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무한수
과거는 정해져 있는 일이기 때문에 단수이다.
하지만 그것은 머릿속에서만 기억이라는 형태로 의식이 작동할 동안만 재생시킬 수 있다. 현재 상태에도 영향을 심하게 받는 형태의 불완전한 영상이다. 얼마든지 조작 가능한 상태이고 팩트가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도 팩트란 존재하지 않는 기억 속 흐릿하기도 하고 또렷해지기도 하는 찻잔에 티백을 넣었다가 메뉴얼대로 1~2분이내에 빼지 못하고 쓴물이 흠뻑 나오고 나서야 빼내는 나의 부정확성과 닮아 있다.
예를 들어 10년 전의 나를 떠올려 볼 때 불려 오는 나의 모습은 지금 현재의 나라는 존재의 기분과 태도와 건강 상태와 재력 사회적 영향력과 심지어 수면욕, 식욕, 성욕 등 모든 요소가 강력하게 현현한 상태에서 불려 오게 되어있다. 말하자면 지금 살짝 춥고 졸리고 허기진 상태의 내가 불러오는 10년 전 내 모습과 내일 충분히 잠을 자고 아침밥을 먹은 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향기로운 차 한잔 하며 떠올리는 10년 전 나의 모습은 지금 떠올리는 10년 전 나는 오만팔천퍼센트 다를 것이다.
고정된 10년 전 모습은 존재했지만, 남아있지 않는다.
그렇다면 10년 전 모습은 재구성할 수 있다. (무야호!) 그렇다고 내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을 거짓으로 왜곡하자는 것은 아니다. 가지고 있던 기억의 단점과 장점, 우울한 면과 밝은 면을 한번 쭉 머릿속으로 나열해 본 다음 장점과 밝은 면들의 기억을 더 확대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들에 MSG를 조금 첨가한다. 이렇게 되면 과거의 내 모습이 더 그럴싸해지고 더 나은 나였던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된다. 그럼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볼까?
내 현존의 모든 것들이 10년 전의 나에게 일부 투영되었다가 10년 전 모습에 약간 각색을 했더니 지금 내 기분이 나아졌다. 그리고 그런 좀 더 나은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나에게 장착했더니 현재의 나도 좀 더 단단해진 느낌이 든다.
과거를 동영상이나 사진과 같이 정확히 밝혀낼 수는 있지만 결국 그것의 상황을 해석하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나의 정서적 태도의 근육이 얼마나 튼튼한지에 따라 과거의 내 모습들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근육들은 천천히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방법은 현재를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현재의 나를 차분히 분석해 본다. 오직 현재 순간만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픈 데 없는지 바디체크 해보고 내가 서 있거나 앉아있는 곳은 안전한지 확인한다. 그리고 공기가 문제가 없는지, 심호흡 몇 번으로 확인하고 모든 것이 괜찮다고 생각된다면 행복하여질 준비가 된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니! (무야호)
이렇게 자주 내 현재, 안전을 분석해 본다. 그다음 단계는 좀 전에 해봤던 과거의 내 모습에 행복의 MSG를 뿌려보는 것이다. 처음엔 작업하기 쉬운 괜찮은 기억이나 행복한 기억을 불러온다. 몇 번의 시도로 즐거운 추억 놀이(?)가 되었다면 슬슬 우울했던 기억이나 힘들었던 시절 내 모습, 찌질했던 내 모습을 불러본다. 너무 힘들면 다시 행복했던 기억으로 돌아가도 좋다.
이렇게 과거 내 모습을 바꾸어 보면 현재가 달라지기 때문에 미래는 복수가 된다. 얼마나 내가 과거를 적절히 잘 바꾸었냐에 따라 미래가 바뀌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현재를 바꾸어야 미래가 바뀐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재는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는 현재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바꾸는 것은 과거 기억 속의 내 모습이어야 한다. 그래야 복수로 존재하는 미래의 내 모습이 더 다양하게 바뀌는 것이다.
이제 끝없는 가능성을 열고 싶다면 과거를 바꿔보자. 진정 나다운, 내가 만들어가는 나의 세계로 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단수인 과거를 여러 빛깔의 찬란한 복수로 바꾸는 것이다.
2025.03.21. 메타보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