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 우리 집이 찢어지게 가난한 줄 착각했다. 왜냐면 어머니는 항상 나에게 15살이나 나이가 많은 막내 삼촌이 입던 옷을 물려주셨고, 가끔 새 옷, 새 신발을 사주실 때면 센스 넘치게도 ‘나이키’가 아닌 ‘나이스’를, ‘프로스펙스’가 아닌 ‘프로스팍스’를 사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학교에 새 신발을 신고 간 나는 어김없이 놀림받기 일쑤였고, 사춘기 예민하던 시절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하였다.
나중에 커서 세상 물정을 알고 보니 아버지는 공기업 현장감독관이었고, 대지가 있는 단독주택을 1가구 1 주택으로 평수를 넓혀 가시면서 알뜰하게 재테크를 해오셨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속았다.
하지만, 예전 시골의 장남은 부모를 대신해서 가정 생계를 꾸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버지는 7남매의 장남이셨고, 당신은 초등학교밖에 못 나오셨지만 동생들은 대학을 보내셨고, 자식들의 복지(?)에 신경 쓸 경제적 여유가 없으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부모님이 안쓰럽거나 원망스럽다는 것보다는 부모님이 나에게 안 좋은 습관을 하나 물려주셨다는 점이다.
무조건 아끼고 무조건 안 쓰고 나를 돌보지 않고 결국 돈에 맞춰 사는 가성비 위주의 삶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넘어갈 때까지도 장롱에 대학시절 입던 옷이 있을 정도로
월급을 받아 들고 내가 갖고 싶은 옷, 신발 등 나 자신을 위해 물건을 사본 적이 거의 없다.
부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가장 나를 괴롭힌 건 다름 아닌 이 지긋지긋한 가성비를 따지는 사고방식이었다. 아파트 투자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름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국 선택한 곳은 내가 가지고 있는 돈에 맞춰서 오래되고 입지가 안 좋은 아파트였다. 그 아파트는 결국 손해를 보고 팔았는데 나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실패한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파트의 본질 가치는 누구나 살고 싶은 곳이어야 하고 투자를 한다면 그런 아파트를 골라야 하는데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투자금을 기준으로 오래되고 위치가 안 좋은 저렴한 아파트를 매수하게 된 것이다. 물론 무리하게 비싼 아파트를 매수하는 건 안 되겠지만 판단의 첫 번째 기준이 돈이 돼서는 안 된다.
가성비를 따지는 습관이 그래서 부자가 되는 길을 막는 주범이 된다. 가격 대비 품질을 따지는 가성비는 결국 가격, 돈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투자에서는 품질 대비 가격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다른 조건이 동일하고 가격이 바닥이라는 가정에서, 10년 된 아파트 A가 5억이고, 20년 된 아파트 B가 2억 이라면 어느 아파트를 매수하는 게 좋을까? 가성비 기준으로 생각하면 B아파트가 년수가 2배이지만 가격은 40% 정도이니 당연히 B아파트를 매수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할 것이다. 예전의 나라면 100% 이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품질을 우선으로 바라보면, 다소 비싸더라도 년수가 10년밖에 안된 아파트가 더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자금이 넉넉하지 못해 3억을 더 마련하는 것이 매우 힘든 상황이라면 가족 찬스라도 써서 B아파트를 매수하거나 아예 매수를 안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아파트 매매 가격이 하락할 때 연식이 오래된 곳이 더 많이 빠지고,
아파트 매매 가격이 상승할 때는 연식이 적은 곳이 더 많이 오른다.
가성비를 따지는 삶의 습관은 무섭게도 나를 쫓아다니고 매번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본능적으로 나를 휘두르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된 선택을 하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