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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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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이 Apr 07. 2021

내가 편하게 살게해 줄게

실현이 되지 않을지라도.. 고마워.

"난 돈을 많이 벌 거야."


아빠와 이야기를 하던 아이가 호기롭게 이야기했다.


"그래, 많이 벌면 좋지."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내 꿈은 엄마 아빠가 편하게 사는 거야. 내가 돈 많이 벌어다 줄게."


안마의자에 앉아 두 남자를 지켜보다가 왠지 모르게 뭉클했다.


"안 그래도 돼. 돈은 엄마 아빠가 열심히 벌고 있으니까 넌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내 말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내가 편하게 살게 해 줄게. 돈 많이 벌게."


전업주부가 부럽다고, 나도 집에서 놀고 싶다고 짜증을 내서 그런 걸까? 

주식 대박 나면 그만두고 편하게 살아!라는 호기로운 남편의 말을 아이가 따라 하는 걸까?

내가 너무 돈 이야기를 했던가? 따스한 아이의 말이 감동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심란했다.


"아빠랑 엄마랑 돈 많이 벌고 있어서, 넌 안 벌어도 돼."


아빠의 말에 아이는 자신의 계획을 재잘재잘 이야기했다.


"김밥집을 차릴 거야. 우리가 가는 oooo , 거기 같은 김밥집. 손님이 많으니까 돈을 많이 벌 수 있어."


우리의 단골 김밥집은 손님이 늘 많긴 했다. 나름 구체적인 아이의 계획에 웃는데, 남편이 초를 친다.


"설아, 얘가 당신 김밥 말게 시킬 건가 봐."


아빠의 농담에 아이는 버럭 했다.


"아냐. 엄마 안 시키고, 아줌마한테 하라고 하고, 내가 하면 되지."




아직 8살. 

한없이 어린아이의 치기로 한 이야기였기에 실현되기 어려운 이야기라는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그 마음이 고마웠고, 왠지 모르게 마음 아팠다.


아이에게 엄마는 엄마 일이 엄청 재미있지는 않지만 싫어하지는 않는다고,

아빠가 쉬라고 하지만 엄마는 일 하는 것도 좋아하고, 돈 버는 것도 좋아하고, 돈을 많이 벌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너의 따뜻한 마음은 고맙지만 엄마는 아마 계속 일을 할 거라고도 이야기했다.

주말에도 엄마에게 전화해서 일 물어보는 사람 봤지? 하면서 엄마가 중요한 일을 하는 거라고도 이야기해주었다. 아빠 역시 아빠의 일을 잘하고 있고, 좋아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아이는 엄마도 친구 엄마처럼 집에 있고, 자기를 데리러 오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네가 학교 가듯 엄마도 회사에 가는 거라는 이야기에는 수긍했다. 


워킹맘에 대한 생각과 마음은 늘 오락가락한다. 하지만 지금은 내 지난날의 학업과 노력의 결과인 이 일을 내가 비록 즐기지 않더라도 놓고 싶지는 않다. 아마 이런 혼란스러운 내 마음을 아이도 느껴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닐까..


아니면 그냥 정말 순수하게 엄마 아빠 100살까지 살아, 내가 효도할게! 하는 아이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 아빠, 내가 편하게 살게 해 줄게, 하는 마음처럼,

나도 네가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하고 싶을 때, 부모의 든든함이 있어서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그런 든든함이 되어주고픈 욕심.


그런 든든함이 되어 주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출근을 한다. 재미있지는 않아도 제법 잘하는 일을 하고, 여기저기서 묻는 질문들에 답을 해주고, 다른 이들보다 하루 먼저 마감을 짓는다. 


아마도 실현되지 않을 공수표지만, 그래도 그런 너의 마음이 고마워.

그러니 열심히 살아볼게.

너를 편하게 살게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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