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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miLuna Jun 11. 2020

세 아이들의 다른 나라 적응기

핀란드 교육 시스템 삐딱하게 보기?

다른 글에서 공유한 바와 같이 우리 가족은 남편과 아이들이 먼저 핀란드에 와서 살고, 내가 1년 5개월 후에 합류하는 식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2018년 4월 초 당시 첫째 아들은 초 6 (한국 나이 13살), 둘째 딸은 초 4 (한국 나이 11살), 셋째 딸은 한국 나이 6살이었고, 2년이 지난 지금은 셋 모두 어느 정도 각자의 위치에 잘 적응하고 있다.


실제 매일매일 부대끼며 가까이에서 생활을 지켜본 건 작년 9월부터이긴 하지만 남편에게 그리고 각각의 아이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정리해 보자면, 예상대로 초기 난항을 겪었던 건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지고 온 첫째였고, 마치 이곳에서 태어나서 살아왔던 양 완전 현지인화된 건 셋째다. 핀란드와 한국의 양쪽 문화, 언어, 사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성의 수혜를 최대한 본 건 둘째, 워낙에도 둘째가 갖는 타고난 무던함과 적응력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이민을 온 시기(나이)가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어떤 학문적 근거를 갖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개인별 차이가 있을 수 있긴 하겠으나 개인적 경험으로는 한 언어를 온전히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을 때라고 보이는 초3-4 언저리에 다른 나라에 살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 이후 둘째에게 큰 자산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핀란드에 와서 처음 학교에 입학 신청을 할 때 교육 관련 부서에서는 "준비반"(valmistava opetus)이 존재하는 학교를 중심으로 배치를 알아봐 주고, 다행히 우리가 살던 동네 초등학교에 이런 "준비반"이 있어 우리 아이들은 적응기를 갖고 학교 체계에 스며들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한국 교육 실정만 생각하고 얼마나 아이들에 대한 배려 없이 강하게 헝그리 스피릿으로 밀어붙이려 했는지 실소가 나오지만, 난 어이없게도 아이들의 적응력으로 바로 Day 1부터 이곳의 아이들이 있는 보통반에 들어가 열심히 노오력 하면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준비반"은 우리끼리 "다문화반"이라고 불렀던 반이기도 한데, 핀란드에 이민 와서 아직은 핀란드어가 서툴고 적응이 필요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각자 수준별 교육을 제공하는 반이다 (그렇다 보니 학년도 각각이고 국적도 각각이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 1년간 이 반에서 다른 여러 나라 아이들과 함께 수업도 받고, 각자 학년별 반으로 가서 수업도 받고 하는 식으로 immersion 과정을 거쳤다. 첫째의 경우 핀란드어 이해 없이도 풀 수 있는 수학 문제를 통해 자신감을 키워주고, 같은 학년반에 가서는 미술이나 공예, 산책 같은 활동을 하는 식으로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제공되었다. 이 다문화반에는 아빠가 교환교수로 1년간 핀란드에 와 있는 한국 여자아이가 한 명 있었어서 둘째에게는 정말 소중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둘째는 아랍문화권에서 이민 온 많은 아이들이 뭉쳐 다니며 사고?를 치는 모습이 딱히 좋아 보이지 않았는지 종종 열심히 하루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다. 


첫째는 한국에 있을 때 수학학원을 1년 정도 다니다가 왔는데, 그곳에서 열심히 진도를 빼 준 덕분에 중 1 과정을 배우다가 왔다. 우리 부부가 사교육에 큰 욕심이 없다 보니 5학년이 되어서야 주변의 움직임에 휩쓸려 동네 학원을 다니게 했던 것이었는데, 핀란드어를 전혀 못했고 또 언어 습득이 약간 더디었던 첫째에게는 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물론 한국 아이들이 이민 가면 모두 수학 능력자가 된다고는 하지만, 또래에 비해 수학이 앞서 있다 보니 선생님이 수학 시간은 줄이고 핀란드어 시간을 늘리는 등 재량으로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과정을 만들 수가 있었고, 본인 또한 잘하는 과목이 하나 있다는 게 자신감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2년이 지난 지금은 게임으로 반 친구들과 뭉치기도 하고, 말이 많지 않아 듣는 기회가 별로 없긴 하지만 핀란드어도 필요할 때에는 곧잘 한다. 중1 마지막 성적은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본인은 학원 없는 핀란드의 널럴한 생활을 아주 만끽하고 있다. 


둘째는 한국에서는 그냥 조용하고 무던한 어느 과목에서 특별히 두각을 내지 않았던 아이였다. 초 3 때 학교에서 시작했던 영어 과목을 곧잘 잘 따라가는가 싶긴 하였으나 따로 가르친 적도 없었고, 수학의 경우 오히려 오빠의 그늘에 가려 보통 혹은 약간 더 잘했으면 싶은 정도였다. 열심히 배운 태권도 덕분에 체육을 좀 잘한다 정도? 그런 둘째가 지금은 약간 반전이긴 한데, 이곳에서는 영어 발음이 좋다고, 수학을 정말 잘한다고, 그림도 잘 그린다고 매일매일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그리고 선생님으로부터 좋은 피드백을 받아 자신감이 엄청 생겼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아이들은 핀란드 발음과 다른 영어 발음을 잘 따라 하지 못해 핀란드식으로 영어를 읽고 (예를 들면 HR은 흐르, The는 뜨헤 ㅋㅋㅋㅋ), 구구단을 외우게 하지 않으니 초 5인데도 불구하고 곱셈, 나눗셈을 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준비반을 졸업하고 보통반으로 들어갈 타이밍에 맞춰 첫째와 둘째 모두 이사로 인해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게 또한 좋은 계기가 되어 이 둘 모두 새로운 모습으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셋째는 이제 한국에서의 추억도, 한국말에 대한 기억도 점점 날아가고 있는 것 같다. 여자애이다 보니 한국에서도 엄청 쫑알쫑알 말을 잘해서 신기했었는데, 이곳에서는 모든 게 다 핀란드 말로 대체되어 버렸다. 가끔 핀란드어를 못하는 내가 이 핀란드 말이 무슨 뜻이야? 물어보면 그게 한국말로 무엇이었는지를 까먹었다고 말하면서 짜증을 낸다. 휴... 이 아이는 나중에 한국어학교에 보내야 할 것 같다. 어린이집부터 온전히 핀란드 교육으로만 자랄 아이라 한국 교육과 핀란드 교육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실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여러 매체에서 다뤄졌던 핀란드 교육의 우수성은 직접 겪어보면 좀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수업시간 시작 전에는 학교 문이 닫혀 있어 반드시 밖에 있어야 하고, 긴 쉬는 시간에는 반드시 또 밖에 나가서 놀아야 한다. 급식의 질은 너무도 떨어져서 동물에게도 안 먹이는 음식은 군인과 학생들에게 먹인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고, 아이들이 그냥 몇 조각 집어 먹고 집에 와서 배고프다고 허겁지겁 간식을 먹는 경우도 많다. 숙제도 거의 없고, 학교도 일찍 끝나서 (오후 2시 반이면 집에 온다.) 별 할 일이 없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게임으로 눈을 돌리고, 도서관에서도 PC게임을 깔아 PC 앞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부여되는 시간이 가정에서 프로게이머들과 유투버들을 양산하고 있다ㅋㅋㅋ. 그런가 하면 교사들이 수업에 대한 재량권이 커서 학부모들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거의 없다. 우리 아이들은 보통 수준의 성취도를 갖고 있어 큰 불만은 없지만 정말 뛰어난 학생들의 경우 내 느낌상 "하향 평준화"시키는 것 같은 과정에서 더 발전시키기가 어려울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들이 많은 학교 시스템이 있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투자한 시간 대비 교육 효과가 좋다는 것에 위로를 해 본다. 그리고 이런 나의 생각 또한 내가 잘 몰라서, 내가 알고 경험했던 것과는 달라서 느끼는 불편함에서 비롯된 것일 테니 일단 이 안에서 더 잘 누릴 수 있는 부분이 뭘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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