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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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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이 Aug 27. 2020

난 엄마한테 빠져 있어

내 생애 최고의 집착남

음악, 곤충, 그림에 빠진 가족들과 달리 빠질만한 무엇을 찾지 못했던 한 아이가 수학에 빠지는 즐거운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 <수학에 빠진 아이> (미겔 탕코. 나는별)를 아이에게 읽어주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 망아지는 뭐에 빠져있어?"


책을 읽고 던지는 형식적인 질문이었고, 나는 아이가 '신칸센'이라 대답할 것이라 예상했다.

신칸센을 사기 위해 공부하는 아이는 (공부 한 건당 100원이다) 일본으로 취업하기 위해 일본어 공부도 하고 있기에, 친척집에 갈 때도 레일과 신칸센을 챙기기에 당연히 신칸센이라 대답할 줄 알았는데, 아이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난 엄마한테 빠져 있어."


아, 그렇구나. 아직도 엄마한테 빠져 있구나.

오랜만에 다시 느꼈다. 내 생애 최고의 집착남.


+586의 망아지


엄마가 눈 앞에서 사라지는 걸 못 견디던 시절.

아이 엄마라면 여기가 어딘지 짐작이 갈 것이다. (내가 어디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는지도...)

화장실조차 내 마음대로 못 가고, 샤워를 해도 문을 활짝 열어두어야만 했던 이 시절.

한 때 애착 형성이 잘 되지 않은 것일까, 라는 고민을 할 정도로 나의 꼬마는 엄마 껌딱지였다.


너무나 딱 붙어있는 아이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 나에게 선배 엄마들은 조언했다.

지금을 즐기라고. 10년만 지나도 아이는 엄마를 찾지 않을 것이라고...


5년이 지나 아이는 어느새 7살...

엄마랑 평생 같이 딱 붙어서 살고 싶다던 아이는 아직도 가끔은 하루 종일 엄마랑 딱 붙어 있고 싶다고 아침에 울먹인다. 어딜 나가도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다니고, 잘 때도 엄마 옆에 붙어서 잔다.


하지만 아이는 더 이상 엄마와 결혼을 해서 평생 함께 산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유치원에서 oo와 결혼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나중에 자기가 일본으로 기관사 하러 가면 엄마는 회사 다니다가 주말에 놀러 오라고 한다.


조금씩 조금씩, 내 인생 최고의 집착남은 나에게서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5년쯤 더 지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주말에 휭 하니 자전거를 끌고 친구들하고 놀러 나가버리는 시크한 아들이 되어 버리겠지. 그 날이 오면 후련하고 개운하면서도 조금은 서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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