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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화 작가 Aug 17. 2022

7. 과연 반전이 가능할까


  내가 들어온 306보충대는 육군 3군에 소속돼 있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대체로 경기도 일대와 서부 전선 위치한 부대로 보내질 가능성이 높았다. 어쩌면 수도권 부대에 배치돼 외출이나 외박 시 학교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가장 기대한 게 있었는데, 사실 난 입대하기 전에 군자녀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다. 부모와 따로 떨어져 다른 지역에서 취학하는 군인 자녀들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아무래도 직업 군인들은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갑작스레 이사를 해야 할 때가 많기에, 기본적인 주거와 자녀들의 학업에 문제를 겪는 일이 많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전국 몇 군데에 군자녀 기숙사가 운영되고 있다. 내 경우 아버지께서 오랜 시간 군 생활을 하셨고, 학교를 위해 나 혼자 서울로 올라왔기에 고맙게도 군자녀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다만 내가 있던 곳은 교통이 좋지 않았다. 도시 외곽의 군 시설들 근처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는 1시간에 한 대만 운영했다. 그것마저 다른 버스에 비해 일찍 끊겼고, 종종 일정이 변경돼 정류소에서 마냥 기다리다가 시간만 허비하기도 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등하교, 출퇴근 시간을 중심으로 근처 군부대에서 미니버스를 운영해 줬다. 지하철 역까지만 태워주는 셔틀버스다.



  그럼 이 미니버스는 누가 모는가? 그렇다! 운전병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운전병이 되었단 말이다.

이 미니버스를 모는 게 뭐가 좋은가? 미니버스를 운전한 분이 실제로 어떤 군생활을 했는지, 내무반 분위기는 어땠는지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민간인을 태우는 셔틀버스를 운전하는 게 운전병으로서는 매력적인 일인지도 알 수 없었다. 사실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이 모든 불확실성을 다 뒤엎고도 충분한 매력 포인트가 있었다. 여자 친구다.



  당시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 친구도 같은 군자녀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매일 아침 똑같은 셔틀버스를 타다가 모종의 사건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러다 친분이 쌓여 사귀게 된 것이다.



  내가 만약 이 셔틀버스를 모는 운전병이 된다면? 허허허. 아니, 그래. 이것까진 진짜 욕심이라고 치자. 그런데 만약 나와 여자 친구가 살던 군자녀 기숙사 근처의 부대에 배치되기라도 할 수 있다면? 난 정말 기존의 내 마음을 모조리 뒤엎고 최선을 다해 기름내나는 자동차까지 사랑할 자신이 있었다.



  “OOO포병대대."

  "5톤 트럭 운전병!”



  허허. 아무래도 내 사랑이 필요 없었나 보다. 내가 살던 군자녀 기숙사보다 더 버스가 안 오는 전방의 포병부대로 배치됐다.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내가 주로 태우는 건 여자 친구가 아니라 돌덩이, 나무, 모래, 진지 구축에 필요한 물자들, 그리고 개당 쌀 2포대 무개의 쇳덩이 포탄들이었다. 



  이들은 문 열어줬다고 알아서 타는 존재들도 아니었다. 누군가 옮겨줘야 했다. 그 누군가는 당연히 사람이었고, 그 사람에 나는 당연히 포함되었다. 운전병은 운전만 하지 않을까? 그럴 리가. 여긴 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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