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언택트' 시대가 빨라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요 IT 기업들은 '비대면' 서비스를 더욱 더 강화하고 있다. '언택트'의 시대의 당근마켓은 '중고품 거래'를 넘어 우리 동네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당근마켓의 경쟁사는 중고나라일까, 쿠팡일까. 아니면 당근마켓 스스로일까. 당근마켓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역삼동 당근마켓 사무실에서 김재현 당근마켓 공동대표를 만나봤다.
중고거래 급성장..가장 처음 수혜 본 '중고나라'
중고나라의 한계 '사기'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시대다. 중고품의 '경제성'이 유독 빛을 발하는 요즘이다. 안쓰는 카카오 인형을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앱)에서 5000원에 팔았을 때의 흐뭇함이란. 중고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관련 서비스도 인기를 끌고 있다. 온라인 기반으로 중고품을 거래하는 중고나라, 번개장터, 헬로마켓 등 중고거래 앱이 급성장했다. 먼저 대박난 건 시장을 선점한 '중고나라'였다. 2003년에 네이버 카페로 시작한 중고나라는 2014년 기업으로 전환했다.2016년엔 앱도 출시했다. 회원 수는 2100만 명. 우리나라 사람 절반이 회원인 셈이다. 총 거래액 예상치 3조 5000억 원. 중고 판다고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몸집을 키우며 재활용품 방문 수거 서비스, 공동 구매 서비스, 중고차 거래 서비스까지 진출했다. 투자도 300억 이상 유치했다.
엄청난 기업으로 성장한 중고나라지만 피해갈 수 없는 것도 있었다. '중고나라 사기 당했습니다.' 바로 사기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통계에 따르면 중고거래 인터넷 사기건수는 2014년 5만 6667건에서 2018년 9만 2995건으로 급증했다. 이를 막아보기 위해 2019년 선정한 판매자들에게만 판매 권한을 주는 '평화시장' 서비스를 시작했다. 빅데이터 분석으로 안전거래 패턴을 적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기'는 꾸준히도 중고나라를 찾은 사용자들을 울리고 있다. 이걸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사실 '직거래'다. 중고나라의 경우 전국 기반의 서비스여서 쉽진 않다. 서울 사는 사람이 제주에 가서 직거래 하긴 힘들진 않은가. 지역을 세분화 해 지역별 거래방을 만들어두긴 했지만 범위가 여전히 넓다는 게 한계다.
사이 비집고 들어온 '당근마켓'
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게 '당근마켓'이다. '당신 근처의 마켓'이라는 이름처럼 중고나라가 해결하지 못한 직거래를 가능케 만들었다. 처음부터 전국 규모의 서비스였던 건 아니다. 김재현 대표는 "공동대표 2명이 모두 카카오 출신인데 판교 근처 IT회사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사내 IT 중고품 거래 서비스를 시작했던 게 첫 걸음이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 사용자가 잘 모였냐는 질문에 그는 "잘 안모였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가 보여준 그래프를 보니 굉장히 오랜 시간을 바닥에서 버틴 듯 했다. 김 대표는 "지금은 월간 순 이용자(MAU) 660만까지 올라왔고 월간 게시글 수는 760만 건에 달한다"고 전했다.
당근마켓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동네에서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입하면 끝이 아니다. '동네 인증'이라는 큰 절차가 남아있다. 동네는 반경 '6km'이내로 정해져 있다. 곧 여길 벗어나는 데서 파는 물건은 볼 수도, 볼 필요도 없단 얘기다. 결제도 대부분 현금으로 한다. 택배비나 택배를 포장하는 수고비도 덜 든다. 구매 희망자가 판매자 근처로 물건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동네 이웃에게 파는 것이다 보니 중고나라 이용할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 집에 남는 카카오 인형을 시험 삼아 5000원에 판매해 본 적이 있다. 한 학부모가 그 인형을 쓸 아이를 직접 데려와 사갔다. 판매 후에는 '친절하고 매너가 좋다'는 평가와 더불어 '시간 약속 잘 지킨다','상품 상태가 설명한 것과 같다'라는 평가도 받았다. 내 매너 온도는 36.6도. 매너 온도는 칭찬, 후기, 비매너평가를 종합해 받는 일종의 점수다. 이걸 믿고 다른 사람들이 구매자를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김재현 대표도 당근마켓을 활발히 이용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당근마켓을 쓰냐는 질문에 "얼마 전 둘 데가 마땅치 않아 버리려던 프뢰벨 책장을 팔았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버리려면 돈이 드는 책장을 당근마켓에 올려놨더니 옆 동 아주머니가 카트를 끌고 와 직접 가져갔단다. 그가 판매한 물품을 보니 자전거, 아이폰, 과학상자 등 다양했다. 그는 "가끔 책 같은 걸 '무료나눔'을 할 때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덧붙였다.
당근마켓을 이용해보면 단순히 중고 거래 플랫폼이라기 보다는 중고 쇼핑몰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 당근마켓을 쓰는 지인들은 공통적으로 '싼 게 있나 주기적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물건 종류도 다양하다. 일반적 중고거래 사이트에선 성사되기 어려운 큰 가구, 지역 농산물도 많이 올라온다. 살 게 없어도 백화점 쇼핑하듯 들어가서 보게 되는 이유다. 이를 그대로 반영한 지표가 2018년에 나왔다. 국내 쇼핑 카테고리 앱 중 1인당 방문횟수 및 체류 시간 1위를 달성한 것이다. 지역마다 팔리는 물건 특성도 제각각이다. 김 대표는 "강남은 루이비통, 에르메스, 샤넬, 골프가 인기 검색어"라면서 "제주도는 캠핑, 낚시, 죽전이나 동탄 같이 아이 키우는 젊은 부부가 많은 동네는 냉장고, 책상 등이 인기 검색어로 올라와 있다"고 말했다. 2019년 당근마켓은 중고나라도 못 세운 기록을 세웠다. 쿠팡, 11번가, 위메프 등 잘나가는 온라인 쇼핑앱 사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많이 쓰는 쇼핑앱 순위' 6위를 기록한 것이다. 주목할만한 건 40~50대의 사용률이었다. 김 대표는 "스마트폰이 익숙한 30대 사용자도 많지만 40~50대도 주류 이용자에 속한다"고 이야기했다.
"중고나라에 많은 사기가 당근마켓에도 있지 않냐"는 질문을 던졌다. 김 대표는 "당근마켓은 거래를 하고 나면 거래 후기를 '최고','좋아요','별로에요' 중 하나를 선택해 남길 수 있는데 '별로에요'의 비율이 0.6~0.7% 정도"라고 대답했다. 거래 만족 비율이 높고 사기 비율이 적다는 것이다.
중고 거래에서 '커뮤니티' 기반 지역광고 시장으로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해지는 대목이 있다. '돈은 어떻게 버나'이다. 그는 "아직은 적자라 투자금으로 운영을 하고 있지만(당근마켓은 누적액 기준 480억 원을 투자받았다) 매출은 증가 추세"라고 말했다. 중고품 거래에 수수료를 받지 않는 당근마켓은 '지역광고'시장을 노리고 있다. 지역광고는 창업 때부터 생각했던 모델이란다. 그는 "오프라인에는 온라인화 되지 않은 가치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 가치들을 발견해 온라인화, 모바일화 시키는 걸 목표로 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당근마켓에 현재 돌아가고 있는 광고는 약 2800여 개다. 초등학생 논술 토론교실, 피트니스, 유정란, 토마토즙, 굴비, 산낙지 광고도 있다. 김 대표는 "광고비가 다른 수단에 비해 저렴한 것도 광고가 늘어나는 요인인 것 같다"면서 "가장 최근 광고인 논술 토론교실의 광고비를 예로 들면 3423명에게 광고를 노출시키는 데 든 비용이 3만 9000원 선"이라고 설명했다. 1000명에게 광고를 노출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 1만 원 정도인 셈이다. 예전 같으면 발품을 팔며 '전단지' 광고를 했을 법한 광고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사실 지역 커뮤니티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는 사례가 외국에는 꽤 많다. 김 대표는 "미국의 '크레이그 리스트'라는 서비스만 봐도 지역 커뮤니티로 중고거래, 구인구직, 부동산 등 지역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언택트 시대 당근마켓의 정체성은?
당근마켓에는 현재 55명의 직원이 있다. 그 중 70%가 엔지니어란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 지 물었다. 김 대표는 "당근마켓에는 주류나 동물 거래, 업자 거래, 가품 거래 등과 같이 거래를 금지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서 "이를 판별하는 데 머신러닝을 이용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가 보여준 사진을 보니 '담배'의 경우 사진만 보고 '담배'인 지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실제 있었다. 사람의 눈이 놓치는 것을 기술은 놓치지 않는다. 그는 "의심되는 영역은 투표로 처리하기도 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페이스북도 가끔 'ㅇㅇ가 신지은님일 지도 모르는 사진을 업로드했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통해 사용자들에게 질문하곤 하는데 우리도 그걸 활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빅데이터를 활용해서는 추천을 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관심 있을만한 영상을 추천해주는 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당근마켓도 최근 관심을 가졌던 글이나 조회했던 물품을 가지고 추천을 해준단다. 김 대표는 "모든 걸 추천으로 하진 않고 20% 정도의 개인화가 이뤄졌다"면서 "나머지 80%는 최신순으로 보여지는데 개인화 비율은 점점 더 높여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수많은 IT기업들이 인공지능 등을 활용해 비대면 서비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기술을 활용해 '커뮤니티'를 만든다니. 언택트 시대에 역행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가속화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김 대표에게서 "당근마켓 사용자들은 거래 물건을 문고리에 걸어두는 등 나름의 거래 방법을 찾으며 흔들림 없이 당근마켓을 이용하고 있다"는 대답이 먼저 돌아왔다. 그는 "지역 연결에 대한 비전은 예전부터 가져왔던 가치"라며 " 내가 키우는 강아지를 누군가에 맡길 때 같은 아파트 단지 주민이 맡아주면 안심할 수 있었던 경험을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수많은 IT 플랫폼들이 '전국 단위'의 큰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지만 우리는 다르다"면서 "당근마켓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나와 밀접한 3~4명, 많게는 10명까지 소규모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론 이런 말을 덧붙였다.
"디지털 시대가 가속화 되더라도 사람들 사이의 만남, 커뮤니티의 가치는 더 빛을 발할 것이라고 믿는다."
중고 거래에서 중고 쇼핑몰로, 나아가 커뮤니티 기반의 '지역광고'까지. '비대면' 대신 '대면'을 택한 당근마켓은 어쩌면 새로운 서비스의 지평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디지털 시대에 '언택트' 대신 '콘택트'를 택한 당근마켓의 실험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