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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ael Jul 12. 2024

『삼체』로 떠드는 『주역』이야기

『주역』의 특징에 관하여

*SF소설,『삼체』관한 스포일러가 있을 있습니다.


  삼체三體.  질량이 있는 두 항성의 운동은 예측할 수 있지만, 세 개가 되는 순간 예측할 수 없다. 드라마, 『삼체』에서는 세 개의 태양이 공존하는 항성계가 존재한다. 태양의 운동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세 개의 태양이 동시에 뜬다면 불지옥이 실현된다. 때로는 행성이 세 개의 태양으로부터 멀어질 때면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삼체계에 문명을 이룩한 삼체인들은 가늠되지 않는 태양들의 횡포에 수없이 쓸려간다.


  드라마 『삼체』의 주인공은 삼체인들이 구상한 가상 게임을 통해, 행성의 항세기와 난세기를 예측하는 게임으로 이야기를 꾸민다. 게임 속에서는 고대 중국, 주나라의 영주가 『주역』을 이용하여 항세기와 난세기를 가늠하는 장면이 있다. 『주역』은 주나라의 역易경이라는 뜻으로, 삼라만상의 변화를 음과 양을 통해 서술한 책이다.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장면은 신비주의에 입각한 점술의 한계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듯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의 장면들

양陽은 이처럼 'ㅡ' 그린다.
음陰은 이처럼 '- -' 그린다.
주인공은 뛰어난 물리학자인데,『주역』의 이름을 아는 것이 놀랍다!
'ㅡ'과 '- -'를 조합하여 만든 64괘

그러고 나서 이어지는 장면은 영주가 계시를 받은 것처럼 특정 상황을 구체적으로 예측한다.

과연 결과는..?

  고대 중국에서의 주역의 위상을 고려했을 때, 위와 같은 장면은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주역에 적힌 내용으로만 보자면 해당 장면을 구현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찾기 어렵다. 첫째, 상징과 비유가 많다. 주역 64괘 중 첫 괘인 '건乾'괘의 첫 효사爻辭는 '잠룡潛龍, 물용勿用'이다. 즉 '어린 용은 때가 아니니 쓰지 말라'는 것이다. 이 한 문장을 가지고 나에게 처한 상황을 돌아보고 미루어 짐작해 볼 뿐, 텍스트가 나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정하지 않는다. (필자는 『주역』을 애정으로 읽는 사람으로서, 특정 미래를 점지하는 시도는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둘째, 효사爻辭에는 함축적인 판단이 적혀있다. 상황 판단의 표현으로서 자주 등장하는 글자들은 형亨, 길吉, 흉凶, 회悔, 인吝 등이 있는데, 한자의 뜻 그대로의 상황만을 암시할 뿐이다. 즉 효사에 등장하는 각 글자가 함축적이라 세세한 상황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애매하고 상징이 많아 현대인들에게 난해할 수 있는, 수천 년 전 텍스트가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주역독해』의 저자, 강기진 님이 인용한 대목을 적어본다.



길흉과 후회, 인색함은 행동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吉凶悔吝者, 生乎動者也.'

강기진, 『주역독해 상편』 서문에서 『계사하전』 1장 인용 p. 14


 양자물리학의 기초를 확립한 닐스 보어는, 물리적 세계에서 대립하는 두 성질이 사실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이를 상보성(相補性, Complement)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를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이다. Contraria Sunt Complementa."라는 문구로 집약해서 표현했다.

강기진, 『주역독해 상편』p. 82


  길흉회린은 '행동'에서 기인한다. 주역에 대한 환상과는 상반되게 지극히 현실적이다. 또 닐스 보어가 천명한 바, 양자역학이 그러한 것처럼 주역의 텍스트도 변증적인 세상 원리를 묘사한다. 주역을 쓴 고대인들이 양이 가득한 '건'괘 다음으로 음이 가득한 '곤'괘를 배치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감히 짐작해 본다면, 인생과 자연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짐작해 볼 수 있겠다. 달이 차면 기울고, 해 뜨기 전 새벽이 제일 추운 것처럼.

 

  이처럼 주역은 지혜를 주는 우물이다. 점을 치는 방법을 찾아서 미래를 점지할 수 있겠지만, 주역이 주는 매력과 신비는 독자에게 자신과 주변을 살뜰히 살필 수 있는 계기를 텍스트를 통해 선물하는 데 있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면, 삼체인이 살고 있는 행성은 난세기와 항세기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들이 사는 세계와 우리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우리 역시 인생의 황금기와 쇠락기를 예측할 수 없다. 차이점이라면, 삼체인들은 예측이 틀리는 순간 문명이 사라지지만, (작중에서는 특정 방법을 통해 삼체인이 문명을 이어왔고, 그 수준이 지구의 과학 수준을 웃도는 설정이다.) 우리들은 그 파멸성이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안하다. 그래서 고대 중국인들은 '음과 양'으로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려고 했고, 현대인들은 컴퓨터를 만들어 '0과 1'로 자신에게 주어진 세상을 이해한다.

삼체인이 구상한 게임 속 3단계 모습. 3천만 명으로 구성한 인간 컴퓨터. 흑과 백으로 0과 1을 표시했다.

  주역의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텍스트와 이미지가 병존한다. '글은 말을 다 담지 못하고, 말은 그 뜻을 다 담지 못한다. 書不盡言, 言不盡意.' 언어의 한계를 적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주역의 서두에 그대로 적혀있다. 그리고 이 한계를 보완한 방법이 64개의 '괘'의 모습이다. 바로 여기에서 주역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괘의 이미지와 텍스트, 그리고 64괘의 순서가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에서.


  공자께서는 주역의 오묘함에 탄복하며 수없이 읽은 나머지, '죽간을 잇는 가죽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韋編三絶.'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주역이 주는 지혜와 신비가 실로 바다와 같다. 그 깊이를 헤아릴 수도 없고, 해석도 사람마다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헤겔은 '요한복음 12장 24~26절을 나의 성경'이라 했다. 한 문장으로 사람을 전율하게 다. 주역이 주는 지혜 중 단 하나로 나를 둘러싼 세계에 투영한다면, 세상을 마주할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감히 확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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