나는 집안일에 대해서라면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편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우리 부부는 어느 한 쪽이 식사를 준비하면, 다른 한 쪽이 설거지를 한다거나, 내가 세탁기를 돌리면 남편이 빨래를 너는 식의 방법을 준수하는 편이다. 만일 설거지를 하지 않거나 빨래를 널지 않아도 괜찮다. 칼로 무 자르듯, 네가 할 일과 내가 할 일을 정확하게 나누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때그때 에너지가 남는 쪽이 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한다면, 언젠가는 상대방도 나를 대신하여 에너지를 더 쓸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부부는, 한쪽이 과도하게 더 많은 에너지를 살림에 쓰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에 살림으로 인한 전쟁은 피할 수 있었다. (물론 그의 청소 욕심과 꼼꼼한 정리정돈 덕분에 집이 한결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남편보다 덜 일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세탁해준 깨끗한 옷을 입기만 하던 이십대에는 집안일에 대해서 1도 몰랐다고 고백해야겠다. 자취 경험이라고는 워킹 홀리데이를 했던 1년의 기간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나는 하숙인의 처지였으므로 살림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 남편 또한 본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까지 했으니 경험치가 나와 비슷했다. 또한 결혼을 한다는 뜻은 동시에 집안일의 세상으로 접속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 턱이 없었으므로, 끊임없이 할 거리가 생겨나는 집안일에 놀랐다. 신혼 초는 소꿉놀이와 다름없는 시간을 보냈지만, 한 해, 두 해 시간이 갈수록 알게 되었다. 집안일은 밥하기, 설거지, 빨래, 청소와 같이 대분류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각 공간별로 분기마다 해야할 일은 세세하게 정해져 있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뒤따라오는 불편함은 그 공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그러니까, 결혼이라는 것은 두 사람의 사랑만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몫의 의식주가 결합하여 그와 관련된 모든 청소와 정리정돈의 일까지 함께 포함되는 일이었다.

주방후드 청소, 전자렌지 청소, 세면대 뚫어뻥 등등. 살림을 직접 접하기 전에는 도통 떠올릴 수 없었던 용어들이었다. 아니, 주방 후드는 한 번 달면 평생 쓰는 것 아니었나요? 전자렌지는 그냥 저절로 돌아가는 것 아니었나요? 세면대에서는 세수만 하는데 왜 막히는거죠? 자취 경험이 없는 나로써는 새하얗고 예쁘기만 했던 신혼집이 세월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하나둘 고장나고 냄새가 나는 일들이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다.


가령, 후라이팬은 몇 년이고 쓰는 것인줄 알았지만 흡집이 생기면 몸에 좋지 않은 성분이 나오기 때문에 1년에 한 번 교체하는 것이 좋으며, 밥솥도 기스가 가기 쉬운 품목임으로 추천 교체 시기가 정해져 있다. 여름에는 음식물 쓰레기에서 초파리가 펄펄 날아다니 십상이니 매일 비워주는 것이 좋다. 변기는 항상 하얗다고만 생각했는데 주기적으로 때를 벗겨주어야 했고, 욕실의 거울은 유리 전용 티슈같은 것으로 닦아야먄 깨끗해졌다. 겨울철에는 건조함을 피하기 위해 가습기를 틀고, 여름철에는 습기 조절을 위해 제습기를 트는데, 이 또한 얼마나 자주 물을 갈아주고 깨끗이 씻어 말려야하는지. 집안일을 도맡는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만일 청소한 적이 없는데도 깨끗하고 청결한 집에 산다는 것은 그대가 누군가의 끊임없는 노동을 댓가없이 제공받고 있다는 뜻과 동일할 것이다.


본격적으로 나만의 살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가장 많이 느낀 점은 바로 ‘감사함’이다. 내일 마실 보리차를 한가득 끓여놓은 후 부엌불을 끄고 나면 평생을 가족을 위해 보리차를 끓여온 엄마의 노고가 저절로 떠오른다. 냉장고 속, 부피와 무게가 상당한 식재료들을 보면 마트에서 집까지 옮기느라 무거웠을텐데도 언제나 군말없이 그 모든 것을 해주는 남편에게 고맙다. 집안을 둘러보면, 작은 물건 하나 하나가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과 돌봄으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감사할 일들로 넘쳐나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이다.

매주 일요일 저녁만큼은 남편이 설거지를 하는 날로 고정되어 있다. 내가 하겠다고 해도 손사레를 치며 그대로 두라고 하는데, 설거지 말고도 본인이 반드시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치의 묵은 때가 끼어있을 씽크대와 하수구를 말끔히 정리하고 음식물쓰레기와 분리수거까지 깨끗하게 정리 정돈이 바로 그것. 가끔 홀로 너무 애쓰는 것 같아서 ‘도와줄까?’ 물으면 늘상 괜찮다는 답이 돌아온다. 청소를 끝마친 직후, 씽크대는 더없이 반짝반짝거리고, 있어야할 곳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그릇과 컵, 주방용품들이 보기 좋게 깔끔하다. 아마 이런 맛에 남편이 청소하는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청소하는 보람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나와는 확실히 다르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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