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안다. 어쩌면 욕먹을 짓인지도 모른다는 걸. 그럼에도 그냥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 스스로 해보지도 않고 안 되겠거니 포기하기보다는 일단 물어라도 보고 결과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일단 그렇게라도 하면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라도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했다.
보고 체계는 지켜야 한다. 먼저 조심스럽게 분대장님에게 말씀을 드렸다. 연등 제도가 있다는 걸 확인했고 이를 하고 싶은 데 혹시 가능하겠는지 말이다. 당시 우리 분대장은 일단 분대장이긴 하지만 전체 포대로 봤을 땐 서열이 꽤 낮은 편이었다. 내가 처음 이등병으로 왔을 때 아직 상병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따라서 아무리 자기 분대원이라도 이런 이등병의 요구를 들어주기가, 이런 목소리를 위로 전달해주기가 조금은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의 선임인 병장들에게 ‘야! 너희 이등병은 밤에 안 자고 뭐하냐?’라고 한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니까.
며칠 후, 분대장은 나에게 말했다.
“당직 사관님께 허락을 맡고 통제를 잘 따른다면 연등을 해도 좋다.”
물론 100% 가능하다는 건 아니었다. 매일 부대 상황도 다르고 당직 사관도 바뀌었기에, 매번 그날의 당직 사관님께 직접 찾아가 연등을 해도 되는지 허락을 구해야 했다. 당직 사관으로선 이등병이 왜 연등을 하려고 하는지, 연등을 해서는 구체적으로 뭘 하려는 건지 물어볼 수밖에 없다. 혹시 모를 사건이라도 발생하면 그건 전적으로 자기 책임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난 미리 준비해 놓은 책과 공부할 것들을 보여드리며 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말씀드렸다. 결코 이상한 짓을 하려는 게 아님을 계획과 실천으로 증명했다. 당연히 평소 일과에도 열심히 임하며 나의 신뢰도를 스스로 높여야 했다. 권리와 혜택에는 그만큼 책임이 따르는 게 세상 이치다.
감사하게도 이런 내 뜻을 받아들여주시는 분들이 계셨고, 덕분에 난 황금 같은 연등시간을 얻어 책도 읽고 개인적인 공부도 하고, 각종 검열이나 평가에 필요한 지식도 외울 수 있었다.
군대. 어쩌면 여기도 그렇게 꽉 막히기만한 곳은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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