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흥자락
남편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휘파람을 불며 욕실로 들어가고 샤워를 하면서는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가끔은 흥이 차올라 가창력이 폭발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영락없이 웃음이 빵빵 터지고 만다. 분주하지만 고요하게 아침을 보내는 편인 나는 그의 노래가 반갑다. 조용한 집안에서 자란 나는 그와 함께 지내면서 삶에 리듬감이 생긴 기분이다. 노래를 즐기는 그의 일상이 고맙다.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하고 회사에 필요한 것들을 챙긴 후 아이의 준비물과 옷가지 같은 것을 챙겨야 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씻은 후 옷을 갈아입으면 준비 땡이다. (이 일로도 얼마나 긴 싸움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남편에게 아이 준비물을 챙기는 일을 맡기면 양말 하나를 챙겨도 두꺼운 양말, 발목 긴 양말 중 뭘 챙겨야 하는지, 어떤 운동화가 좋을지 끊임없이 묻는 통에 그냥 준비는 내가 하고 짐을 지고 가는 것은 남편이 하는 것으로 역할을 분리했다. 각자가 잘하는 것을 하면 평온하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추가 하자면, 노래를 부르는 것이 그의 아침 일과 중 하나이겠다.
언젠가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남편이 무슨 노래를 부를까 내심 기대를 한다. 그제는 오렌지캬라멜(Orange Caramel)의 <까탈리나(Catallena)>, 어제는 이문세의 <붉은 노을>이었는데, 오늘은 2000년대 노래이려나? 아침에는 주로 신나는 댄스곡을 즐기는 그는 매일 장르, 세대를 불문하는 노래를 선곡하곤 한다. 일관성 없는 선곡이 재미를 더하고, 웃음을 유발한다. 아주 옛날 노래인 것 같은데도 아는 곡이 어찌나 많은지 (내 기준에서는) 쥬크박스가 따로 없다.
한 번은 “아, 회사 가기 싫다.”고 아침부터 떼를 쓰더니만, 갑자기 “학, 학, 학, 학, 학교를 안 갔어!” 량현량하의 <학교를 안 갔어> 노래를 부른다. 아주 적절한 노래가 아닌가 싶어 나는 눈물이 찔끔날만큼 웃어댔다. 그때 그 시절 량현량하가 추던 춤까지 용케도 기억해내 몸을 막 흔든다. 내 곁에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더니 좌우로 몸을 흔들어재끼기도 하고, 손으로 내 입에 마이크를 대주며 같이 부르기를 청하기도 하는, 장난꾸러기 같은 이 사람. 엉겁결에 같이 어깨춤을 추거나 노래라도 부르는 날이면 아침 출근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간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으로 배우자를 기분 좋게 할 줄 아는 그가 가끔은 부럽다. 출근 전 시간을 이토록 즐겁게 보내는 직장인이 어디 또 있을까. 이런 사람과 함께 사는 나는 행운인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고 만다. ‘오, 오늘 노래 좋다’ ‘진짜 잘 부르네’ 나의 칭찬 한 마디면, 어깨를 으쓱대며, 충분히 만족하는 남편.
“자기야, 나는 평생 철이 안 들 것 같은데 괜찮겠어?”
“은채(딸 아이)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도 철없는 아빠면 어떡하지”라며 걱정하는 남편에게 실은 말하고 싶다. 아침마다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고 신나는 노래를 부르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으로 평생 내곁에 있어달고 말이다. 남편이 시작하는 노래를 함께 따라부르며 우리는 하나가 될 것이고, 마주보며 실없이 웃는 것이야말로 우리 가족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것 아닐까. 그 시간은 분명 남편의 더 많은 연봉, 아이의 명문대 입학보다 더욱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 시간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결국엔 우리를 살게 할 것이니깐.
아침을 꼭 먹어야 하는 나와 아침을 먹지 않아도 괜찮은 남편은 간편식으로 먹는 것을 해결한다. 전날 사다 놓은 샌드위치나 빵 그리고 음료를 챙겨서 출근길 차 안에서 먹는다. 건강에 좋지 않은 걸 알면서도 출근 시간을 고려하면 그것은 최선의 방법일 수밖에 없다. 어쩌다 시간이 조금 남으면 집을 나서기 전에 후다닥 계란 후라이를 해서 밥에 비벼먹곤 한다.
언젠가 하루는 내가 “자기야, 오늘 계비(계란 비빔밥의 줄임말) 괜찮지?” 하고 물었는데, 그가 “좋지, 레어로 부탁할게”로 답했다. 계란 후라이를 레어로 부탁하는 식의 남편의 작은 위트는 별 거 아닌 일상에 웃음을 더한다. 계란 굽는 시간 조절에 실패한 나는 “오, 미안해. 계란 미듐 됐어”라고 되받아치고 우리는 별 거 아닌 일로 같이 낄낄댄다.
자, 우리가 함께 노닥거리고 계비를 먹으며 낄낄대고 나면 이제 아이가 깨어난다. 제정신을 차려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거다. 아이가 겉옷을 입고 문을 나설 준비가 완료되면 남편이 외친다.
“Move like jagger!!”
처음 외칠 때는 속으로 ‘쟤가 또 왜 저러나’ 싶었는데 이제는 안 해주면 좀 섭섭하기까지 하다. 출근 직전의 화룡점정 같은 것이 되어버렸으니. Move like jagger은 그가 좋아하는 마룬5(Maroon5)의 유명한 노래 제목이다. 우리는 jagger가 표범이나 치타와 같은 날쌔고 기운 넘치는 동물인 줄만 알았다(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왠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근길에 외치기 정말 적당하고 좋은 문구가 아닌가 싶었다. 그가 아침마다 외치는 통에 궁금해서 찾아보았더니 jagger는 표범도 치타도 아니었다. jagger는 롤링스톤즈의 멤버인 믹 재거(여성편력으로 아주 유명한)를 모델로 했다고. 흠. 그 노래는 믹 재거보다 더 멋지고 더 간지나고 말 것이라는 가사를 담고 있는 곡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간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처럼 간지나게 움직여보자!는 말을 마치 가훈처럼 신나게 외치며 집을 나선 셈이다. 가사의 의미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언제 들어도 자신감이 차오르게 만드는 노래니까 뭐, 좋은 거라 생각하련다.
어느 날, 아이가 아빠의 외침에 스며들었는지 집을 나서기 전 이렇게 외쳤다.
“뭉 락 자거!” 끄응. 무슨 뜻인지는 십 년 뒤에나 가르쳐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