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만 잡으면 딴 사람으로 변하는 사람, 바로 내 남편
남편과 결혼 후 가장 많이 다툰 곳은 바로 차 안이다. 그가 운전하는 차를 타면, 5번 중 1번은 꼭 깊은 한숨이 쏟아져 나온다. 연애 시절 운전하던 그는 늘 양보하고 다정했는데, 결혼 후에는 심하게 까칠해진 것 같다. 자기 앞에 끼어들 기세가 보이는 차를 향해 무리한 클락션을 울리는 것은 예삿일이고, 끼어들기라도 했다 치면 어김없이 에이 씨~를 연발한다. 가끔은 더 심한 말도 한다. 기분이 많이 상했을 때면 차 뒤꽁무늬를 따라가기도 하고, 제일 이해 되지 않는 것은 굳이 옆 차선에 따라 붙어서 창문을 내려다보는 행위다. 물론 기분이 상하는 건 인정하지만, 그 차 안에 시퍼런 칼을 들고 있는 성격파탄자라도 타고 있으면 대체 어쩌려고 그러나?
요즘에는 하도 흉흉한 사건들이 많아서 어떤 차에 어떤 사람이 타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회사, 친정집을 오갈 때 말고는 운전할 일이 거의 없는 편이긴 하지만, 새치기를 당하거나 조금 어이없는 일을 당해도 그냥 잊으려고 하는 편이다. 많이 늦어봤자 5분이고, 따지고 싶은 차를 따라간다 한들 내 기분만 상하는 일이지 않나 생각하고 넘긴다. 그쪽 차는 오늘 단 한 번의 실수였을지도, 아차 하는 찰나의 방심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까짓 것 별일이 아니게 된다. (물론 사고를 유발하는 교통 위반의 경우에는 말이 다르다.)
50대 중반인 삼촌은 “나도 한 때는 그랬다. 열혈 청춘이라서 그래. 이겨야한다는 심리가 강하다는 뜻이지. 나이 들면 클락션 울리고 싶은 맘이 사라져. 저절로 수그러질 것이야.”고 조언해주셨다. 아니, 조용하고 느긋한 드라이브를 위해서는 20년이나 더 참아야 하나? “에잇 씨~~~~~~~~!%#$$!@&*&”를 대체 몇 번이나 더 들어야 하나?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다는 이유로 짜증이 섞인 욕설을 들어야하나?
아이를 태우고 가는 경우에는 남편의 운전 태도가 더욱 거슬린다. 잠깐의 사소한 문제로 팍 짜증을 내는 태도, 기분 나쁨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언어를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기분이 나쁘면 바로 짜증을 표현하는 거구나’를 몸소 가르치는 것 같아서, 스펀지 같은 흡수력을 가진 아이가 곧이곧대로 받아 들일까봐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운전 때문에 가볍게 싸운 일이 여러 번 있지만 가장 큰 싸움이 있었던 곳은 바로 퇴근길의 고가도로 위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2차선 고가도로였는데, 1차선은 좌회전하는 차선이라 늘 막힘이 없었고 2차선은 번화가로 넘어가기 위해 직진하는 차들로 정체가 심한 구역이었다. 그래서 몇몇 차들은 1차선을 타고 신호 앞까지 간 후 2차선으로 슬쩍 끼어들기도 했는데, 남편도 그렇게 운전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한두 번은 그냥 참고 지나쳤지만, 그 곳의 정체가 심할 때마다 당연하게 새치기를 하려는 남편에게 그날은 크게 화가 났다.
“새치기도 습관이다. 저 수많은 차들도 너처럼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사람들이겠지만, 신호를 지키고 질서를 지키는 게 법이기 때문에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겠니. 제발 기본은 지키고 살자, 좀.” 그러자 남편의 말이 참 가관이었다. 이미 회사에서 한 차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나의 말에 박힌 가시가 유난히 뾰족하다 느꼈는지 모르겠다.
“저기 신호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열이면 여덟, 다 여성 운전자일껄. 남자들은 원래 이런 거 잘 안 지킨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는, 말인지 방구인지 모를 발언이다. 수십 대가 넘는 퇴근 차량들이 줄 지어 서있는데 저 차들의 80%가 모두 여성운전자라니. 그런 발상도 웃기고, 교묘하게 여성 운전자들을 깔보는 심리에 버럭 화가 났다. 말이 안 되는 논리를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그만 남편에게 퍼부었다. “와~ 나는 진짜 못된 사람이랑 결혼한 것 같다. 네가 이런 사람인지도 모르고 결혼했다니. 내가 바보다 바보.” 남편은 그 후로도 자신이 옳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나는 가슴이 하도 답답해서 눈을 질끈 감고 입을 굳게 닫았다.
내가 정말 못된 사람과 결혼을 한 걸까? 운전은 생명과도 직결되어 있기에 ‘안전운전’은 기본 중에 기본인데, 그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을 했다니. 자기 분에 못 이겨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삿대질 해가며 싸우는 사람이 바로 내 남편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앞으로 이 사람과 함께 차를 타고 갈 때마다 온갖 짜증을 다 들어 주어야 하나? 평소에는 사소한 일에 짜증 한 번 내지 않는 그가, 말다툼을 해도 하루만 지나면 허허허 웃으며 다시 장난을 치며 다가오는 그가, 왜 운전대만 잡으면 쌍욕을 해대는 사람이 되는 걸까. 그냥 웃어 넘길 수도 있는 일에 자신의 기분과 옆에 있는 사람 기분까지 잡치는 그의 운전 습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냉담한 하루를 보냈고 돌고 돌아 그 날의 일을 곱씹으며 서로의 입장을 대변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편은 고백했다. 본인의 행동(새치기)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당연히 알았지만, 내가 다짜고짜 너무 몰아붙이니 실수를 인정하기가 뻘쭘해졌다고. 그 후로 자신도 모르게 여성 운전자 운운하게 되었다고. 모두 본인의 잘못이라는 것을 시인했다. 나도 남편의 고백을 들으니 그 날의 분노가 모두 풀렸다. 새치기가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그가 분명히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안도했다. (실은 정말로 남편이 새치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 바보라고 생각할 까봐 두려웠다. 그의 모든 것을 내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그리고 남편은 또 한 가지 고백을 했다. 본인이 정말 화가 났던 것은 내가 ‘결혼을 잘못했네 마네’ 하던 발언이었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앞의 대화를 모두 까먹을 정도로 크게 화가 났다고 했다. 나는 남편의 운전 습관에 상처를 받았고, 남편은 나의 결혼 후회 발언에 상처를 입은 거였다.
“나는 자기한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나랑 결혼하길 참 잘 했다’야. 어떤 경우라도 ‘결혼해서 불행하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아.”
내가 결혼을 잘못했네라는 발언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 본인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도 해서는 안될 말을 한 것에 대해 깊이 사과 했다. 또한 그에게 변명할 여지도 주지 않고 쏘아붙였던 나의 말투에 대해서도 사과했으며, 잘못을 시인해주어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서로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싸움, 사소한 것으로 시작해서 결국에는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는 싸움, 마음에도 없던 말을 꺼내게 되는 순간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절대 싸우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지만, 싸움 뒤에는 그날의 감정을 해소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는 점만은 좋은 것 같다. 싸울 때만큼은 상대방의 잘못만 있는 것 같은데 결국에는 나에게도 잘못의 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니까. 그 날의 싸움처럼 남편의 결혼에 대한 애정을 알게 되는, 의외의 소득이 있는 부부싸움도 있는 것이다.
(수십 번의 싸움을 끝으로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게 맞춘다. 나는 그가 욕을 내뱉지 않는 이상은 참고, 남편은 짜증을 많이 낸 날에는 카톡으로 “내가 오늘 심했다. 미안해” 문자를 남긴다.)
저번 주의 일이다. 퇴근길에 출발한다는 전화를 받은 지 한 시간 만에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린 거다. 씻고 난 후 소파에 앉은 남편이 입을 연다. “시내 버스 기사가....알짱...보복...앞서거니 뒤서거니....버스 번호판...찍고....”해서 버스 회사에 민원 전화까지 했단다. “방금 xxx 정류장 지나간 oooo 버스 있죠. 보복운전 한 거 블랙박스에 찍혔는데 사과 하세요.”
열혈청춘, 정말 인정이다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