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만들고 싶은 산문
열 살 무렵 아직 태어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았을 때 시골 뒷산에서 놀다 해 질 녘 집에 들어가는 길에는 종종 커다란 까마귀가 머리 위에 날아다녔다. 정확히는 까-악소리를 내며 나를 인도하는 느낌이었다.
까마귀를 쫓아 달려보면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었다. 까마귀가 나를 지켜보고 있고 나와 보이지 않는 어떤 연결선이 있으며 그것이 나를 가볍게 해 주고 놀랍도록 빠르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손을 날개처럼 활짝 펴서 달리다 보면 날아다닌다는 기분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분명 여린 가슴의 기분도 함께 날아올랐다.
까마귀와 함께 비행하게 된 뒤로 나는 자주 1층 옥상에서 옆 낮은 언덕으로 뛰어내렸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옥상계단으로 뛰어올라가 난간에 서서 날갯짓을 하며 아기새처럼 날아오르는 연습을 했다. 어른들에게는 남자애의 위험천만한 추락이었겠지만 나는 까마귀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시시해질 때쯤 도시로 전학을 왔다. 도시에서는 까마귀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계속 날고 싶었다. 낮은 옥상만 보이면 뛰어내리고 오르기를 반복하고 놀이터의 미끄럼틀은 미끄러 내려오지 않고 옆으로 뛰어내렸다.
5학년이 되어서야 음악을 듣기 시작하고 책을 손에 잡으면서 뛰어내리는 것이 잦아들었다. 그때부터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동물과 자연과 나의 직관적인 연결의 세계에서 책과 음악은 상상과 잡히지 않는 몽상의 무한 세계를 열어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늘을 나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하늘은 나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꿈속에서도 정신을 집중하면 몸이 떠오른다는 사실을 점차 익혀나갔다. 꿈속에서는 추락하더라도 계단을 오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저 몸이 가벼워지는 상상을 하면 얼마든지 날아올랐다. 꿈속에서도 이질적이라 생각되어 있는지 사람들에게는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레 비행했다.
높게 올랐을 땐 낮은 구름 높이까지도 오를 수 있었다. 집중이 잘 되는 꿈 속에서는 오래 날았고 떨어져도 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지각하고 있었으므로 바로 다시 날아오를 수 있었으며 불안한 날에는 날아오르면 금세 떨어지곤 했다. 다시 날아오르는 데에도 무척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른들은 내 꿈을 듣고선 키가 크는 꿈이라 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은 누구나 한 번씩 꾸는 꿈이며 성장기에 키가 크느라 꾸는 꿈이라고, 네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걱정하지 말아라고, 별일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그때 몇 번의 까마귀와의 연결이 내 인생에 면면히 지속되고 있고 나는 언젠가 하늘로 돌아갈 것이고 그때 내 영혼을 까마귀가 인도해 줄 것이라고.
그 까마귀를 다시 만나게 될 때,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웠고 덕분에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으며 다시 만나게 되어 진심으로 반갑다고, 이제 나의 별로 인도해 달라고 말할 것이다.
202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