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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은 Oct 06. 2020

'에이즈부터 C형간염까지'..노벨생리의학상의 역사

[2020 노벨상] 노벨 생리의학상 편

스웨덴의 화학자 알프레드 노벨. 본인이 만든 ‘다이너마이트’가 전쟁에 쓰이는 데 자책감을 느꼈던 천재 발명가. 그는 세상에 없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유언, 남은 내 재산으로 세상을 발전시킨 사람들에게 상을 주라는 말 덕에 우리는 10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매년 가을 ‘노벨’의 이름을 떠올립니다. 이런 상을 만들어 준 노벨과 지구에 도움이 되는 존재들에게 경의를 표하기도 하고요. 


10월 5일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발표로 노벨상 주간이 시작됐습니다. 수상자 발표는 10월에 하지만 노벨상 수상은 매년 노벨이 세상을 떠난 12월 10일에 이뤄지죠. 그마저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각자 나라에서 받는 모습만 생중계하게 됐지만 요. 올해도 꾸준히 자기 자리에서 인류의 발전과 평화를 위해 애쓴 사람들이 수상하는 모습을 보는 건 언제나 짜릿한 것 같습니다. 


저도 노벨상 주간을 맞아 여러분들께 노벨상 수상자들의 면모와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눠볼까 합니다. 




노벨 생리의학상은 말 그대로 생리학 분야와 의학 분야에 공을 세운 과학자들에게 돌아갑니다. 의학은 좀 익숙한 단어인데 생리학은 조금 생소하죠? 노벨의 유언장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에게 상금을 주라”


생리학은 생물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인 생물학의 일부분입니다. 생물의 모양과 구조에 더 관심을 가지는 세포학이나 조직학, 해부학과 달리 생리학은 생물의 ‘기능’에 좀 더 초점을 둔 학문이죠. 


그 옛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그림, 모든 부분에서의 운동 그림 혹시 보신 적 있나요? 초기 신체 그림은 주로 모양에 중심을 맞춘 해부학 그림이었지만 나중엔 자연 그대로의 모양 대신 기능을 나타내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고 하죠. 생리학자 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던 거죠. 이렇듯 모양보다는 신진대사나 성장, 번식, 적응, 반응 같은 생물체의 기능을 연구하는 건 노벨이 살던 당시 ‘의학’만큼이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지금이야 그 때보다는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만 그 때만 해도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던 생물체 구성요소의 기능들이 많았으니까요. 아마도 노벨은 단지 ‘의학’에 국한되지 말고 생물학의 여러 분야에 대한 업적을 많이 발굴해서 ‘생물’ 자체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우려는 뜻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노벨 생리의학상은 1901년 처음 수상자를 찾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매해,  200명이 넘는 과학자들의 품에 안겼죠. 어쩌면 우리 삶을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준 많은 의학적 진보들이 이 상에 고스란히 담겨있지 않나 싶은데요.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첫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는 독일 출신의 에밀 아돌프 폰 베링었습니다. 

지금이야 백신이 있어 우리나라에선 아예 1987년 이후 환자조차 없는 병이지만요. 호흡기를 통해 전염된 후 인체의 모든 점막에 침범해 미열과 함께 호흡기에 막을 형성하며 심하면 기도 폐쇄 증상까지 일으키는 전염병을 혈청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발견한 공로였습니다. 혈액을 가만히 두면 덩어리인 혈병과 투명한 액체인 혈장으로 나뉘고, 액체인 혈장 속에서 섬유소원을 제거하면 나오는 혈청 속에는 항체가 있죠. 이 혈청을 이용한 치료법은 곧 현대 면역학의 기초가 됐다는 데 아주 큰 의미가 있었죠. 


1902년엔 말라리아가 모기를 통해 전파된다는 걸 최초로 밝힌 영국 과학자 로널드 로스가 수상했고요. 1905년엔 결핵균을 발견한 독일의 로베르트 코흐가, 유산균 요구르트로 유명한 러시아의 일리야 메치니코프도 ‘백혈구가 생체 내의 유해한 세균이나 노화 세포를 먹어 치우는 식세포 작용을 한 것을 발견한 공로’로 190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1923년에는 당뇨병의 원인인 인슐린을 발견한 프레더릭 그랜트 밴팅과 존 제임스 리카드 매클라우드가 수상을 했고요. 



인간은 3대 영양소만 공급해서는 성장할 수 없고 외부로부터 비타민 같은 요소를 공급받아야만 성장이 가능하다는 연구를 하며 크리스티안 에이크만과 프레더릭 가울랜드 홉킨스가 수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에이크만은 피곤할 때 먹는 비타민 B1을 발견한 사람이기도 하죠. 1930년에는 인간의 ABO 혈액형을 발견한, 사실상 수혈이라는 걸 가능하게 한 오스트리아의 카를 란트슈타이너가 수상했습니다. 1945년에는 페니실린의 발견 공로로 알렉산더 플레밍 등 3명이 수상했고요. 1959년엔 세베로 오초아와 아서 콘버그가 RNA와 DNA의 생물학적 합성 메커니즘 발견을 공로로, 1969년엔 바이러스의 복제 기작과 유전적 구조를 발견한 공로로 막스 델브뤼크 외 세 사람이 상을 받습니다. 



그 밖에도 호르몬의 작용 기전, 항체의 화학적 구조, 컴퓨터단층촬영 CT의 개발, 도파민을 발견하고 도파민의 파킨슨병과의 상관관계를 규명한 공로로, MRI의 개발로, 헬리코박터 균 발견과 위염에 미치는 영향,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 바이러스 HPV의 발견,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의 발견, 체외수정기술을 개발해서 시험관 아기 시술을 개발한 공로로, 수상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 서양에서 수상자가 나왔지만 2010년 대에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수상자가 꽤 나왔습니다. 그중 제가 한 번 전해 드리기도 했던 중국의 과학자 투유유는 말라리아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을 발견해 2015년 수상했죠. 그녀는 개똥쑥에서 아르테미시닌을 추출해 말라리아 퇴치에 기여한 네 번째 노벨상이자 중국 첫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었습니다. 과학 부분 노벨상을 수상한 여느 중국 과학자와 달리 박사 학위도 없고, 중국 과학계 최고 권위를 상징하는 원사 칭호도 없고 해외 유학 경험도 없는 이력으로 더 눈길을 끌었었죠.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투유유/출처=위키미디어

일본은 2015년 투유유와 공동 수상한 오무라 사토시 기타사토대 명예 교수를 노벨상 수상자로 배출했죠. 오무라 사토시 교수는 윌리엄 캠벨 미국 드류대 교수와 함께 1979년 ‘아버멕틴’이라는 천연물에서 ‘이버멕틴’이라는 구충제를 만들어 낸 공로를 인정받았었습니다. 그 뒤로 2016년에는 세포 내 손상되거나 불필요한 기관을 분해하고 새로운 단백질과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현상인 오토파지(자가 포식)를 연구한 공로로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 명예교수가 수상했고요. 2018년 수상자 혼조 다스쿠 교토대 의대 명예교수는 면역세포가 종양세포를 공격하는 것을 막는 단백질에 대한 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와중에 발표된 2020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코로나19 치료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분야라 특히 수상 전부터 관심을 많이 끌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를 예측해 온 글로벌 학술정보 분석기관 ‘클래이베이트 애널리틱스’가 20%의 확률로 노벨상을 맞춘다고 하던데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는 명단에서 비껴갔습니다. 당초 클래이베이트는 MHC라 불리는 주조직적합성 복합체 단백칠의 구조와 기능을 밝혀낸 공로로 파멜라 미요르크맨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교수, 잭 스트로밍거 하버드 대학교 명예교수를 유력 수상자로 꼽았었거든요. 


MHC는 요즘 굉장히 뜨거운 분야입니다. 면역과 직접 관련이 있어 코로나 연구 와도 맞닿아 있고요. 이건 크게 1형과 2형으로 구분되는데요. 우리 몸에 바이러스 같은 외부 물질이 침입하면 APC(항원제시세포)라 불리는 세포가 먼저 이 물질을 포식한 뒤 작은 단백질 조각으로 분해하게 되는데요. 잘게 부서진 적군의 조각들을 담아 T 세포가 인식해 공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MHC 2형 단백질의 몫입니다. 백신 개발이나 장기 이식 등 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이기 때문에 이미 1980년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세포 표면구조 MHC를 발견한 공로로 세 명의 과학자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그 밖에 신경 장애의 발병 원인을 규명한 공로로 명단에 오른 후다 조그비 교수나 일본인인 암 연구 권위자 나카무라 유스케도 수상의 영예를 맞지는 못했습니다.  




올해의 수상자들은 ‘C형 간염 바이러스’ HCV를 발견한 공로로 수상을 했습니다. C형 간염은 HCV에 감염됐을 때 신체의 면역반응으로 인해 간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을 의미하는데요. 수혈, 오염된 주사기 재사용, 피어싱, 문신 새기는 과정에서 생기는, 주로 피로 감염이 되는 질환입니다. 이 바이러스는 몸에 들어오면 주로 간에 머물기 때문에 간에 문제가 생기는 거죠. 더 무서운 건 사실 걸리면 증상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쉽게 피로해질 수 있으며 입맛이 없어지고 구역, 구토가 생길 수 있지만 요. 감염자의 70~80%가 무증상이다 보니 발견이 늦어져 치명적인 질환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꽤 높습니다. 매년 전 세계 40만 명이 C형 간염으로 사망하는 아주 무서운 질병이죠.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백신도 없고요. 완치되어도 재감염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물론 최근에 항바이러스제가 개발돼 이걸로 치료하면 대부분 완치가 된다고는 하지만요.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위원회는 2020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미국의 하비 알터(85)와 찰스 라이스(68), 영국의 마이클 휴턴(70) 등 3명을 선정했다고 밝혔는데요.


출처=노벨위원회


하비 알터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출신의 미국 의학자로 이미 1970년대 중반, 수혈 후 전염된 간염의 원인이 A형 간염과 B형 간염이 아님을 입증했었습니다. 침팬지 연구를 통해 새로운 바이러스가 간염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 후 1988년 C형 간염 바이러스을 발견했죠.


마이클 휴턴은 영국의 과학자로 1989년에 C형 간염을 발견했고요. 앞선 1986년에는 D형 간염 유전체를 공동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휴튼은 아직 백신이 없는 C형 간염 바이러스 백신후보물질을 개발해 내년 임상시험을 앞두고 있다고 하네요. 이 기술을 이용해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도 개발 중이라고 합니다. 


찰스 라이스 록펠러 대학교 바이러스학 교수는 1981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황열병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기여하기도 한 바이러스 학자인데요. 이후 주로 C형 간염 바이러스 연구를 해왔다고 합니다. 라이스 교수 역시 올해 7월 네이처지에 인체 감염 코로나 바이러스의 면역 기능에 대한 연구 결과도 발표했을 정도로 활발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 C형 간염 바이러스가 발견이 됐으니 이들의 수상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여전히 활발히 연구 활동을 이어가며 인류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몰두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데요. 내년엔 또 어떤 과학자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곧 노벨 물리학상이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요. 저는 다시 물리학상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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