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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화 작가 Aug 17. 2022

11. 군인의 스타일링에 대하여


  ‘하면서 배운다’는 마인드는 개인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선? 머리를 깎으러 갔는데 생전 남의 머리를 단 한 번도 깎아 본 적이 없는 이발사, 미용사가 잔뜩 긴장한 채 기다리고 있다면? 나라면 돌아간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여긴 군대다.



  물론 사전 교육 기간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전 교육이 곧 실습이자 실전인 게 문제다. 지체 높은 상병이나 병장들은 당연히 나에게 소중한 머리카락을 맡기지 않았다. 나와 같은 이등병이나 일병이 희생양이었다.



  밖에서 봤을 땐 그냥 전부다 까까머리지만, 나름 이 안에서도 스타일이라는 게 있다. 없는 구레나룻을 남겨달라거나, 숱만 쳐달라는 경우, 상하좌우 정확한 길이를 맞춰달라는 경우도 있다. 군인 모자를 썼을 때 보이는 부분만 짧게 잘라달라는 경우도 있고, 아예 부위별 몇 mm로 다듬어달라는 디테일한 요구사항도 있다. 스타일을 낼 게 짧은 머리카락과 전투복 칼주름, 전투화 광택뿐이기에 오히려 더 민감한지도 모른다.



  어쨌든 군인의 마음을 알기에 나로선 최대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내 첫 손님은 당시 일병이었던 선임이었다. 실력은 없어도 마음만은 장인 정신을 탑재했다. 0,1mm 단위로 온 몸의 감각을 집중하며 야금야금 잘라냈다. 이발병 선임이 세네 명을 처리할 동안 난 오로지 이 한 명의 손님에 집중했다.



  그리곤 완성했다. 바보 머리를. 나의 진실된 마음과 온 힘을 쏟은 정성과 달리 일병 선임의 머리는 휴가를 나가선 안 될 머리였다. 너무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내게 그 선임은 ‘괜찮아. 어차피 한동안 나갈 일도 없어’라며 웃어줬다.



  그때의 고마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선임은 나와 나이가 같아 전역 후에는 친구로 지냈는데, 고마운 마음을 담아 다시 머리 한 번 잘라주겠다고 하면 큰일 나겠지? 아, 문득 기억이 난다. 그 선임을 밖에서 만나기로 한 어느 날, 그가 가발을 쓰고 왔음을. 그렇게 머리에 신경 쓰는 사람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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