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가장 긴 날, 하지를 즐기는 사람들
핀란드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이 언제인지를 물어본다면 당연히 하지를 꼽을 수 있다. 영어로는 Midsummer day라고 불리고, 핀란드 말로는 유한누스라고 부르는 6월 19일~25일 사이 제일 가까운 토요일이 바로 그 날인데, 단체협약에 따라 유한누스 바로 전 날 금요일을 휴일로 정하는 회사들이 많다. Vappu라고 불리는 노동절도 재밌는 휴일이고, 물론 캄캄한 밤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크리스마스도 둘째가라 하면 서러운 공휴일이긴 하지만 북쪽의 아름다운 여름날 꿈만 같은 가장 긴 날을 어찌 가장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잠깐 위키피디아스러운 이야기를 하자면 핀란드에는 약 18만 8천 개의 호수가 있다고 한다. 이런 호수 옆에는 핀란드 사람들의 여름 오두막집들이 있는데, mökki (뫼끼)라고 불리는 이런 오두막집들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계절에 상관없이 휴일을 즐기는 장소로 핀란드인들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다. 여름 별장이라 하기엔 그 모습이 너무도 미니멀리즘에 가깝고 소박하여 한국말로 어떤 말이 가장 적절한 지는 모르겠으나 영어로도 summer cottage/cabin, log house 등으로 부르는 걸 보면 오두막집이라 불러도 뭐 크게 삐질 거 같진 않다.
(https://www.visitfinland.com/article/the-essentials-of-cottage-life/#d1f1739e)
이런 오두막집에는 대개 사우나가 있고, 전기는 들어오긴 하지만 수도시설은 되어 있지 않은 곳도 있어 물탱크를 채워서 필요한 만큼만 물을 쓰고, 친환경 포세식 화장실인 경우가 많다 (우리의 재래식과는 다르게 산림욕장에서 봤음직한 좌변기에 흙을 덮어 처리하는 식). 그렇지 않아도 비사교적이고 조용한 거 좋아하는 핀란드인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정말 자연과 함께 조용한 사색을 즐기는 그런 곳이라고 하는데, 물 멍, 불 멍 하면서 사우나도 하고, 호수에서 수영도 하고, 바비큐도 해 먹고 뭐 그런... 핀란드 인구 5백만에 이런 오두막집이 50만 개로 추정된다고 하니 가구당까지는 아니더래도 2-3 가구당 이런 여름 오두막집 하나씩은 있는 셈이다. 큰 땅덩이에 적은 인구라 가능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호수마다 시끌벅적 관광지가 들어와 있지 않은 걸 보면 우리네 바닷가나 행락시설과는 좀 많이 다른 분위기다.
유한누스를 보내는 전형적인 방법은 바로 이 오두막집에 친구들 혹은 가족들과 모여 바베큐하고, 호수에서 수영하고, 보트를 타거나 노 젓는 배를 타고 시간을 보내는 거다.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때론 과음을 하고 보트 타고 놀다가 호수에 빠져 익사하는 불행한 일들도 생기는데, 매년 핀란드인들은 재미로 올해에는 과연 몇 명이나 호수에 빠져 죽을까 추측해 보기도 한다. (매년 20명 정도 유한누스에 젊은 남성들이 호수에 빠져 죽는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에서 밤 12시가 되어도 캄캄해지지 않는 여름의 하얀 날들을 즐기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부럽지 아니한가. 하지만 모든 게 완벽할 수 없는지 핀란드에는 여름마다 설쳐대는 모기들이 있다. 음 한국에도 모기가 있으니 뭐 크게 신경 쓰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곳의 모기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도시의 모기가 우리나라의 산이나 들판에서 만나는 엄청 큰 모기인 데다, 핀란드 북쪽 Lapland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여름의 모기는 (약간의 과장을 더하면) 하늘을 까맣게 덮을 정도라 하니 상상을 초월한다. 헬싱키에서 가까운 곳에 오두막집이 있는 친구가 반바지를 입고 잔디를 깎는 한 시간 동안 모기에게 물린 다리의 자국을 세어보니 120개가 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집 뒷마당 데크는 모기 때문에 무서워서 앉아 있지도 못해 바로 엊그제 암컷의 모기를 유인하여 서서히 씨를 말린다는 무려 500 유로가 넘는 Mosquito Magnet이라는 걸 구비했다. 핀란드에 살기 전에는 정말 상상도 못 했던 핀란드의 모습인데, 아마도 습지도 많고 숲이 많은 게 이유가 아닐까 싶다.
유한누스도 이제 지났고 바야흐로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여름휴가를 한 달씩이나 쓰는 ^^ 이 곳 사람들은 6월이 되면 벌써부터 엉덩이가 들썩들썩해진다. 7월이 되면 대부분 휴가를 떠나 전 국가적으로 모든 행정이 마비되는 수준이고, 그나마 자리를 채우고 앉아 있는 건 인턴들이거나 학생 근로자들이다. 토요일을 휴일 정산에 넣어서 세는 약간 이해할 수 없는 휴가 제도를 빼고는 법적으로 2주를 반드시 붙여서 사용하게 하고 4주를 쭉 붙여서 쓰도록 권장하는 좋은 휴가 제도는 부러울 따름이다. (한국에서 동료들이 요즘 한창 연차 사용 촉진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FY가 7월에 시작하는 회사를 다니는 나로서는 이런 휴가제도를 맘껏 누리지 못해 좀 아쉽긴 하지만 동네가 온통 바베큐장으로 변하는 요즘, 우리 집도 내일은 마당에서 고기 좀 구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