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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ael Jul 04. 2024

균열 Rift

'용'을 살해하는 법

'호빗'과 '니벨룽겐의 반지' 신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외롭기 짝이 없는 저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정신이 사자로 변하는 것이다. 정신이 자유를 쟁취하여 그 자신의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그리하여 그가 섬겨온 마지막 주인을 찾아 나선다.
  그는 그 주인에게 그리고 그가 믿어온 마지막 신에게 대적하려 하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저 거대한 용과 일전을 벌이려 한다.
  정신이 더 이상 주인, 그리고 신이라고 부르기를 마다하는 그 거대한 용의 정체는 무엇인가?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가 그 거대한 용의 이름이다. 그러나 사자의 정신은 "나는 하고자 한다"라고 말한다.
  비늘 짐승은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가 정신이 가는 길을  금빛을 번쩍이며 가로막는다. 그 비늘 하나하나에는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명령이 금빛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39~40 -      
                                    

  니체가 비유한 대목을 사랑한다. 정신이 자신에게 부과된 짐을 감당하는 '낙타'의 모습에서 '사자'로 변신하는 대목이다. '자유'를 위해. 자유를 가로막았던 것은 용이다.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가 주문처럼 들린다. 이 주문에 옭아매 여진 이는 묵묵히 하고 만다. 그리고 강철 같은 비늘 하나하나에 이 주문이 각인됐다. 거역하기 힘들다. 이 같은 장면은 여러 작품과 현대 콘텐츠에서 차용된다. 용의 비늘 Dragon skin은 단단함을 표상한다. 상상 이상의 단단함. 아래는 『호빗』에서 빌보가 실수로 내뱉은 '복수'에 용이 긁히자, 사납게 자신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산 아래 왕은 죽었는데, 그가 죽은 곳에 감히 복수를 찾아? 데일의 영주는 죽고, 양 떼에 있는 늑대처럼 그의 백성들을 먹어치웠다. (중략) 내 가죽은 열 겹의 방패와 같고, 이빨은 칼날이며, 발톱은 창날이자 꼬리는 벼락이요, 날개는 폭풍 그리고 내 숨결은 죽음이다!"
                                           
                                           -『호빗』 p. 226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클래식) 속 나의 업적창. '용 사냥꾼' 칭호는 얻기 쉽지 않다!


그런데 빌보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내 모습을 봐라!" 용이 말했다. "소감이 어떤가?"
"눈부시고 경이롭습니다! 완벽하고 결점이 없다니, 믿을 수 없군요!" 빌보가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멍청한 늙다리 같군! 민달팽이처럼 왼쪽 가슴의 움푹 파인 곳은 왜 덧댄 거야!'

- 『호빗』 p.227 -


  이후 용의 포효에 부리나케 도망쳐온 빌보는 자신의 실수를 탓하며, 드워프 일행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전한다. 그런데 근처에 있던 갈까마귀가 이 소식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그리고 호수 마을로 곧장 날아가, 스마우그를 홀로 상대하는 바르드에게 스마우그의 약점을 전한다. 데일의 영주의 후손인 그는 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며, 명사수다.

  동료들은 그를 떠나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한 발을 위해 활을 구부렸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그의 어깨로 무언가가 펄럭거렸다. 그것은 늙은 갈까마귀였다. 갈까마귀는 그의 귀 옆에 앉은 채,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그는 놀랍게도 갈까마귀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데일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호빗』 p.250 -


  그리하여 바르드는 남은 화살을 용의 왼쪽 가슴에 박아 용을 죽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일련의 이야기가 『니벨룽겐의 반지』 신화 중 지크프리트 Siegfried이야기에 유사하게 나온다. 용의 불사성, 새가 전하는 비밀, 그리고 강한 존재마저 결코 피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결점 하나.


https://www.youtube.com/watch?v=EIN67vwQywo <- 영화, '니벨룽겐 이야기' 영상[이미지 출처] *한국어로 번역하여 올려주심에 무한한 감사를 전합니다.

명검 '노퉁'으로 용 '파프니르'를 살해한 지크프리트, 그리고 그 피를 맛보는 장면.
용의 피를 맛보고 나서 얻은 능력
새가 전하는 꿀팁을 알아듣게 된 지크프리트
용의 피로 목욕하려 하자, 그의 왼쪽 등에 붙은 오동나무 잎. 저 자리가 '아킬레스건'이 된다. 잎은 테티스의 손이 되어버렸다.

  니체가 언급한 바, 용을 죽인다는 것은 자유를 의미한다. 지크프리트는 용을 살해함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이 무궁해졌다. 바르드도 데일의 영주로서 귀환한다. 이처럼 용을 죽인다는 것은 성장이요, 자유를 되찾음이다. 용을 죽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균열을 찾아내는 것. 단절된 세계일지라도 뚫리는 순간, 두 영역은 연결되고, 한 차원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지크프리트 Siegfried의 이름은 독일어다. 직관적으로 Sieg와 fried를 따로 검색해서 뜻을 알아보고 싶었는데, 기가 막혔다! 이 우연성이란!

  지크프리트는 Siegfried 승리와 평화(frieden)의 합성어인 걸까. 용에게 승리하면 세계의 평화는 물론, 내면의 평화가 온다. 자유롭다고 느낀다면 평화가 온다. 자유를 가로막는 용을 죽일 균열은 도처에 찾을 수 있다. 니체의 '사자'로 화하든, 빌보의 남다른 '재치'든, 지크프리트의 명검 '노퉁'이든 우리가 가진 열쇠로 열어젖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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