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사랑한 20분

함께 출근하는 부부의 20분

by 김윤


“남편과 같이 출근하면 어때요?”

“대부분 좋아요”

“...어떻게 좋을 수 있죠?”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분은 혹시 아실까. 실은 ‘대부분 좋다’는 말보다, ‘충만하게 행복하다’고 대답하고 싶었다는 걸. 하루 중 20분은 짧은 시간일지 모르지만, 그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우리의 결혼 생활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남편과 나는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다. 집에서 회사까지의 거리는 약 20km. 차가 막히지 않으면 20분 남짓 걸리는 시간이다. 크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우리 기준에서는 적당한 통근 거리였다. 퇴근하는 시간은 매번 달라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출근 시간만큼은 늘 함께였다. 누군가가 ‘차를 한 대 더 구입 해서 편하게 다니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하기도 했지만 나는 우리의 방식이 좋았다. 함께 출근하는 시간이야말로 별다른 즐거움이 없는 30대 직장인의 하루 중 가장 반짝이는 20분이었으니까.


자연스럽게 라디오를 튼다. SBS ‘김영철의 파워 FM’. 개그맨 김영철의 맛깔난 진행 덕분에 출근길을 늘 기분 좋게 시작했다. 재미난 사연을 들을 때면 남편과 나는 함께 웃었고, 처음 들어보는 노래가 우리 스타일에 가까우면 곧바로 메모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코너가 끝나면 남편이 말한다. “노래 듣자.” 자연스레 우리의 Play list가 재생된다.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는 순간은 좋다는 말로 표현이 안 된다. 마음의 모양이 딱 들어맞는 퍼즐이 된 것 같다. 8090의 신나는 댄스곡을 들으며 흥이 폭발하는 날은 조금 위험하다. 회사를 그대로 지나치고 드라이브를 하러 갈 기세가 되니까. 너무나도 쉽게 여행가는 기분이 되고 만다. “그냥 가자! 간다? 진짜 간다?”며 주차장을 지나치는 모션을 해보이는 그는 아침부터 종종 코메디같은 상황을 연출한다.


어떤 날은, 라디오도 노래도 필요치 않는 날도 있다. 주로 시덥잖은 얘기를 한다. 어제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푸념하기도 하고, 뉴스에서 본 것을 서로 공유하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보았는데 다른 사람에게 하기엔 좀 뻘쭘하니까 각자에게 털어놓는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상황극을 펼치기도 하고, 장난을 치다가 도가 지나쳐서 누군가가 삐지기도 하고 또 웃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너무나도 작고 시시한 것들이 종종 우리의 하루를 이끌어갈 에너지를 준다는 사실을, 그 시간들이 나를 살게하기도 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살면서 쌓이는 스트레스와 긴장, 걱정을 해소시켜주는 건 대단한 뭔가가 아니라 사소한 장난, 시시콜콜한 농담,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by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황선우 & 김하나


물론 항상 좋았던 기억만 있지는 않다. 전날 밤 싸움의 불씨가 남은 날도 있고, 아이가 도통 일어나지 않아 지각이 예정되어서 초조했던 날, 출근길 도로에서 운전 때문에 남편이 욕을 싸지른 날, 아침부터 된통 싸운 날에는 운전하는 남편 옆자리가 아닌 뒷자리에 앉아서 출근한 적도 있다. 그런 날은, 남편의 뒷통수를 어찌나 째려보았던지.


결혼에 위기라는 시즌이 있다면 그 시간들 또한 출근을 함께하면서 무난히 넘겨왔다고 믿는다. 하루 중 일정 시간을 늘 함께 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서게 되기도 하니까. 말없이 가기에는 20분이 길고 긴 시간이 되고 만다. 부부싸움이란 칼로 물베기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몇 분간의 침묵 후에는 사소한 장난으로 쉽게 서로의 감정이 풀어낸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어딘가 둔한 면이 있어서 장난으로 금세 마음이 녹는다. (특히 나는 남편의 말장난에 쉽게 잘 넘어가는 편이다.)


그는 보통 이런 사람이다. 전날 밤 숙취가 풀리지 않았던 남편을 대신하여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눈 좀 붙일게. 오늘은 그냥 조용히 가자.”라며 남편은 보조석에서 잠깐이라도 잠을 자겠다고 했다. 그런 그를 위해 나는 최대한 라디오 볼륨도 줄이고 조심히 운전했다. 눈 감은지 1분이 채 되지 않아 남편이 나에게 말을 건다. 그렇게 또 한참을 노닥거리다가 대뜸 “나 조금이라도 자야 되는데, 우리 이제 진짜 말하지 말자.”며 눈을 감았고 또 1분이 채 지나지 않고 입을 열고 쫑알거린다. 눈을 마주친 우리는 서로 푸하하 웃었다.

그런 시간들이었다. 이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고 좋아서, 차를 타고 가야하는 시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고, 각자의 사무실로 향하는 시간은 왠지 아쉬워지고 마는. 그 작고 작은 마음들이 모여 도무지 가기 싫었던 사무실에 도착하는 순간 ‘오늘도 조금만 더 버텨보자’ 힘이 불끈 나게 만들어주던 그런 나날, 이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누군가는 오래된 우리의 고물차를 보며 우스갯소리로 “제발 차 좀 바꿔라”며 말을 걸어왔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저 빙긋 웃는다. 남편과 나는 그 작은 차 속에서 함께 벚꽃을 보았고, 비를 맞았고, 내리는 눈을 구경했다. 그 속에서 손을 잡았고, 눈을 마주 보며 빙긋 웃었고, 창밖을 두리번거리며 입을 맞추었다.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내었고, 나는 퇴사를 했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월급도, 경력도 아니었다. 매일 남편과 함께 하는 20분의 출근길을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워서 슬펐다.


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볼 일이 있어서 아이를 친정에 맡겨두고 단둘이 시내로 향하던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남편과 단둘이 보내던 시간이라 설레기도 했다. 내 마음을 눈치챘던 건지 남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은 나 자기가 그리웠어. 혼자 다니면 생각보다 좀 외롭거든. 오랜만에 같이 출근하는 것처럼 노래 들으면서 가자.”

그 때의 그 20분처럼, “노래 듣자”고 말할 것 같던 그는, 왠 러브레터 같은 말을 줄줄 쏟아냈다. 쑥스러워서 사랑한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던 신혼 초의 그가 이렇게나 변한 것은, 어쩌면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 덕분이지 않을까.


또 다른 시간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함께 사랑했던 그 20분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keyword
이전 07화Move like ja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