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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화 작가 Feb 18. 2024

어르신은 왜 길가에 버려진 고추장 통을 뒤졌을까


 동네 마트에서 장을 봤다. 장이라고 해봤자 그저 간단한 먹을거리 몇 개다. 봉다리 하나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오다 길을 틀었다. 빵집에 들러야 하기 때문이다. 개업을 할 때부터 지켜봤던 조그마한 동네 빵집인데, 젊은 사장님이 건강한 빵을 판다. 내가 주로 사는 건 바게트, 치아바타처럼 담백하게 발효된 빵이다. 언제부턴가 화려하지 않은 이런 빵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새 젊은 사장님은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주구창창 비슷한 빵을 사니 그렇지 않을까 싶다. 반갑지만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오늘도 어김없이 담백한 빵 몇 가지를 구입했다. 그렇게 주문한 빵을 건네받는 순간, 사장님은 비치된 빵 하나를 새로 가져오더니 봉투에 함께 담아 주었다. 자주 찾아주어 고맙다고 말이다.



 사실 처음은 아니었다. 빵집 사장님이 무언가를 더 챙겨준 게 말이다. 아무리 물건을 사고파는 관계라지만, 그래도 올라오는 감사한 마음에 뭐라도 하나 표현하고 싶었다. 동네 마트에서 가져온 봉다리를 뒤져 방금 전에 구입한 시원한 비타민 음료를 건네드렸다. 안 쪽에서 열심히 빵을 만들고 있는 직원분의 몫도 챙겨서 말이다.



 빵집 사장님은 안 주셔도 된다고 사양했지만, 감사한 마음에 드리는 거라며 떠넘기듯 건네 드렸다. 사실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본 건 저 비타민 음료 때문이었다. 오늘따라 왠지 저 비타민 음료 한 모금이 생각나 마트에 갔고, 이왕 온 김에 다른 간식거리도 샀던 것이다.



 분명 내 목적은 비타민 음료였다. 그런 비타민 음료가 사라졌다. 그래도 괜찮았다. 마음이 풍요로웠다. 그렇게 풍요로운 마음과 풍요로운 봉다리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이 코 앞이었다. 몇 걸음 안 남았다. 막판 스퍼트다. 짐도 내려놓고 배도 채울 생각에 더욱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렇게 수많은 풍경을 지나쳤는데, 이상하게도 한 장면이 잔상에 남았다. 어느 어르신이, 살집이 없어 보이는 어느 할아버지가 재활용 쓰레기를 뒤지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 자체는 나에게 생소하지 않았다. 원래 동네에서 폐지나 재활용품을 모아두는 곳이었고, 마침 고물상으로 향하는 길목이기도 해서 하루에도 몇 차례 비슷한 장면을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 남은 잔상엔 분명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다. 그 어르신이 손에 들고 있던 건 폐지나 유리병이 아니었다. 빨간색 고추장 통이었다. 그것도 먹다 남은 고추장이 들어 있는 고추장 통.



 나는 모른다. 그분이 어떤 이유로 그 고추장 통을 뒤졌는지. 하지만 덮개를 열어 내용물을 유심히 살피는 그 눈빛이,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한 손동작이, 리어카나 이미 수집한 다른 재활용품 하나 없는 그분의 배경이 여러모로 나를 복잡하게 했다.



 나에겐 빵이 있었다. 한 끼 식사로 사용하려 했던 빵이 있었다. 마침 빵집 사장님이 챙겨준 선물로 인해 두 끼 정도는 해결할 수 있었다. 빵집 사장님이 챙겨준 고마운 선물이다. 그런데 왜 고추장 통을 뒤지는 어르신을 보고 이 빵이 무겁게 느껴질까.



 나는 그 어르신을 모른다. 그 어르신이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혼자만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괜히 남에게 간섭하는 건 무례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실 대체로 그러하지 않은가. 게다가 당시 난 남에게 오지랖 부릴 만큼 여유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당장 내 앞 길 챙기기에도 부족했다. 선물로 받은 빵 하나에 한 끼 식사값 아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그런데 왜 계속 잔상으로 흘러간 어르신의 모습에, 내 손에 쥔 빵이 신경 쓰이는 걸까.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습관적인 걸음으로 집으로 올라갔고, 그렇게 들고 온 짐을 정리했다. 무거웠다.






 몇 시간이 지났다. 일이 있어 도서관에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늘따라 유독 생각났던 비타민 음료 한 모금이 사실은 여전히 고팠나 보다. 이건 빵집 사장님의 고마운 마음만으로는 채울 수 없었던 걸까. 근처 편의점에 갔다. 어라. 여긴 2+1이다. 즐거운 마음에 이를 담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마침 고물상이 있었다. 이미 한 아름 수집품을 건네고 정산을 받으셨던 걸까. 젊은 할머니 두 분이 리어카 앞에서 조금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가슴에서 올라오는 기운이 있었고 손과 발에 살짝 피가 돌며 열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도 머리가 복잡해지려 했지만, 내 착각이든 뭐든 상관없이 그냥 좀 오지랖 부리기로 했다. 그 어르신들께 다가가 비타민 음료를 병씩 건넸다.



"이거 하나씩 시원하게 드세요. 마침 2+1이라서요."



 누군지도 모르는 분들에게 왜 굳이 2+1을 이야기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혹시 음료의 출처를 불안해하실까 싶어 편의점 로고가 박힌 봉투를 흔들어댔던 건 기억난다. 글씨가 보이지도 않았을 영수증과 함께.



 이게 뭔가 싶어 살짝 당황해하는 한 분과 밝게 웃으며 "고마워요"라고 답해주시는 한 분을 뒤로 한채, 이번에도 역시 빠른 걸음으로 집 앞에 도착했다. 습관적인 걸음으로 집으로 올라갔다.



 이번에는 딱히 정리할 짐이 없었다. 전과 달리 마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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