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가 다른 부모가 되었다

육아라는 마라톤, 오로지 우리 둘만 뛸 수 있는 레이스에서

by 김윤

퇴근을 하고 아이를 데리러 갔다. 더운 여름이어서 집에 있는 걸 답답해한 아이가 근처 마트에서 놀고 있다고 해서 그리로 갔다. 주차를 해놓고 아이가 있는 곳까지 서둘러 달려갔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를 발견하고는 저 멀리서부터 달려왔고, 남편과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두 팔을 벌려 아이를 맞이했다. 아이와 우리의 사이가 제법 멀다고 생각하던 찰나 철푸덕 하고 아이가 넘어진다. 짧은 옷을 입은 아이의 살결이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에 그대로 부닥쳤다.


놀란 아이는 우렁차게 울었다. 생애 처음 느껴보는 쓴맛이었을게다. 더 놀란 나는 급히 아이를 안아 들었다. 양쪽 무릎에 시뻘겋게 상처가 크게 생겼고 팔목에도 작은 생채기가 났다. 얼굴은 다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쓰린 고통이 느낄 아이를 생각하니 나도 울고 싶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아이의 울음이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깊지 않은 상처에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한 남편은 그런 아이가 귀여운지 슬쩍 웃기도 하며 “좀 있으면 괜찮아질거야. 그만 울자, 뚝~”했고 나는 아이의 머리칼을 말없이 쓰다듬었다. 집으로 올라가야 할 타이밍인데 울음의 강도는 점점 세지는 것 같아 차 안에서 기다려주기로 했다. 3분 즈음 지났을까.


“그만 울지?” 남편의 목소리가 조금 차가워졌다.

“먼저 올라가 있을래? 그치면 데리고 올라갈게.”

“또 봐, 자기는 그게 문제야. 너무 오냐오냐하는 거 아니야?”

남편의 말에 금세 날이 섰다. 그만 울라는 아빠의 말에 아이는 더 세차게 울었고, 오냐오냐하는 것 아니냐는 남편의 말에 내 얼굴도 일그러졌다.

“이렇게 크게 넘어진 건 처음이잖아.

한 시간도 아니고 그냥 단 오분만이라도 괜찮다고 안아주는 것도 안 돼?”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남편은 차에서 내려 큰 소리로 차 문을 꽝 닫고 사라졌다.


또 시작이었다. 아이의 감정을 조금 더 보살펴주자는 나와 훈육을 강조하는 남편의 구도. 매번 비슷한 이유로 다툼은 시작되었다. 결코 좁혀지지 않는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할 때마다 가슴을 퍽퍽 치고 싶을 만큼 답답해졌다. 그렇다고 각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나도 아이가 제발 그만 울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였고, 남편도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주고 싶은 건 마찬가지였을테니까. 다만 서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양육 포인트가 달랐고, 입장이 굳건하다는 것이 늘 싸움을 유발한 것이다.


남편은 본인의 감정이 아이에 대한 사랑보다 앞서는 편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아이의 끊이지 않는 울음은 남편의 피곤함을 더했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아이의 감정이 내 감정보다 앞섰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나의 것은 조금 내려놓아도 상관없었다. 남편은 그래서 내가 아이를 망칠 수도 있다고 했다.


육아에 대한 의견은 사실 정답이 없다. 쉽게 어느 한 쪽의 잘잘못을 따질 수도 없는 문제인 것이다. 그 날, 만일 내가 아이에게 “이제 집에 가야하니 그만 울자.”고 다독였다면, 혹은 남편이 아이의 울음을 조금 더 기다려주었더라면 우리가 아이 앞에서 큰 소리로 싸우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온도가 다른 부모가 되었다.


연애를 거쳐 결혼을 한 우리는 돌이켜보면 부모가 되기 전까지 크게 싸울 일이 없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부딪히는 부분 없이 물 흐르듯 쉽게 결혼식장까지 갔다. 함께 결혼 생활이란 것을 하게 되면서 언성이 높아지던 일들이 생기긴 했지만 보통은 몇 시간 뒤 혹은 하루이틀이면 사라지고 말, 지금 생각해보면 깃털같이 가벼운 싸움을 했다. 그러나 부모가 되는 일은 격이 다른 문제였다. ‘육아’가 힘들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지만 실제 육아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저 다른 세상 속으로 우리 부부를 끌고 갔다.


결혼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옮겨 가는 지역 이사 수준이라면,

출산은 지구에서 화성으로 옮겨 가는 행성 이동 차원이랄까

김슬기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새로운 가정의 모습이 된 우리 세 사람은, ‘가족’이라는 정체성을 찾아가느라 무수한 시련을 겪었다. 각자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서로가 화합하는 과정은 말도 못하게 피곤하고 끊임없는 다툼을 유발했다. 김슬기 작가의 말대로, 지구에서 화성으로 이동하는 차원인 날도 있지만, 가끔은 우주 밖으로 힘없이 튕겨가는 날들도 이어졌다.


아이가 태어나 집으로 온 첫날부터, 나는 뼈아픈 진통을 겪었다. 출산보다 아픈 경험이다.

내가 출산한 병원에서는 아빠가 탯줄을 자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었다. 연계된 산후조리원에서는 신생아를 룸으로 데려오는 모자동실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고 시무룩했던 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멀리 있는 병원에서 출산과 조리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부모가 되었다는 기쁨을 남편과 함께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굳이 병원을 바꾸지 않고 원래 계획대로 출산을 진행했다. 산후조리원에서 나와서 집으로 가는 날을 고대했다.


조리원을 퇴소하고 산후조리를 위해 친정에서 생활하기로 했고 그 첫 날, 남편이 퇴근을 하고 곧장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 엄마는 우리 세 가족 처음 만나는 시간을 축복하며 자리를 비켜주셨고, 나 또한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를 떠올리며 다시금 설렜다. 내가 엄마됨을 느끼는 순간만큼 남편이 아빠됨을 느끼는 순간이 더 없이 소중했다. 그런데, 남편이 조금 이상했다.


침대 안쪽에 누인 아이를 살콤 바라보고는 “귀엽다”라는 말을 남기더니 이내 눈길을 거두었다. 처음으로 아이를 품에 안아 감격해하는 아빠의 모습을 기대했던 나는 도무지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눈만 꿈뻑거렸다.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을 살짝 만져보거나 그도 아니라면 하염없이 물끄러미 아이를 바라보는 모습이라도 보였더라면 이 정도로 실망하진 않았을 것 같다. 방바닥에 놓인 이불을 등베개 삼아 기대어 누운 그는 곧 핸드폰을 들더니 게임을 작동시켰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

난생 처음으로 그가 낯설어서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조차 몰랐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철저하게 다른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욱씬한 손목과 얼얼한 젖몸살이 곧 나를 일깨웠고, 끙끙거리는 신생아 소리에 본능적으로 움찔하며 돌아보는 내 모습을 보면서 그제서야 그와 내가 부모로서의 속도가 현저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의 도움을 받아야만 일상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몸이 망가진 나와 달리 남편은 그냥 ‘그’였다. 언제 어떻게 젖이 돌아 앞섬을 흠뻑 적실지 모르는 나와 달리,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면 본능적으로 젖을 물리는 나와 달리, 그는 그냥 그로만 존재했다. 서류상 아이의 아버지(父)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저 한 청년일뿐이었다.

젖먹이였던 아이가 엄마 아빠와 농담 따먹기가 가능해진 시기가 될 때까지 길고 지난한 싸움을 거쳐왔다. 그 끝에 내가 깨달은 바가 있다면 우리는 각자가 되고자 했던 부모의 모습이 달랐고, 우리는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갖지 못하고 부모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충분한 대화의 끝에 부모가 되었다 하더라도 어쩌면 비슷한 강도의 진통을 겪었으리라는 허탈한 사실도 깨달았다.

어쩌면 부모가 된 누구든 겪어야 했을 진통인 것이 아닐까. 그 과정을 우리의 방식대로 지금 이 순간까지 이끌어 온 우리는 지극히 보통의 모습으로 가족이 되었다.



아이가 아스팔트 길에 철푸덕 넘어진 날.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통틀어 가장 큰 싸움을 했다. 아이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로 서로에게 고함을 질렀다. 그렇게 서로가 차가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돌아온 밤, 길고 긴 대화가 이어졌다.


나는 늘 우리가 온도가 달라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날 우리의 대화를 통해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열 달 동안 아이를 품으며 한 몸이었던 적이 있는 나처럼, 그에게도 열 달만큼의 시간(어쩌면 더 긴 시간)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고. 그에게 아빠가 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남편은 앞으로 아이를 향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아이의 감정을 한 번 더 바라보겠다고 했다. 나는 남편을 향해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왜 아이를 먼저 생각하지 않느냐고, 재촉하지 않겠노라 했다. 출발점은 달랐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의 시선 끝에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진심 어린 말속에는, 아이와 함께하지 못한 10개월의 시간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외침이 담겨 있었다. 나는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그의 사랑을 충분히 느꼈다.


출발지점이 다르고, 달리는 속도도 다르며, 달려가는 포즈도 다른 마라톤을 하고 있는 우리는, 딸아이를 위해 이 끝없는 마라톤을 함께 한다는 사실로 서로를 위로한다. 이 마라톤은 오직 남편과 나, 단 두 사람만이 달릴 수 있을 뿐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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