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두 마디의 따스함

by 김윤

어느 여름, 퇴근길이었다. 붉은 해는 산 너머로 흘러가고 있었고, 활짝 연 창문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더위를 식혔다. 남편은 땀으로 몇 번이나 흠뻑 젖어 유난히 기운이 없이 고된 모습이었다.


현장직은 아니었지만 잦은 외근에 여름날이면 땀을 여러 번 흘리는 업무를 하는 남편이 나는 늘 안쓰러웠다. 여름이 시작될 때마다, 올해는 제발 무난한 더위이길, 땡볕의 여름날들이 쏜살같이 지나가기를 남몰래 기도했다. 내리쬐는 무더위에 지친 남편은 시시때때로 점심시간을 놓쳐 사내 식당의 메인 반찬을 못 먹는 날도 많았다. 그런 날이면 계란후라이와 김 한 봉지로 식사를 때웠는데, 땀을 한 바가지로 흘리며 일하는 건장한 남자가 한 끼 식사로 하기엔 도무지 힘이 나지 않을 그런 식사였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작은 불평들이 모여 때때로 큰 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날은 참고 참았던 남편의 불만이 터져버린 날이었다.


나는 그가 회사 일로 힘들 때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힘이 되어주어야 하는지 몰랐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도, 항상 곁에 있으면서도 어떤 방법으로 위로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비슷한 나이대의 같은 직급의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본인의 일이 몇 배로 고된 것 같아서, 더 늦게 취직한 친구들이 자신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런 것들이 얽히고 섥혀서 터져나오는 날이 있다. 게다가 그날은 유독 고약하리만큼 뜨거운 여름날이기도 했다.


속상함을 털어내던 남편은 내가 맞장구를 치며 리액션을 하는 것조차 사치라고 느껴질 정도로 울분을 토해냈다. 그의 힘듦이 전해져와서, 아니 그의 힘듦을 조금도 덜어줄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눈물이 조금 났던 것 같다. 쉽게 그만두라는 권유도, 괜찮아질거라는 흔해빠진 위로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어느덧 차 안에는 라디오 소리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조금 더 붉어진 해를 향해 느린 속도로 달렸다.



탁 트인 풍경, 하늘과 노을, 바다 위의 수평선을 좋아하는 사람. 그중에서도 붉게 타는 노을을 가장 좋아하는 남편. 달리는 차 안에서 우연히 노을을 마주하면 내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일부러 속도를 늦추기도 하는 그이다. 한 번의 노을에 열 번 이상의 감탄하며 아이같이 설레하는 모습은 내가 좋아하는 남편의 모습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날 남편을 위로했던 건, 그의 울분에 같이 울어준 내가 아니라 오후 내내 더위로 힘들게 하더니 집에 갈 때쯤 되어서야 붉게 타올라 준 태양이었던걸까.

“예쁘다, 해”

“그러네”


마음이 조금 풀린 듯한 남편의 손을 지긋하게 잡았다. 기어를 잡고 있던 그의 오른손등을 내 손바닥으로 감쌌다. 그의 뭉툭한 엄지손가락이 내 엄지손가락을 어루만져준다. 이내 곧 손을 빼내더니 내 손등을 가만히 감싸고 다시 엄지손가락으로 내 손을 쓰다듬는다. 두 마디의 손가락이 내 손등에 포개어진 느낌이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하게 느껴졌다. 백 마디의 사랑한다는 말보다 그의 사랑이 훨씬 더 느껴지는, 작지만 큰 사랑. 내일 당장 모든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어쩐지 완벽하게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그를 위로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하지만, 당신이 지금 흘리는 땀방울이, 가슴 속에 맺히는 한이,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날들의 불편함이 언젠가는 당신을 빛나게 할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지는 않을 거라고, 이 시간들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통과하는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손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에게, 부끄러워서 전하지 못한 말을 여기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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