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미래의 삶 먼저 살아보기
원래는 3주 일정으로 다녀가는 계획이었으나 갑자기 출장이 잡히게 되어 예정보다 일주일 일찍 돌아가게 되었다. 어느새 그 2주도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3월은 핀란드에서도 제일 심란한 날씨를 경험할 수 있을 때인 것 같다. (나중에 쓰고 읽어보니 해를 거의 볼 수 없는 11월부터 1월까지가 더 심란한 때인 것 같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애교로 봐 줄 수 있는 날씨^^). 아주 춥지도 않아서 눈 대신 비가 내리기도 하고, 눈은 여기 저기 쌓여 있기도 하지만 또 녹아서 검은 마스카라 흘러 내리 듯 더러워진 모습을 하고 있는데다, 미끄럼 방지용으로 시에서 길 마다 모래/자갈들을 깔아 놓은게 눈 속에 박혀 있지 않아 계속 신발 속으로 들어 오기 일쑤다. 여기 올 때 매쉬 천 러닝화를 신고 왔는데, 첫날 옴팡 젖어서 그 이후론 둘째의 장화를 계속 신고 다녔다. 처음엔 걸을 때마다 장화속으로 들어오는 조그만 돌멩이들 때문에 몇 걸음 안 가서 신발을 벗어 빼곤 했는데, 이제 그 마저도 귀찮아 걸을 때 앞쪽으로 콩콩 쳐서 돌멩이들을 발가락 쪽에 몰아 놓고 걷고 집에 들어올 때 한꺼번에 빼 준다.
이제 정말 행복했던 2주도 끝나간다.
이곳에 와 있는 동안 새벽 3시 50분에 일어나서 오후 1-2시까지 일을 하고 이후에 초등 아이들이 오면 간식 좀 챙겨주고 오후 4시에 막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오고 저녁 준비를 해서 6시쯤 도착하는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고, 그리고 나서 여유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설겆이 하고 애들이랑 좀 놀다보면 이제 잘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은데 아직도 8시 전일 때가 많다.), 잘 준비를 마치고 9시-9시 30분 사이에 딸들 사이에서 행복하게 잠이 든다. 만약 승인 받는 게 잘 되고 회사 내부적으로 이야기가 잘 되어 이곳으로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가지고 와서 remote로 하게 된다면 이런 모습이 될 것 같아서 미리 싱가포르 타임존에 맞춰서 이렇게 해 봤는데 할 만 하다. 사실은 매우 건강하고 바람직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삶과는 180도 다른 생활이라 얼마나 오래 갈 지 잘 모르겠다. 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내성적인 성격이기도 하지만 중간중간 친구들을 만나 새벽 한 두시까지 술도 마셔줘야 하고, 수다도 떨어 줘야 하고, 회사 사람들과 잡담도 중간중간 하고/머리 맞대고 얼굴 보며 토의도 좀 해 줘야 하고, 문화생활도 해 줘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기도 해서 이런 가족들하고만 친한 건강한 삶이 좀 두렵기도 하다.
지금 가족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한국 기준으로는 빌라 형태의 4층짜리 아파트인데, 우리 라인의 대부분의 가족은 아랍권에서 온 가족들이다. 아이들 학교에도 꽤 많은 아랍계 아이들이 있고, 중국, 터키, 베트남 등지에서 온 아이들도 있다. 그나마 아시아 쪽은 왠지 모르게 비슷한 점들이 있어 많이 낯설지는 않은데, 아랍권에서 온 분들은 문화적인 이해도 부족하고, 잘 알지 못해 낯설기만 하다. 지난 번에 왔을 때에는 20년 전에 핀란드에서 3개월 살 때의 느낌과 너무 달라 왠지 모를 거부감 같은 것도 있었지만, 나 역시 이민자 중 하나가 될 거고 나 역시 이방인의 문화를 가지고 들어올 것이라 오픈 마인드로 편견 없이 사람 대 사람으로 보려고 노력 중이다. 난민 정책에 적극적인 편인 유럽 (물론 역사적으로 그들이 피할 수 없는 책임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Rule을 철저히 따르려는 사람들 (OMG, 도로의 속도제한 2-3km도 짤 없다), 본인의 Job Scope에서 벗어난 건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서 extra mile 가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직원들 (음, 중고차 보러 갔다가 굳이 예쁘게 꾸미지 않은 모습의 차들에 기함을 토함)... 여러면에서 많이 다른 이 곳, 마흔 넘은 이민 예정자인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오픈 마인드와 배우려는 호기심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 편으로는 젊지 않아 적응하는게 두렵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40년 넘은 인생 경험이 있으니 좀 더 넓게 보고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믿어 본다.
(사진은 학교에서 자체 엉덩이 눈썰매를 타는 중인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