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엔 순대

남편의 사랑법이 좋아

by 김윤

2010년. 5대양 6대주 출신의 남자를 모두 만나보고 결혼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있었다. 어쩌면 국제결혼을 꿈꾸기도 했다. 남미 남자와 연애를 할 때였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이십 대 여성이 으레 그러하듯 나는 자주 떡볶이를 그리워했다. 평생을 rice cake도 구경해보지 못한 peruvian은 물었다. ‘What is 떠포키?’ 세상에, 국제결혼을 한다는 것은 떡볶이가 무엇인지 모르는 남자와 산다는 뜻이구나 새삼스레 깊은 교훈을 얻었더랬다. 곧, 5대양 6대주와 국제결혼은 지우고 한국 남자와의 연애에 주력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2020년. 남편과 방구석 데이트가 있는 토요일 밤. 여전히 떡볶이를 좋아하는 삼십 대 여성이 된 나는 자주 ‘떡볶이 먹을까?’를 묻는다. 일 초의 머뭇거림 없이 ‘진주눈물떡볶이? 떡뱅?’이라 되묻는 남편은 어떤 떡볶이가 끌리는지 선택지를 주고, 떡볶이를 사러 간 김에 순대도 함께 사 온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간, 내장을 푸짐하게 사 오는 것도 결코 잊지 않는다.



“<아이언맨 3> 보다 <Her> 같은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남자였으면 좋겠어요.” 결혼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속 시원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듣는 이는 내 마음을 꿰뚫어 보았다. “군말 없이 Her를 같이 봐주는 사람이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충분이란 단어에는 힘이 실렸다. 결혼을 해서 같이 살게 될 남자는 음악, 연극, 뮤지컬, 미술에 관심이 많고 책도 열심히 읽는 사람이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나는 곧 깨달았다. 결혼생활은 결코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육아가 삶의 중심이 된 생활에서는 더욱 그랬다. 결혼하고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은 무려 ‘곰 세 마리’다.



나의 소울메이트는 누굴까 궁금하던 시절이 있었다. 푸르른 춘삼월 대학을 가게 되면 만나게 되려나? 배낭 메고 여행을 하다 보면 찾을 수 있을까? 홀로 설레기도 했던 것 같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큰 산을 넘어가 보니 이젠 얼핏 알 것도 같다. 소울메이트는 내가 찾아다녀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서서히 서로의 조각을 상대방에게 맞춰가며 부드러운 하모니를 만들고, ‘떡볶이엔 순대’와 같은 별 거 없는 쿵짝이 편안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그 느낌은 아무런 애씀 없이 저절로 피어났다.



그분의 말씀대로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영화를 같이 봐주는 남자를 만난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한 삶을 살고 있다. 남편의 취향은 여전히 <아이언맨 3>이지만 그는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영화를 늘 궁금해하고, 아이를 재워둔 어느 밤 꼭 같이 보자고 한다. ‘조금 지루하긴 하네.’ 할 때도 있지만, 그 말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작품성’은 잘 모르겠지만, ‘나의 관심'이 어디쯤에 있는지 늘 알고 싶어 하는 그의 사랑법이 나는 좋다. 적당한 무심함과 그만큼의 관심이 그와 나 사이를 여유롭게 한다.



출근길 라디오 볼륨은 항상 11로 맞춰져 있다. 10은 아주 조금 작고, 12는 아주 조금 시끄럽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 사실을 아는 단 두 사람은 이번 주 토요일에도 댓거리 진주눈물 떡볶이와 순대를 사서 방구석 데이트를 즐기기로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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