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2 댓글 2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수능에 임하는 핀란드 고3의 자세

피처링: 이래도 되나 싶은 K엄마

by LumiLuna Mar 27. 2025

오랜만에 브런치에 왔다. 나는 여전히 핀란드에서 잘 버티고 살고 있다(매년 겨울 한국에서 에너지를 잔뜩 충전해 와서는 그 기운으로 일 년 보낸다ㅋㅋ).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가자마자 핀란드로 이민 온 첫째는 작년 가을 만 18세가 되어 고3이긴 하지만 술도 마시고 친구들이 운전하는 차도 얻어 타고 자취하는 친구나 부모님이 집을 비운 친구가 여는 파티에도 가는, 잔소리를 아주 싫어하는 어른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고3 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을 보면 핀란드에 오길 참 잘했다 싶기도 하면서도 이곳의 고3들은 이렇게 공부하고 인생 다 즐기면서도 대학에 가는데 참 인생은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아들의 고3 생활을 들여다본다. 8월에 학기가 시작하는 이곳은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에는 2월 초에 Penkkarit(뺑까릿)이라는 행사를 마친 후 학교에 가지 않는다. 뺑까릿은 고 3들이 집에서 나름 대학입시를 하러 가기 전 마지막 학교 행사로, 아이들은 핼러윈에나 입을 법한 웃기도 재미나고 유치한 옷들을 입고 트럭 뒤에 타서 학교 근처 동네를 쭉 돌면서 사탕을 길거리에 던지는 고3의 의례다. (대충 아래 같은 느낌이다.. 2023년도 Espoo 동네 뺑까리 사진)      

브런치 글 이미지 1

이 뺑까리를 할 즈음 고2 아이들은 이제 고3들이 방 빼고 나면 자기들이 제일 큰 선배가 되는 것을 기념하는 댄스 행사를 하는데 (Vanhojen Tanssit) 여자아이들은 공주 드레스를 입고 남자아이들은 턱시도를 입고는 왈츠 및 고전적인 댄스를 짝지어 춘다. 미국의 Prom이랑 비슷한 듯 아닌 듯 그렇다. 요런 느낌..

 

브런치 글 이미지 2


뭐 어쨌거나 학교에 안 간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었는데, 라면이나 끓여 먹을 줄 아는 요리 무능력자인 아들의 점심을 어떻게 할지가 걱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ready made meal도 사다 두고 재택근무를 할 땐 나름 챙겨주고도 했으나 얼마 안 되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아들은 깨우지 않으면 오후 3-4시까지 보통 자고 저녁 준비할 즈음 슬슬 방에서 나오는 올빼미형 생활을 하기 때문. 깨어 있는 시간에 관찰한 바로는 음악 듣고 드럼 열심히 치고 클라이밍 다니는 생활이 대부분이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서 술도 마시는 것 같고. 공부는 언제 하느냐 몇 번 심각하게 물어보고 대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공부는 이미 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에 다 했다는 어이없는 대답만 돌아와서 지금은 자기 인생 알아서 하겠지 싶어 잔소리는 접었다. 


요 며칠 수능 주간이라 시험을 보러 다니는데 한국과는 많이 다른 시스템이다. 일단 자기 고등학교에서 지정된 날 한 과목만 8시간을 보는데 1차 채점은 중앙기관의 안내에 따라 학교 선생님들이 채점을 한다. 사지/오지선다 선택형 문제가 아니라 시험을 푸는 과정까지 채점하는 서술형 문제가 대부분인 데다 핀란드어 등 언어 과목은 에세이가 있어 대규모로 한꺼번에 채점할 수 없고 일일이 누군가가 검토해서 채점해야 하는 방식이다. 일차로 학교 교사가 채점한 점수와 이차로 중앙기관에서 다시 채점한 점수는 모두 공개된다. 따라서 그 격차가 크거나 하면 교사의 능력에 대한 의심을 할 수도 있다. 역시 인구가 적으니 가능한 시험 방식이다. 또한 무엇을 교육의 목적으로 두는가에 대한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처럼 시간표를 스스로 짜는 학점제를 운영하는데 원하는 학생들은 이미 수업 스케줄을 미리 몰아서 끝내는 식으로 짜서 학과 과정을 좀 일찍 끝내고 고3 1학기에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수능시험을 볼 수 있다. 1학기에 한 번 봤더래도 35유로인가 하는 시험비를 내고 2학기에 다시 시험을 볼 수 있는데 둘 중 더 높은 점수를 갖고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 하루에 모든 과목을 보는 것도 아닌데 두 번이나 기회가 있다는 게 놀랍다. 수능은 2주 정도의 기간에 거쳐 월요일은 국어, 수요일은 화학, 금요일은 물리 이런 식으로 본인이 선택한 과목에 대해 스케줄을 맞춰 신청해서 본다. 물론 여기도 의대나 법대에 가기 위해서는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고 요구되는 수능 점수 레벨도 높지만 그 빡셈도 사실 전 고등학교 기간에 거쳐 생각해 보면 평소 수업 충실히 잘 듣고 이해한 다음 2월부터 2-3개월 열심히 공부하면 되는 수준이니 한국학생들이 들으면 뒷목 잡을 판이다. 그렇다고 교육의 질이 떨어지거나 어렵지 않은 레벨만 배우는 게 전혀 아닌 것은 더 신기한 포인트. 


이제 막 수능을 마친 아들이 결국 어느 대학에 가게 될지는 모를 일이나 이렇게 인생 즐기면서 지내는 고3생활이라면 너무나 부러운 삶이 아닐 수 없다. 속으로는 저렇게 노오력을 안 해도 되나 싶고 겉만 어른인 모습에 혀를 차고 있지만 찬란한 젊음을 펼칠 아들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드디어 개학이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