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린드스트롬, <Buyology>
코로나19로 일상의 많은 것이 바뀐 현재,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전례 없는 개인 주식 투자 열풍이다. 지난 3월 코스피는 1500선 아래로 추락했다가 반등에 성공하며 3000고지에 다다랐고, 이 기간 개인투자자 순매수는 66조 원에 이르러 종전 최대치인 2018년 11조 원의 약 6배를 달성했다.
2021년에도 개인은 1월에만 22조 3,384억원의 주식을 순매수하며 말 그대로 '미친 유동성'의 한국 주식 시장을 형성했다. 때아닌 주식 광풍에 증권사들도 앞다투어 고객 유치 전쟁을 벌였고, 투자법을 강의하는 크리에이터들도 늘어났다.
주린이(주식과 어린이의 합성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 크리에이터가 택한 방식은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었다.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바보인 이유" 혹은 "적금 드는 것은 돈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와 같은 문구를 *썸네일로 사용하며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마케팅 업계에서는 이를 '공포 마케팅'이라고 설명하는데, 타인보다 뒤쳐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일으키게 하여 구매나 구독, 투자를 부추기는 인간 본연의 심리를 활용한 마케팅을 일컫는다.
* 썸네일 : 인터넷 홈페이지나 전자책(e북) 같은 컴퓨팅 애플리케이션 따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줄여 화면에 띄운 것 ( 지식백과 )
공포마케팅의 대표적인 예로 보험회사의 광고를 들 수 있다. 일부 보험사는 "늙어서 자식에게 손 벌리실 계획입니까?"라는 문구를 사용해 실버 보험 계약 혹은 갱신을 부추긴다. 코로나19 발병 초에는 "코로나 보험"이라며 각종 폐 및 호흡기 질환 보험 가입을 유도한 설계사들이 판을 치기도 했다.
그 외, 암에 걸린 흡연자의 폐사진을 담뱃갑에 표시한다던가(금연광고), 입 냄새 때문에 이성에게 무시당하는 스토리를 연출한 구강청결제 광고 등 우리들의 불안과 공포를 활용해 마케팅 효과를 높이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공포마케팅, 스스로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자신의 가장 나약한 부분에 노출된다면 마케터의 먹잇감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무의식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마케팅 정확히 어떻게 작용하는 것일까.
"공포는 인간의 생존 본능과 직결되어 있다"
FKF Applied Research는 미국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 행정부의 전략가 출신인 톰 프리드먼(Tom Freedman)이 설립한 기업이다. 인간의 의사 결정 과정(Decision-making process)를 연구하는 FKF는 2003년 George W. Bush 와 John Kerry가 맞붙은 미국 43대 대통령 선거에서 fMRI를 활용해 선거 캠페인을 접한 일반 시민의 반응을 분석했다.
톰 프리드먼은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들로 구성된 실험 참가자들에게 당시 두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의 사진을 보여준 뒤, 911 테러와 *"Daisy Girl" 광고 영상을 순서대로 보여줬다.
이를 fMRI로 촬영한 결과, 911테러와 Daisy Girl 영상을 시청하는 실험 참가자들의 편도체(Amygdalas)에서 활발한 자극이 감지되었다. 고대 그리스어 'Almond'에서 이름이 유래된 편도체는 대뇌변연계에 존재하는 아몬드 모양의 뇌 부위를 일컫는다.
편도체는 크게 '본능적 공포에 대한 반응', '공포 기억', '불안증' 세 가지 반응을 관장한다.
편도체에 이상이 생긴 동물의 경우 두려움이 사라지게 된다. 이는 생존에 아주 불리한 조건을 형성하는데, 편도체를 다친 쥐는 고양이를 피하지 않고, 야생 스라소니의 편도체를 제거하면 아주 온순해진다. 사람의 경우 지능에는 이상이 없으나, 두려움을 잃게 되고 정서적 장애를 지니게 된다.
실험 동물에게 특정한 소리를 전기 충격과 함께 반복적으로 들려준 다음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특정 소리만 들려 주어도 강한 공포 반응을 보이는데, 이 동물의 편도체를 제거하면 더 이상 그 소리에 공포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된다. 이에 대해 조셉 르두(Joseph E. LeDoux)는 학습된 두려움의 기억이 편도의 중심핵에 저장되어 자율신경계를 자극하거나 행동적 거부 반응을 보인다고 언급했다.
편도체의 외측기저핵 신경세포의 활성에 의해 불안증이 조절된다는 보고가 있다. 가령, 실험 쥐의 외측기저핵을 전기적인 자극으로 파괴하거나 억제제를 투여하면 실험 대상의 불안증이 강화되는 것이다.
이렇듯 편도체는 공포를 관장해 투쟁-도주 반응(Fight or Flight)을 일으킴으로써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911 테러와 Daisy Girl 영상을 보았을 때 참가자들의 편도체 자극이 관찰된 것도 인간의 공포심이 영상에 반응한 결과다.
또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보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편도체에서 더 활발한 자극이 관찰되었다. 톰 프리드먼은 이에 대해 "911테러와 외세의 미국 침략을 연상시킬 때, 국방 강화에 회의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의 무의식이 더 크게 반응한 결과다"라고 전했다.
톰은 이 결과가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이 공화당 진영에게 투표한 이유를 설명한다고 전했다. 911테러가 일어난 직후인 2004년이 대통령 선거해였고,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테러 공포심을 활용한 부시 전 대통령의 진영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인간의 공포심을 관장하는 편도체(Amygdalas)는 생존에 위협이 되는 정보 - 눈앞의 곰 / 노후 준비를 하지 않으면 자식 손을 빌려야 한다 / 구강청결제가 없으면 입 냄새가 심하다 등- 를 접하면 이를 회피하고자 하는 행동적 거부 반응을 일으키며, 이것이 우리가 공포 마케팅의 먹이가 되는 근본적 원인이다.
"Daisy Girl" : 미국 36대 대통령 린든 존슨(Lyndon Johnson)이 대선 켐페인 당시 활용한 광고. 작은 아이가 데이지 꽃잎을 세며 수를 세고 있는 화면이 나온다. 꽃잎이 떨어짐과 동시에 카운트 다운을 하는 소녀의 목소리 1, 2, 3, ..... 마지막 9를 남기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며 핵폭탄이 터진다.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대선 경쟁 후보인 배리 골드워터가 소련에 대한 강경책과 핵전쟁을 지지하자, 이에 맞서기 위해 핵전쟁의 공포를 알리기 위해 제작한 광고. 이 광고로, 보수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배리를 제치고 린든 존슨이 대통령에 당선된다.
공포마케팅은 인간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역이용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그 효과가 매우 직관적이고 효율적이지만 남용할 시 브랜드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과거 한국 맥주 시장 1, 2위 제품의 유해성을 폭로하는 소문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며 대중의 불안감을 증폭시킨 사례가 있었다. 상대 제품의 공포를 조장하기 위한 과한 비방전은 불신감을 부추겨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 결과를 만들었다. 공포마케팅 부정적인 면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또한, 코로나 발병 초기인 지난 3월에는 천연성분인 에키네시아 관련 의약품이 코로나 항바이러스성 성분을 지니고 있다는 정보가 유통되며 '의약품 대란'을 겪기도 했다. 일부 약사 유튜버는 특정 브랜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소비자들의 구매를 부추겼지만, 여러 실험결과에 의해 거짓 사실임이 들통났다. (놀라운 것은 에키네시아 관련 일반 의약품은 과거 메르스 사태에도 '품절 대란'의 주인공이었단 사실이다. 장기 기억인 인간의 공포를 활용한 마케팅이 또 한 번 기승을 부린 사례로 평가된다)
공포마케팅은 뛰어난 브랜드를 만드는 묘수가 됨가 동시에, 적절한 솔루션 없이 불안감만 조성한다면 소비자들에게 외면받는 악수가 될 수 있다. 불안감은 어디까지나 불안감일 뿐, 브랜드의 정체성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