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에서 인기가 있었던 핀란드의 세 순수 청년의 취미생활 중 하나가 버섯 채취여서 젊은이들 취미가 정말 웃기다 싶었는데, 여기 와서 살다 보니 여름이면 블루베리 따고 가을에는 버섯 따는 게 정말 많은 사람이 즐겨하는 활동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귀찮아서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특별한 곳이 아니더라도, 동네 곳곳에 널려 있는 숲마다 블루베리가 이렇게 주렁주렁 열려있는데 안 따먹고 그냥 지나치기는 어렵다. 7월 말부터 8월까지가 블루베리 알들이 굵어지고 꽤 맛있어지는 시기인데 이때가 되면 대형 마트나 슈퍼에서는 블루베리를 쉽게 딸 수 있는 기구들과 채취한 걸 담을 수 있는 플라스틱 통들이 매대에 전시된다.
산책하는 사람들은 손에 가득 따서 먹기도 하고, 아예 작정하고 도구와 통을 챙겨 나와 본격적으로 따가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숲마다 열리는 이 블루베리는 Billberry라고 불리는 유럽 블루베리로, 슈퍼에서 보는 미국산 블루베리처럼 크기가 크지는 않다. 하지만 한 주먹 가득 입에 털어 먹는 그 새콤달콤한 맛은 정말 일품이다.
이 핀란드 블루베리는 겨우 내 쭉정이 줄기들만 남아 있다가 어느 순간 파릇파릇 잎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고, 또 어느 순간 빨간 작은 열매들이 꽃처럼 올라오다가 보랏빛 열매로 살을 채우며 크기를 키운다. 이 숲이 블루베리 나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흔적도 없이 있다 어느 순간에 숲 전체를 채우는 게 참 신기하다.
이렇게 핀란드 숲에는 블루베리 나무들이 가득한데, 습지가 많은 핀란드의 숲이 블루베리를 키우기에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 주는 모양이다. 딸기는 너무 비싸고 한국의 하우스 딸기에 비하면 품질도 못 따라가니 자주 먹지 못하는데, 그나마 여름에 블루베리가 그 자리를 채워 주는 게 고맙다. 블루베리는 많이 따서 세척 후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가 블루베리 꽁포트나 쨈을 만들거나 블루베리 파이나 머핀을 구워도 맛있다.
블루베리가 한창 무르익기 전에 반짝하고 먼저 나오는 것들이 있는데 바로 야생딸기와 라즈베리이다. 야생딸기는 딸기에 비해서 당도나 향기가 덜 해 사람들이 채취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야생딸기를 처음 본 나는 그 또한 열심히 따서 한 입에 털어 넣어 맛을 봤다.
라즈베리는 이곳에서도 블루베리 못지않게 사람들이 열심히 따는 베리인데, 야생이다 보니 크기가 슈퍼에서 파는 것처럼 크진 않지만 잘 익은 라즈베리는 알알을 입에서 느끼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게 정말 제대로 맛있다. 무엇보다 핀란드의 베리들은 청정 숲에서 자라는 것들이다 보니 따서 바로 입속으로 집어넣는 재미가 있다. (길가에 낮게 있는 블루베리의 경우 왠지 강아지 오물이 묻어 있을 듯하여 요건 씻어 먹었다. ㅋㅋ)
예전에 시아버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슈퍼에서 사 오신 딸기나 방울토마토를 씻지도 않고 드시는 걸 보고 기함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야생의 농약 없는 베리들에 익숙하셔서 그러셨나 보다 이해한다.
이제 곧 블루베리 철이 지나면 아무도 안 따는 크랜베리들이 슬슬 숲에서 세력을 확장할 것이다. 크랜베리는 소스로 만들어 팬케이크이나 음식에 곁들여 먹으면 맛있다고는 하는데, 베리 자체로는 먹자마자 바로 뱉어낼 수밖에 없는 오묘한 맛이 있어 크게 인기는 없는 것 같다. 맛은 아직 보진 못했지만 사진처럼 빨간 열매들이 열리는 게 정말 예쁘다.
핀란드엔 뭐가 있나요?라는 질문에 몇 달 살아본 결과 나의 대답은 바로 "자연"이 될 것 같다. 프랑스나 독일을 떠올릴 때 있는 화려한 성이나 유럽스러운 건물들, 음식문화도 없고, 사람들은 소박하다. 하지만 핀란드 이곳엔 숲이 있고, 호수가 있고 자연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재미를 찾아온다면 심심한 천국일 수밖에 없는 이 곳이지만 좀 더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천천히 가는 삶을 즐기려 한다면 편안함을 주는 곳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