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물결
간판에 TeaBar라고 적혀 있지만 대부분 관광객들은(산속 관광단지임) 커피를 찾으신다.
예약하지 않고 그냥 방문하시는 분들은 90%의 확률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메뉴판에서 찾다가
드립커피를 보고 그냥 커피 2잔 주세요라고 주문하신다.
찻집이라고 차만 고집할 필요도 없고 나 역시 커피를 워낙 좋아하기에 드립용 커피원두(케냐 피베리)와 그라인더를 갖춰놓고 있다 거기에 약간의 치트키라고 쓰고 킥이라고 읽는 오렌지필을 첨가해 드립 한다.
머그컵이 아닌 홍차 찻잔에 서버와 함께 나가는 드립커피는 오감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커피가 맛있어서 찾아주시는 것이면 참 좋은데
대부분 관성이다.
나와서 마시는 것이 커피였기 때문에
맛있는 차를 마셔본 경험이 부재하기 때문에
굳이 녹차 같은 쓰고 떫고 밍밍한 음료에 손이 가지 않는 것이다.
대단히 아쉬운 부분이다.
차도 커피만큼 맛있다. 가끔 훨씬 나을 때가 많다.
뭐가 더 좋다는 게 아니다. 때에 따라 다르고 이것도 충분히 환장할 수도 있을 만큼 좋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까지 1000여 개의 찻집을 가지고 있던 세계 정상급 차문화가
안타깝게 조선시대에 와서 숭유억불정책과 맞물려 사찰이 산속으로 들어가면서 찻집도 함께 사라져 갔다.
소수의 학자 들와 승려들만이 차를 찾고 마시는 소수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 되어버렸다.
그 뒤로 해방 후 고속 성장을 하면서 차 문화가 전무한 대한민국에는 커피문화가 자연스레
열심히 빨리빨리 일하는 사람들의 문화와 에너지에 부합하여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반대로 서양에서는 청소년부터 늘 마시던 술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국에서 수입한 차(TEA)로
문화적 전환을 하면서 자본주의가 꽃피우기 시작한다.
아편전쟁 후 무역 적자에서 근본적인 해법으로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의 다즐링에서 차를 생산에 성공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노동자들도 차를 대량으로 마실 수 있게 된다.
술 대신 맑은 정신으로 노동을 하니 토의도 잘 되고 생산율은 급증하게 된다.
현재 커피는 제4의 물결 세대를 맞고 있다.
제1의 물결은 20세기 초중반에 커피의 대중화와 보급에 초점을 두고
멕스웰하우스와 같은 인스턴트커피가 주를 이루고 한국에서는 맥심 다방커피로 정점을 찍었다.
핵심은 품질보단 양과 접근성이었다.
제2의 물결은 1970년대부터 2000년까지의 세대로
스타벅스가 등장하고 카페베네등 프랜차이즈의 전문 브랜드의 에스프레소 중심의 커피숍 문화가 퍼져나갔다.
커피를 경험하려는 세대의 등장으로 커피의 산지가 되는 국가 이름(케냐)이 카페 이름이 될 정도로 산지에 대한 관심이 커져나갔다. 어떤 카페를 가봤냐로 문화적 경험과 유행을 평가하기 좋은 시대였다.
제3의 물결은 2000부터 2020년 정도로
바리스타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커핑이라는 용어가 생기고 커피를 와인과 같은 선상에 두고 관능평가를 하는 시대가 왔다. 진지하게 커피를 탐구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커피를 배우기 시작하고
커피 생산지뿐만 아니라 로스팅 방법과 블랜딩 비율 그리고 브루잉(추출) 방식까지 커피 한잔에 스토리가 담기기 시작했다.
바리스타는 이 제3의 물결의 중심에서 단순 서버나 접객원이 아닌 커피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커피 장인으로 인정받았고 커피에 공정무역이나 환경윤리등의 다양한 요소가 함께 들어왔다.
이제 커피의 제4의 물결이 시작되었다.
2020년 팬데믹 이후 커피 탐구는 감성적인 영역을 넘어 과학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최적의 맛을 찾는 탐구는 전문가의 영역으로 진화하였고
커핑을 하는 모습은 이제 마치 실험실에서 연금술을 하는 듯 보일 정도이다.
특이점이 온 AI와 로봇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로스팅과 추출의 고성능화 고품질화가 촉진되었고 유통이 투명해졌다.
소수가 즐기던 고품질의 커피가 이제 진정 대중화 되었다고 볼 수 있는 시점이 되었고
커피 교육과 원두 구독 문화가 확산되어 점점 더 개인화된 맞춤형 커피가 제공되고 있다.
개인의 DNA, 미각 프로파일링을 통해 개인에게 최적화된 원두가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직접 연결되어 거래된다.
결국 내 취향을 완벽하게 이해한 커피를 제공하는 로스팅하우스를 찾는 소비자가 생겼다는 말이다.
나는 차도 이런 길을 똑같이 걷고 있다고 본다.
다행히도 대한민국의 차 소비량은 매년 늘고 있다. 특히 MZ세대의 차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다.
(M 밀레니얼보다는 Z세대가 더 관심이 있다)
각종 차 박람회에 가보면 예전과 다르게 20-30대의 방문이 특히 확연히 늘어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단체보다 개인이 더 중요해진 시대에 기업의 생산성보다 개인의 마음과 감성이 더 중요해진 이 시기에
시기적절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커피의 제3의 물결에 해당하는 주인공 바리스타처럼 찻집의 바리스타 = 팽주(물 끓이는 사람이라는 뜻)가 차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점이다.
차에 대해서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2-3시간을 마시는 내내 새로운 경험에 놀라워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소비자들이 찻집에 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커피에 비해서 대략 10년 정도의 차이가 보이지만 벌써 제4의 물결에 해당하는 개인화된 차의 제공에 그리고 과학적인 차의 제공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찻집 사장님들이 늘고 있다.
언젠가는 커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문화적인 힘을 갖고
많은 사람들이 커피만큼 차에 대한 경험도 즐기며 찾을 수 있는 세대를 기다려본다.
아메리카노 2잔이요 대신
"여기 15년 정도 숙성된 보이차 생차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